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된 아들이 첫 중간고사를 치렀다.
1학년은 자유학년제라 성적과 무관하게 살았기 때문에, 모두 해맑다.
성적표가 나오기 전, 우리 가족은 닥쳐올 앞일은 모른채, 이런 쿨내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 얘들아. 공부는 못해도 돼. 먼저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라.
나: 이미 충분히 행복한 거 같은데?
남편: 그런가? 얘들아. 공부는 못해도 돼. 건강하고 행복하면 된다!
나: 그리고 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매일 샤워하고, 양치질. 아, 그리고 청소도 좀 하자!
딸: 아, 너무 바라는 게 많잖아!
아들: 침묵 (차라리 공부를 하고 말지)
이렇게 쿨한 척 하던 남편은 막상 아들이 성적표를 받아오자 충격을 받았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냐며 걱정이 한가득이다.
코로나 19 시절과 자유학년기간 동안 참자유를 누리던 아들에게도 급작스런 시련이 찾아왔다.
왜 공부를 해야되냐, 대한민국의 교육은 썩었다. 사춘기 답게 불만도 많다.
"아들아, 옛날에는 너 나이 때 다 밭일하고 공장 다니고 그랬어~"
"웬 꼰대 같은 소리~?"
"아니.. 그런데 하도 그렇게 혹사하니까 인권침해라 그래서 청소년 노동을 제한하고 학습권을 보장한 거야. 그 나이 때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권리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권리가 아니라 너무.. 의무 같은데...?"
"맞아. 지금은 오히려 공부를 너무 많이 해야 되니까 그렇게 돼버렸네?
그런데 엄마는 그것도 반대야.
그래서 너무 늦게 밤 9시 넘어서 끝나거나 힘든 학원은 안 보내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하라고 하잖아. 엄마는 그런 세상에 안 휩쓸리고 너희를 보호하려고 애쓰고 있는 거야. 가끔 엄마가 버럭 하는 거는, 그 최소한도 안 하려고 하고 게으름 부리니까 화가 나서 그런 거지."
"음.. 나 왠지 감동받았는데?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아휴. 백만 년 만에 아들과의 대화가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막상 아들도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많이 실망한 눈치다. 안쓰럽다.
"근데,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라."
"전부는 아니라도 90%쯤은 되지 않을까?"
"글쎄? 30%쯤 되려나? 안될 수도 있고."
마침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유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아이유도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못했는데 훨씬 성공했잖아!"
"아이유'도'라니. 나는 잘하거든? 칫"
이 때, 옆에서 여동생이 얄밉게 끼어든다.
"엄마! 오빠가 OMR 밀려 썼대!"
"야 그거 말하면 어떻게 해~!!"
도끼눈을 뜨는 아들, 혼날까 봐 그런가 보다.
"그래? 실수할 수 있지 뭐. 괜찮아. 담부터 안 그러면 돼지.
그런데 밀려 써서 점수가 더 잘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으하하."
웃자고 한 얘기에 은근 자존심 상해하는 아들이다. 아직 본인이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듯하다.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항변인가?
공부 못해도 된다는 부모의 말에도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그만큼 어려서부터 경쟁과 불안의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근심의 눈빛이 아닌 믿음의 눈빛으로 늘 바라보고 싶지만, 매 순간 흔들리는 부족한 부모이기에, 이렇게 또 매일매일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