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76 - 그리스 파트라스
어제 이탈리아 바리를 떠나 그리스로 향한 페리는 새벽에 작은 항구에서 몇 대의 차를 쏟아낸 후, 우리 목적지 파트라스에 12시 30분에 도착했다. 도착한 파트라스 항구는 한가롭다. 배에서 나온 차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항구를 빠져나간다. 자동차를 가진 우리는 일반 승객과 별도 통로를 통해 아톰에게 와 시동을 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조금씩 나던 벨트 소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 그래도 걱정이다. 빨리 갈아야 할지 모르겠다.
늦게 도착하면 파트라스 인근에서 정박하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내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진다. 내일 가기로 했던 고대 올림 유적지까지 오늘 갈까를 고민 중이다.
‘그래 가는 게 좋겠어. ’
나 혼자 속으로 그렇게 결정했다. 그리고 항구 정문 앞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넣는다. 기름값이 이탈리아보다 조금 싸다. 그리고 옆에 붙어 있는 마트에서 며칠 동안 사용할 식료품을 사러 들어갔다.
아내는 이것저것을 고르고 비교한다. 처음 와본 그리스 슈퍼마켓이니 이탈리아 슈퍼마켓과 자연스럽게 비교 된다. 그동안 며칠 동안 대형 슈퍼마켓을 들르지 못했고 그리스 여행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사야 할 물건도 많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간다. 오늘 고대 올림픽 유적지까지 가야 하는데 말이다. 조급해진다. 늦어지면 안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피곤함이 갑자기 몰려온다. 사실 어제 배에서 의자를 연결해서 잠을 청했다고 해도 편한 잠이었겠는가.
아내는 슈퍼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항상 나에게 묻는다. 그냥 사도 되는데 말이다. 그리고 빨리 떠나야 하는데 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 마음은 급해지는 동시에 피곤까지 하니 내 얼굴에 그런 마음이 다 드러났나 보다. 아내의 요청에 호응도 하지 않고 빨리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아내가 물건 사는데 같이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왜 서둘러요? 오늘은 이 근처에서 자기로 한 것 아니에요?”
원래 계획은 그랬다. 그런데 계획을 바꾸기로 한 나의 생각을 미처 아내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나 혼자의 생각으로 바쁜 것이었다. 나는 바삐 움직여야 하는데 아내가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속에서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아내는 오늘 여유 있게 움직여도 되는데 왜 시간을 재촉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정말로 내가 아내에게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나의 계획을 전했다. 다행히 아내가 나의 사과를 받아 주었고 우리는 파트라스를 출발할 수 있었다.
아내와의 힘겨운 싸움을 무사히 마치고 파트라스 항구를 벗어난 아톰은 고대 올림픽 유적지를 향해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가에 크고 작은 자동차 정비공장이 있다. 벨트 소리에 신경이 쓰였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 정비공장에 차를 댔다. 나이가 지긋하신 주인분에게 핸드폰에 녹음해 두었던 벨트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분이 젊은 친구를 부른다. 그 친구를 따라가라는 모양이다. 아마 그곳에서는 고치지 못하니 고칠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젊은 친구의 오토바이를 따라 가니 아톰을 봐줄 정비소가 있다. 간판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표시가 있다. 이곳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손 봐주는 곳으로 보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다시 녹음된 벨트 소리를 들려준다. 보닛을 열어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액셀도 밟아 본다. 지금은 열이 받은 상태이기 때문인지 소리에 이상이 없다. 이 분들 하시는 말씀이 지금은 이상이 없단다. 나중에 갈아도 된다고. 그냥 가란다. 한국이었으면 벨트를 갈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우리를 데려온 친구도 그때서야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갔다. 자기 가계에서 고치는 차도 아닌데 먼 곳까지 안내를 직접 해주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고 수고비도 받지 않고 점검을 해준 분들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그리스 첫날 만난 그리스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다.
소리 나던 벨트는 그리스 여행이 끝난 후, 터키 안탈리아에서 교체했다.
그리스의 친절은 파트라스에서 시작해서 그리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스는 캠핑카 여행 중 우리에게 가장 친절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 시작은 파트라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