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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미 Dec 26. 2022

2022년 회고 (세계여행을 마치며)

Written by 클래미

벌써 2022년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시작한 10개월 세계여행 '산티아고 프로젝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요. 4월부터 내년 1월까지 우리는 20개국 45개 도시를 누비며 유럽, 북미, 중동 곳곳에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여행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어디가 좋았는지 혹은 아쉬웠는지 등 얘기해 본 적이 있는데요. 여행 자체를 후회한 적은 서울을 뜨고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여행 중간에 homesick으로 아내가 집에 가고 싶다고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한때 너무 저렴한 숙소만 찾아다니다 보니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화장실만한 다락방에서 5일 정도 지낸 적이 있었는데요. 푹푹 찌는 8월에 선풍기도 없어서 너무 덥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숙소 호스트가 가족처럼 친근해서 버틸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정말 한국에 돌아올 뻔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아내의 기분을 달래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앞으로 좋은 숙소를 찾는 안목이 더 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짐 한 번 안 잃어버리고 잘 다니고 있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멀리 이동하거나 기온이 크게 바뀌면 며칠 동안 몸살에 걸려 집에만 박혀있었던 적이 있었지만요.




1. 여행의 시작, 시행착오


여행을 출발하기 전까지 브런치 구독자가 70명 수준이었는데요.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글을 링크드인에 공유하자 놀랍게도 해당 게시글이 바이럴이 되면서 6만 명 이상이 조회하고 브런치 구독자도 3배 늘었습니다. 댓글과 메시지로 모르는 사람들도 응원해 준 덕분에 우리는 여행 처음부터 큰 힘을 받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를 통해 실시간 공유했지만 사실 여행 초반부터 삐그덕거렸습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첫 비행기를 보기 좋게 놓쳤는데 한국 국적자인 아내에게 미국 여행은 무비자라며 그냥 가자고 했던 게 화근이었죠. 10개월 여행이 아니었다면 아마 아내에게 호되게 혼났을 겁니다. 그래도 저희는 남은 게 시간이라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텔 라운지 마냥 인천공항 구석구석을 누볐습니다. 벌써 9개월 전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 당시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이 요동쳤던 순간이 생생하네요.


첫 여행지인 포틀랜드에서도 너무 싼 렌터카를 빌린 바람에 주유 경고등이 없어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차가 퍼져버리거나 폭설 때문에 눈 속에 파묻혀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적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긴 했지만 어쩌면 저희가 지금까지 안전하게 잘 여행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초반에 액땜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는데 워낙 임팩트가 컸던 사건들이 많았어서 나중에는 별 감흥조차 들지 않았네요.




2. 여행의 중반, 생각의 연속


아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무런 방해가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늘 학원과 대외활동 때문에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가졌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야 독립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생활 때문에 항상 어딘가에 얽매인 느낌이었습니다. (아니면 스스로 어딘가 소속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번 세계여행을 핑계로 가족, 친구, 직장 등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 멀어진 지금이 여행 초반에는 홀가분했지만 중반이 되면서 불안감이 슬슬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 동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에 너무 뒤처지지 않을지, 나중에 한국이든 어디든 복귀하려 할 때 마음처럼 잘 안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여행만 하기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침대에 누워 새벽까지 아내와 솔직한 감정을 토로하고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면 브런치에 글로 남기기도 했죠. (덕분에 콘텐츠가 많이 생겼습니다)


다양한 여행지는 우리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습니다. 다시 학생이 된 마음으로 이것저것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생각을 주고받는 게 우리에게 큰 리프레시가 됐던 것 같네요.


여행하면서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한다면 당연히 아내와 10개월 동안 24시간 붙어있던 시간입니다. 로맨티시스트로 보이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무인도에 우리 둘만 남은 인생의 동반자 같은 느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인터넷이 끊긴 채 10시간 넘게 기차를 타게 된다면 주제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대화를 나눴는데요. 남는 것은 시간뿐이니 대화의 내용과 주제가 한없이 깊고 넓어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서로에게 많은 영감이 됐던 것 같습니다.




3. 여행의 끝자락, 새로운 시작


가장 큰 원동력이 데드라인이라고 하잖아요. 만약 여행이 2년짜리였다면 아직도 여행 중반 때 감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3주 안으로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시간 날 때마다 여행 초반부터 천천히 곱씹어보게 됩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30대를 시작하며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후회가 없을지를 탐색하는 것이었는데요. 꼭 커리어가 아니더라도 가치관, 결혼 생활, 자녀 양육 등 삶의 전체적인 부분에서 말입니다. 그 사이에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단단해지고 성장했음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목적을 초과 달성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손아귀 밖인 커리어 문제일 텐데요. 최대한 타협하지 않고 제가 깊이 공감하는 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반에 했던 걱정과는 달리 긍정적으로 연락 주신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새해가 되기 전에 확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아내와 함께 10개월 세계여행이라니요. 상상조차 못 했던 한 해가 벌써 지나갑니다. 매년 불확실성과 걱정으로 내년을 준비하던 마음과 달리 올해는 충분히 리프레시를 했으니 2023년에는 더 자신 있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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