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57 - 이탈리아 제노바
제노바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항구도시이다. 대항해 도시의 영광을 가진 곳으로 콜럼버스의 집도 이곳에 있다. 세라발레 아웃렛에서 출발한 아톰이 고도를 높인다. 그리고 꾸불꾸불한 길을 한참 달리니 저 멀리 제노바가 보인다. 고속도로임에도 길이 꾸불꾸불 해서 속도를 40km 이하로 낮추어야 하는 구간도 있다. 이게 정말로 고속도로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다. 오늘 아톰이 또 커다란 산을 넘었다.
오늘은 낮에 제노바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제노바 외곽에서 정박하려고 한다. 항구 쪽 유료 주차장은 요금이 만만치 않고 시내에 정박할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낮에는 IKEA 매장(영업시간에는 자유롭게 이용 가능)을 이용하기로 했다.
IKEA 매장으로 가는 길에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그 위로 양쪽 산을 연결하는 높은 고가도로가 끊어져 있는 게 보인다. 아내는 최근까지 사용하던 고가도로였는데 갑자기 끊어져 위에 있던 차들이 아래로 떨어진 사고가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제노바가 재난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 현장 아래를 지나간다. 우리가 저 위에 있었거나 또는 지금처럼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을 때 그런 사고가 났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우리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생각난다.
IKEA 매장 앞에 제노바 아쿠리아룸이 있는 항구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몇 정거장 더 가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노선도 확인했고 이제 남은 것은 버스를 타는 일이다. 그런데 버스표가 없다. 이 곳은 외진 곳이어서 정류장에 버스표 판매기가 없다. 주변의 정류장을 찾아보아도 마찬가지. 어찌하겠는가? 일단 타고 보자!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온다. 여자 기사님이다. 제노바에서는 버스 운전사 중에 여자 기사님이 많이 보인다. 차에 올라 타 버스표 살 수 있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없다고 한다. 제노바에서는 기사님들이 돈을 만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냥 타란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환승 정류장에서 버스 티켓을 구매하고 다시 출발. 제노바에서는 1회권 버스표(1.5유로)를 사면 100분 동안 이용 가능하다.
항구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유람선들로 가득하다. 제노바 관광 중심지인 페라리 광장 쪽으로 걸어가 본다.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길을 헤매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길들이 매우 좁고 어둡다. 과거에 화려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누추해 보이는 건물들이 좁은 골목길을 만들고 있다.
길을 다시 찾아 올라간 곳에서 처음 만난 제노바 대성당 San Lorenzo. 흰색과 검은색 계열의 돌을 번갈아 가며 만든 외관이 이색적이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이 흰색으로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면 제노바 대성당은 대비되는 두 색의 안정적인 배치를 통해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성당 안에는 밝고 화려한 색의 암석을 활용해 기둥을 만들고 제단에는 나선형 기둥으로 로코코 양식의 멋을 뽐내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성당 중에서 규모는 비록 거대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색의 암석을 이용하여 로코코 양식의 화려함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성당이었다. 그리고 이 화려함은 과거 이 도시가 얼마나 번영했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이색적인 성당을 뒤로하고 각종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이 가능한 Doge’s Palace로 가본다.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레드 카펫이 깔려 있어서 우리도 이벤트에 참가하는 주인공이 되어 본다. 이쁜 옷을 입고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한 장 찍어보자. 이런 게 재미 아닌가.
페라리 광장에도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날씨가 쌀쌀해져서 인지 그렇게 붐비지 않는다. 주변 건물들이 권위적인 모습으로 느껴진다. 나는 권위적인 건물을 보면 무언지 모르지만 불편하다. 특히 크기나 웅장함으로 권위를 나타내고자 하는 건물을 보면 더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그 권위적인 모습의 건물 뒤로 가면 ‘콜럼버스의 집’터가 나온다. 어떤 모습일까?. 아주 작은 집터에는 집 기둥만 남아있다. 대 실망. 제노바가 콜럼버스의 고향인지 모르겠다.
무언가 아쉬운 제노바 여행을 마무리하고 오늘 정박 후보지로 가야 한다. 다음 목적지는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이다. 피사는 제노바에서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정박지도 제노바 남쪽의 마을로 정했다. IKEA를 출발한 아톰은 좁은 해안 절벽 위의 도로를 달린다. 저 멀리 보이는 해안가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큰 고통의 순간이다.
정박지로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좁은 길이어서 좌회전하기도 힘들고 뒤에서 많은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리고 앞에서는 작은 승용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정박 후보지는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 포기하자. 그냥 앞으로 달려가 본다.
절벽 위에 불이 꺼져 있는 식당 앞에 빈 주차장이 있다. 일단 저기에 서 보자. 절벽 위 주차장이라 경치가 너무 좋다. 오늘 여기에서 정박해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식당에 불이 들어오고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식당은 저녁에만 영업을 하는 곳인가 보다.(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탈리아는 점심 이후에 꽤 오랜 시간 문을 닫고 다시 영업을 한다.) 이제 이 주차장에 손님들이 올 것이다. 다시 움직여야 한다.
피사 가는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공용 주차장으로 오늘 정박지를 정해 본다. 다시 출발. 길이 정말로 구불구불하고 많은 차들이 앞 뒤로 달린다. 아톰은 무게 중심이 높아진 캠핑카 특성상 코너 길에서 속도를 내기 어렵다. 평지와 직선도로에서는 승용차와 크게 다르지 않게 속도를 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차들이 아톰 뒤로 줄지어 서 있다. 그리고 이제 밤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위험한 상황이 되고 있다.
해가 지고 나서 힘들게 도착한 Recco의 공용 주차장은 밤 8시부터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주변에는 마트와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다. 주차장 위로는 고가도로로 자동차와 기차가 다닌다. 밤이 될수록 차량과 기차 소음은 줄어든다.
해가 진 어두운 밤에 이 곳에서 하루 밤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정말 감사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