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버디!

< 레드포드의 스파이 길들이기>

by simpo

# 이 영화에서 두 대의 포르쉐가 나온다. 한 대는 주인공의 차니까 찾기 쉽다. 숨어 있는 한 대는?

# 이 영화를 본 이후 나의 드림카는 포르쉐다.

# '포르쉐 912', 60년대 후반에 나왔다. 911보다 싼 보급형 버전이다.

은퇴를 앞둔 늙은 스파이에게 이토록 어울리다니!

# 두 번째 보면 "훠얼씬" 재미있다. 세 번째 봐도 재밌었다.

# 뻔뻔한 영화평 ***** 별 5개 (이 정도 '버디 무비'찾기 쉽지 않다. 게다가 레드포드와 브래드...)

2001년작 토니 스콧 감독의 '스파이 게임(Spy Game)'은 제목처럼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게임’ 같은 첩보 세계를 담아낸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권력의 음영 속에서 벌어지는 작전과 배신, 그리고 계산된 우정이 스크린 위에서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두 배우의 조합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브래드 피트. 세대가 다른 두 배우가 만나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냈다. 레드포드는 CIA 베테랑 네이선 무어 역을 맡아 여유와 노련미로 이야기를 이끌고, 피트는 이상주의적 요원 톰 비숍으로 등장해 젊은 패기와 불안을 동시에 드러낸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은 따로 긴 액션이 없어도 팽팽하다. “스승과 제자”라는 단순한 관계에 머물지 않고, 서로를 시험하고 부딪치며 만들어지는 복잡한 신뢰의 스펙트럼이 영화 전반을 관통한다.

연출을 맡은 토니 스콧은 특유의 스타일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빠른 편집과 세련된 색감, 현장감 있는 카메라 워크로 관객을 CIA 작전실과 베이루트의 거리 사이를 종횡무진 끌고 다닌다.

개봉 당시 반응도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 직후 공개되어 음울한 정치적 공기 속에서 다소 조심스러운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레드포드의 은퇴 전 마지막 대작급 연기”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브래드 피트 역시 단순한 액션 스타를 넘어 진중한 드라마 연기도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보면,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세대교체 순간을 기록한 작품처럼 보인다.

버디 무비의 고전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작품이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일 것이다. 여기서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는 전설적인 케미를 만들어냈다. 뉴먼의 여유와 재치, 레드포드의 젊은 패기와 날카로움이 어우러져, 두 사람은 그저 그런 갱이 아니라 세상과 맞서는 ‘짝패’가 되었다. 이후 '스팅(1973)'에서도 두 배우는 다시 만나 “뉴먼-레드포드 조합”을 영화사에 남겼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스파이 게임(2001)'에서는 레드포드가 이번엔 “폴 뉴먼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의 곁에 있는 파트너는 브래드 피트. 젊고 정의감에 불타는 캐릭터를 연기한 피트는 마치 과거의 레드포드를 떠올리게 한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묘한 중첩을 본다. 폴 뉴먼이 레드포드에게 보여주었던 관계의 패턴이, 이제 레드포드와 피트 사이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둘의 관계가 동등한 파트너십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뉴먼-레드포드가 서로를 ‘짝패’로 인정하는 관계였다면, 이 영화에서 레드포드-피트는 스승과 제자의 구도 속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버디 무비 특유의 교차점이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가장 깊이 신뢰하는 존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 피트가 자신을 구한 사람이 무어(레드포드)였음을 깨닫는 순간, 영화는 버디 무비의 전통을 품은 채 엔딩을 맞는다.

이렇게 보면 '스파이 게임'은 버디 무비의 계보 위에 놓인 스파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뉴먼과 레드포드가 남긴 유산을, 레드포드와 피트가 이어받아 다시 한번 재해석한 셈이다. 레드포드라는 배우는 두 시대를 잇는 연결점이고,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에게 첩보물 이상의 감흥을 남긴다.

이 영화가 개봉한 2001년은 특별한 시기였다. 냉전이 끝난 지 10년 남짓, 세계는 단극 체제로 굳어진 듯 보였고, 미국은 자국의 패권을 확신하고 있었다. 동시에 중국은 WTO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중국이 점차 개방과 협력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낙관론이 미국과 유럽 정치권을 지배했다.

영화는 중국이 아직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편입되기 직전의 국제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당시 스크린 속 중국은 권위주의적 체제로, 미국과는 결코 진정한 우방이 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불과 몇 일 뒤인 2001년 12월 11일, 중국은 WTO에 가입하며 세계 경제 질서의 한 축으로 편입된다.

이 역설은 흥미롭다. 영화가 담아낸 중국의 이미지는 여전히 ‘체제 밖의 타자’였지만, 실제 역사 속 중국은 곧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제작되던 시기, 서방의 정치인과 제작자들은 미래의 미중 관계를 과연 예측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그 불가피한 충돌을 이미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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