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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정원 Feb 09. 2024

2. 퇴사할 결심

나는 애초에 첫 직장 생활을 출판으로 시작했다. 좋게 포장하자면 출판 외길이라고 봐도 무방할 텐데 솔직히 말하면 탈출을 못했다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 책이라면 지긋지긋할 때도 있었고, 대체 출판의 미래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싶기도 했지만 27살에 출판계에 들어와 여기서만 몇 년의 세월을 보냈던 나에게 책은 어찌해도 어찌할 수 없는 목표였고, 만들고 만들어도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숙제였으며,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밥벌이였다.       


처음 입사한 출판사에서의 나의 연봉은 2,600만 원이었다.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2023년 신입 연봉 평균이 3,014만 원이라니, 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출판계의 연봉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삶을 오롯이 건사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출판계에 몸담고 있던 남녀가 결혼을 하면 “서울에 아파트는 못 사겠구나.”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다만 내가 입사한 회사는 출판계에서 손꼽힐 정도의 꽤 규모가 있는 계열사였던 터라, 출판계 평균으로 봤을 땐 연봉도, 복지도 꽤 좋은 편이었다.  다시 한번 ‘출판계 평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출판사에 들어오게 된 것도 거의 절반의 행운과 절반의 우연 덕분이었다. 졸업하고 보니 평점이 2.0 정도 수준이었던 나는 원서를 내면 족족 떨어지기 일쑤였는데, 그럼에도 나는 어떻게든 먹고 살길을 찾겠다며 집을 나와 종로 3가의 고시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모아둔 돈은 바닥인 와중에 문창과를 부전공했다는 그거 하나만 믿고 신인문학상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같이 출판사 카페를 들락거리며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그 출판사에서 신입 마케터를 뽑는다는 공지가 뜬 것이다.

      

아... 출판사 마케터라는 것도 있었구나, 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실제로 그 출판사의 면접까지 갔었는데,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물었다. “출판사 마케터가 뭐 하는 건가요?” 그 정도로 개념이 없었던 거다.


그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출판사 면접에서는 탈락했고, 칼을 갈고 내보낸 신인 문학상에도 떨어졌지만, 이 사건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출판사는 원서를 낼 때 성적 증명서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소개서와 도서 서평을 잘 쓰면 서류는 통과할 확률이 높다는 것. 나에게 내려온 새로운 희망이자 동아줄이었다. 물론 그 동아줄은 아직 내 것이 아니었지만. (참고로 2010년의 일이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집요하게 출판사에 원서를 넣었는데, 실제로 면접에 오라는 연락도 꽤 많이 받았다. 결국 그중에 한 출판사에 입사했는데, 사실 거기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다. 그냥 면접 본 당일에 합격 통보를 했길래 다른 면접을 전부 취소하고 입사했을 뿐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손에 꼽힐 만큼 큰 회사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책을 엄청 사랑했다거나, 다독가였다거나, 꼭 반드시 출판사에서 일해야겠다는 마음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여기저기 원서를 넣었는데, 출판계가 내 손을 잡아준 것뿐이다.      


다행히 일 자체는 적성에 맞았고, 2년 남짓 잘 다니다가 첫 회사의 편집장께서 독립해 새로 차린 출판사의 창업 멤버로 들어갔다. 내 나름대로는 안정적인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셈인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출판사 창업의 A부터 Z까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회사는 몇 년을 전전긍긍했지만 이후 책 한 권이 무려 150만 권 판매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면서 그야말로 급성장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무렵 조금씩 이 회사를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안락한 온실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만으로 시장에서 승부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자신감이기도 했고, 출판 뭐 있나 하는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시절이기도 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당시 우리 회사와 긴밀하게 일하던 모 대기업이 있었는데, 그 담당 직원을 보면서 뭐랄까... 진짜 비호감이라고 해야 하나, 되게 매력 없는 인간이라고 해야하나... 뭐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진 어떤 장점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회사의 직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몰랐고, 아마 지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계속 그 회사 소속이라면 여전히 많은 이들의 접대와 상찬을 받겠지만, 아마 회사를 나오고 개인 누구로 변하는 순간 그녀를 둘러싼 모든 메리트는 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엄청난 매출을 기록한 잘 나가는 출판사의 마케팅 팀장이라는 갑옷을 벗고, 나의 기획과 나의 마케팅만으로 승부를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내 퇴사의 결심을 알게 된 이들은 다양한 조언을 건넸는데,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부터 망할 거니까 그냥 회사에 계속 있으라는 걱정까지 극단을 오갔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쪽도, 나쁜 쪽도 딱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능력은 누군가의 격려나, 응원이나, 걱정이 아니라 오직 시장이 판단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어렸고, 치기 넘치는 2016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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