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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안녕하세요?

가우디의, 가우디에 의한, 가우디를 위한 도시 1

by 정시와

모처럼 장거리 비행길에 올랐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딸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그동안 딸과 다녔던 해외여행 국가들은 모두 아시아에 위치했다. 물론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 다닐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상황임을 모르지 않지만, 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따라서 아시아와는 판이하게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생김새부터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유럽을 택한 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첫 번째 도착지는 그중에서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다.

전쟁 때문에 항로가 기존과 변경된 것일까.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중국의 고비사막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딸의 장래희망 중 하나는 건축가였다. 사실 이는 엄마인 나의 못다 이룬 꿈이 반영된 결과였다. 세상과 인간에 분명한 쓸모를 제공하는 아티스트인 건축가. 이는 나의 오랜 동경의 직업이었고, 모호한 열망을 어린 딸에게 몇 차례 전달한 끝에 딸은 한때 장래 희망을 건축가라고 답하곤 했다. 더 이상 그녀의 꿈이 건축가는 아니었지만 언젠가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업적들을 직접 확인해 보자는 꿈까지 접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 우리의 첫 번째 유럽 여행을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하기로 한 건, 오롯이 가우디 때문이었다.


파리의 샤를 드 공항을 거쳐 바르셀로나까지. 안 그래도 긴 비행이었는데 예기치 못한 비행 지연 상황까지 겹쳐, 한국에서 인천 공항을 향해 집을 떠난 지 약 24시간 만에 바르셀로나의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운행하는 쾌적하고 편리한 공항버스 덕분에 고생하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지만 현지 시각으로 이미 자정이 넘었고 몸은 그야말로 녹초였다. 다행히 바르셀로나의 중심지인 까딸루니아 광장에 위치한 호텔은 안락했다. 당연히 샤워를 마치자마자 바로 뻗었다.


거의 24시간 잠을 못 이룬 덕분에 강제적으로 시차적응이 되어 다음날 아침, 상쾌하게 눈을 떴다. 체감상 늦가을이나 초겨울 같았던 1월의 바르셀로나. 서울보다 훨씬 포근했다. 딸은 처음 만난 유럽의 길거리 풍경에 예쁘다고 감탄했고, 우리의 첫 번째 행선지 ‘카사바트요’ 까지는 도보로 30분 이내에 불과했다. 걷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카사바트요는 ‘바트요의 집’이란 이름으로 가우디가 20세기 초반 설계한 건축물로,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기도 하였다. 1993년부터는 세계적인 사탕 회사 츄파춥스 가문에서 이를 인수해 대중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개방했다고 한다. 이미 한국에서 수차례 관련 동영상을 보며 예습하고 갔지만, 대담한 곡선과 섬세한 기교로 표현된 건축의 아름다움을 눈앞에서 대면하니 실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히 탁 트인 옥상으로 나가니, 바르셀로나 전경과 어우러진 건축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 배가되었다. 보수 공사 차원에서 덧칠을 하고 있는 모습마저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가우디의 머릿속을 인공지능으로 재현했다는 미디어아트까지 관람하고 나오니 그야말로 내면까지 풍성해졌다.


원래 근방에 있는 가우디의 또 다른 건축물도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긍정적인 에너지로 꽉 찬 심신을 흐트러트리고 싶지 않아 계획을 바꾸어 1일 1 가우디를 취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총일주일을 머물기로 계획했던 터라 일정은 충분했다. 여유롭게 거리와 시장을 거닐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도시를 느꼈다. 거리에서 들리는 로제의 <APT>에 와락 반가움을 느끼기도 했고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면서도 서점에 들어가 기웃거렸다.


고단했던 긴 비행 끝에 획득한 여유와 달콤함.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첫째 날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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