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60 - 이탈리아 피렌체 보볼리 정원
역사 도시 관광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피렌체와 같은 유명한 도시의 관광은 구도심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피렌체 구도심에는 가볼 만한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3일 이상 머물며 여행하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대도시 여행에 부담감이 든다. 아마 캠핑카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도시 여행이 무언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제 피렌체 구도심 관광을 마친 우리는 오늘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이다. 찾아가 보면 좋을 곳이 많이 있지만 떠나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보볼리 정원이다. 시간이 없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정원은 피렌체 도심을 흐르는 아르노 강 건너편에 있어서 구도심 관광에 집중하다 보면 관심을 받기 힘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은 아마 보볼리 정원보다는 메디치 가가 사들여 주궁으로 사용하였다는 피티 궁전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궁이 아니라 이 궁에 딸린 보볼리 정원이다.
내가 보볼리 정원에 꼭 가고자 하는 이유는 이 정원이 16세기 이탈리아 정원을 대표하는 정원 양식을 잘 가지고 있는데 이 정원 양식이 근대 정원 양식의 한 축인 프랑스 정형식 정원 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테마파크의 기원이 되어준 프랑스 정형적 정원의 모델이 되었던 곳 중 하나인 보볼리 정원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가 궁금하다.
어젯밤을 보낸 정박지에서 보볼리 정원을 거쳐 저녁에는 중세도시 산지미냐노로 출발할 계획이어서 아톰을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출발부터 고생이다. 스위스에서 이상한 길로 안내를 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나온 이후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내비게이션이 오늘 큰 사고를 쳤다. 아톰에게 보볼리 정원 후문 주차장 좌표를 입력했다. 이제 출발!
아톰 여자 친구가 작은 길로 안내하더니 산 위 좁은 길로 올라간다. 그런데 앞에 승용차들이 몰려온다. 차량 두대가 한꺼번에 지나갈 수 없다. 옆으로 최대한 비켜서도 앞에서 오던 차가 빠져나가질 못한다. 내가 뒤로 가야 할 상황이다. 정말로 좁은 길이라 후진에 엄청 신경이 쓰인다. 그때 젊은 친구가 나와서 아톰이 뒤로 빠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조금 넓은 길로 나와서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아까 우리를 도와주었던 친구가 다가와 이 길은 도로가 좁으니 돌아가는 게 좋겠단다. 아톰이 무사히 차를 돌릴 때까지 옆에서 살펴 봐준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아톰 여자 친구를 믿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동안 너무 방심했다. 지도를 다시 살펴보고 내 방식대로 좌표를 입력하고 다시 출발해 본다. 그리하여 드디어 안전하게 보볼리 정원 근처의 도로변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피티 궁 방향이 아닌 포르타 로마나 광장 방향에서 정원으로 들어갔다. 좁은 문에서 입장표를 판매하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저 멀리 정원 안에 있는 대문이 보인다. 그 대문 앞에 넓은 원형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주위로 키가 큰 활엽수가 줄지어 서 있다. 이 활엽수들이 원형 잔디밭 세상을 보호해 주는 석상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조선왕릉에 가면 무덤을 주변을 석조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든다.
원형 잔디밭 중심은 모든 햇살을 가득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그 원형 잔디밭 한가운데로 직선 도로가 산 언덕 위로 시선을 이끈다. 외부 시선의 보호와 차단 그리고 집중, 이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시키는 메커니즘이 이 잔디밭에 담겨 있다.
이제 두 번째 무대 공간으로 다가가 보자. 이 곳에는 어떠한 시선 놀이가 숨겨져 있을까? 조그마한 문을 들어서면 커다란 분수가 나타난다. 앞에서 보았던 원형 잔디밭과 달리 이번에는 분수. 그 한가운데 우뚝 속은 화려한 조각 분수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 길로 가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조각 분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분수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이제 좌우에 높은 나무 벽이 둘러쳐져 있는 산책로로 들어선다. 경사가 있는 긴 산책로가 이어진다. 그 긴 산책로가 하나의 척추와 같은 뼈대를 이루고 있다면 갈비와 같은 길들이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교차로 한가운데 자갈로 만든 태양을 상징하는 조각품이 바닥 한가운데에 있다. 이 지점이 '산책로의 중심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내가 그 한가운데 주인공이 되어 서 본다.
경사가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언덕 정상 부분으로 올라가 본다. 정상 언덕 위에 커다란 동상이 자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저 아래로 피티 궁이 내려다 보인다. 이 동상은 아마도 세상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해 본다. 궁전과 동상이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배치. 영광을 상징하는 동상이 궁전을 내려다 보고 궁전에서 동상을 올려다보는 배치. 이러한 배치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마 이 궁전의 주인공이 세상의 영광의 주인공임을 상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이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피티 궁을 정면으로 바라다보는 정원 쪽으로 이동해 본다. 피티 궁 뒤쪽에서 보면 커다란 원형 잔디밭 가운데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 모양 조각품과 배 모양의 돌그릇(로마시대 석조 수반)이 한가운데 배치되어 있다.
이집트 파라오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태양왕 람세스 2세의 영광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태양의 영광을 상징한다. 태양이 원형 잔디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이 정원은 태양의 중심이 된다. 즉, 영원한 세상의 중심이 된다. 거대한 석조 수반은 태양의 영광을 한 가득 담아서 이 정원 모든 곳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제 궁전의 주인은 창 문 커튼만 열면 언제든지 태양의 중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러한 공간 배치를 통해 정원은 단지 산책을 하는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공간이 된다. 이 정원은 방문한 귀족들이나 관료들에게 피렌체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르치고 그 영광이 지속될 것이라 믿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회학자 푸코는 '공간은 생산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 명제는 공간은 항상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그러한 가르침에 따르도록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궁전의 주인이었던 메디치 가문에게 보볼리 정원은 궁전 안에 있었던 화려한 미술품과 가구들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상징물이었을 것이다. 이는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가 만들었던 베르사유 궁전 정원과 보볼리 정원은 시선 메커니즘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보볼리 정원과 같은 프랑스 정형식 정원에서는 편히 쉴만한 공간이 많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도 보볼리 정원은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의 공간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몇 개의 조각품과 원, 직선을 평면과 경사면에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러싸인 공간 배치는 하나의 권력에 사람을 집중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나는 보볼리 정원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공간에 대한 여행을 통해서 권력 유지 메커니즘에 자연스럽게 훈련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딸이 한국에서 피렌체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을 검색해서 가르쳐 주었다. 그렇지만 차를 몰고 저 복잡한 도심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다시 도시를 벗어나기로 한다. 다음 목적지는 산지미냐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