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영광의 그림자를 찾아서!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58 - 이탈리아 피사

by 류광민

아톰아, 조금만 고생해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이자 목적지인 피사는 우리에게 피사의 사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젯밤 위험한 밤길을 벗어나 무사히 정박지를 찾을 수 있었다. 오늘부터는 조금 편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노바에서 피사까지는 해안을 따라 산맥이 이어지는데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이 산맥을 빠져나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있는 정박지 Recco에서 고속도로로 진입 하기 위해서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길 조차 곡예 운전이다. 오늘도 아톰에게 미안한 여행길이다.


"아톰아, 조금만 고생하면 고속도로로 들어갈 수 있어!"

산 위를 달리는 고속도로지만 밀라노에서 제노바로 오는 고속도로에 비하면 도로환경이 정말로 좋은 편이다. 중간에 적당한 휴게시설은 없었지만 속도가 꽤 나서 생각보다 일찍 피사에 도착했다.


한국인에게는 이상한 선택의 갈림길

피사는 평지에 있는 도시이다. 과거에는 도시가 해안가로부터 가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노바처럼 해안도시였다는 것이고 과거 제노바와 경쟁하던 도시 왕국이었다.

피사 입구에 관광버스나 관광객 차량을 주차시킬 수 있는 대형 무료 주차장이 있다. 주유소와 편의점도 있다. 편의점 밖에 쉽게 눈에 뜨이는 지점에 유료 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숨어 있는 무료 화장실이 있는데 바로 편의점 안에 있다. 편의점에서는 밖에서 보일 수 있도록 ‘Toilet Free’라는 종이 안내까지 붙여 놓고 있다.

유럽인에게도 유료 화장실 이용보다는 무료 화장실 이용이 더 매력적이다. 눈치가 있는 관광객들은 모두 편의점 안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한다. 무료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편의점 물건을 사든 안 사든 그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선택은 각자가 할 일이지만 한 공간에서 유료 화장실과 무료 화장실이 경쟁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화장실은 당연히 제공되는 공공복지 시설이라는 세상에서 살아왔던 한국인인 나에게는 이런 일이 참, 재미있다.


느린 이동

무료 화장실과 유료 화장실이 경쟁하는 대형 주차장에서 피사의 사탑까지는 10여분 걸어가면 된다. 관광객용 미니기차를 타고 되고 버스를 타도 된다. 우리에게 적당한 거리는 걷는 게 기본이다. 걷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점이 있다.

걷다 보면 현지의 문화나 환경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천천히 이동해야 세상이 조금 더 가깝게 보인다. 빠른 비행기나 자동차는 여행에서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빠른 세상은 더 많은 지역에 대한 여행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여행 지역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가는 이 또한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속도가 빨라질수록 부족해지는 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느림의 여행은 확대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욕망이 항상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왔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여행 전략이 바로 걷는 여행이다. 우리도 그 걷는 느린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피사가 이런 도시야!

피사의 사탑이 있는 입구 앞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있다. 장사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Pavia에서 처럼 이주민들이다. 그리고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작은 소품을 파는 흑인들도 눈에 뜨인다. 이런 현상은 이탈리아 여행 내내 줄곧 이어졌다. 판매대에서 팔고 있는 기념품들은 가격이 착한 편이다.

시장 골목이 되어버린 마닌 광장의 성 입구를 통과하면 넓은 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은 시노 피에 미술관이고 왼편에 하얀 벽으로 된 원형 모양의 세례당, 그 너머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1118년에 헌당식)과 피사의 사탑(1350년 완공)이 보인다.

그중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것은 당연 피사의 사탑이다. 피사의 사탑은 피사가 사라센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승리 기념탑 정도가 될 것이다. 탑의 용도는 성당의 종탑이다. 탑이 높을수록 종소리는 더 멀리 퍼져 나갈 것이고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 승리한 위대한 왕국임을 나타내는데 이처럼 좋은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탑의 높이를 얼마로 하고 얼마큼 웅장하게 하느냐가 왕국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그 위상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뒤쳐져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이웃하고 있는 그 당시 왕국들과 비교해서도 말이다. "피사는 이런 정도는 되는 왕국이야!"라고 자랑해야 한다.

비록 지금 피사는 작은 도시가 되었지만 피사의 사탑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영광과 자랑스러움을 나타내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통치자들이 피사의 사탑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피사의 영광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대부분 과거의 영광의 그림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피사의 사탑은 분명 사진에서 많이 보던 것이다. 사진으로 볼 때에는 느낄 수 없는 이상한 화려함과 감정이 나에게 밀려온다. 간혹 현실보다는 사진이 더 큰 감명을 줄 때가 있고 사진보다는 실제가 더 큰 감명을 줄 때가 있다. 피사의 사탑은 사진이 아니라 실제가 더 큰 감명을 준다.


고대 수로 유적지에서 하루 밤

피사의 사탑이 주는 이상한 감명을 뒤로하고 피사 시내와 성 외곽을 돌아본다. 여기저기에 과거 시대의 유물 흔적들이 널려 있다.

피사 시내에 있는 Coop 슈퍼마켓에서 오래 오래간만에 제대로 신선식품을 사고 외곽에 있는 정박지로 향한다. 피사에서 하루 쉬어갈 정박지는 고대 수로가 있는 작은 공원이다. 새벽에 주민들이 조깅을 하거나 산책하는 도로에 있다. 차 창문을 열면 작은 개울이 흐르고 아직 수확하지 않은 올리브 나무 밭이 보인다. 공원 한쪽에 조심스럽게 차를 대고 쉬어본다. 오늘도 일찍 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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