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아들과 함께 공부하기 프로젝트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by 찐니

당장 아들 중간고사가 내일인데, "태종 이방원" 드라마를 신나게 보고 나온 남편이 거실에서 아들 데리고 1시간째 중국 역사 강의를 하고 있다.

"와~ 아빠 천재 아니야?"

아들은 능글맞은 드립까지 치며 아빠 말을 재밌게 듣는 눈치다. 내일이 시험인데, 아빠의 갑작스런 강의가 점수에 얼마나 반영될지 미심쩍긴 했다. 대신 부자 화친에는 도움이 되는 거 같아 그냥 놔두었다.

그런데 긴 강의의 결론은?

"그래, 아들! 이제부터 같이 열심히 '태종 이방원'을 보자."

음... 아니,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런데, 다음 날, 아들의 역사 시험지를 채점해 보니, 놀랍게도 남편의 "태종 이방원" 역사 강의가 통했다. 백점을 맞은 게 아닌가! 갑자기 남편은 의욕이 충만해 지더니, 아들한테 수학 공부도 같이 하자고 한다.

이제부터 아들과 함께 하루 30분씩 공부를 해서 같이 수능을 보겠다나? 그런데, 막상 함께 문제집을 풀어보더니, 30년 만에 수학 문제를 풀어봐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며 아들한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속으로 며칠이나 갈까 생각하면서, 웃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그래, 니가 아빠 열심히 공부시켜서, 아빠 꼭 의대 보내줘. 알겠지?"


아들과 수학 공부를 시작한 지 이틀째가 되었다. 남편은 공식을 외우지 말고 원리를 이해해보자고 의욕을 보였다. 그런데,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다. 1시간이 넘도록 계속 혼자 고민중이다. 아들은 약속한 30분이 지났다며 아빠 옆에서 동생과 열심히 게임 중이다. 옆에서 내가 안타까워 슬쩍 설명해줬더니, 남편이 오만 짜증을 낸다. 그러자, 딸이 옆에서 단호하게 한마디 한다.


"엄마가 잘못했네!"

"그러네. 엄마가 아빠 의사 만들라고 의욕이 너무 앞섰다. 반성할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사라졌다. 어제 수학 공식 이해불가 사태에 상심한 나머지 가출한 건가 싶었는데, 골프연습장에 다녀왔다고 한다.


"골프 연습할 때도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따라 해 보라고 하면 되던 샷도 안되는데, 어제도 혼자 이해해 보려고 하는데 옆에서 훈수 두니까 쉬운 것도 이해가 안 되더라. 그런데 확실히 공부 못해서 엄마한테 핀잔 듣다 성질내는 아들의 심정을 완벽히 이해했어. 오늘은 주말이니까 1시간 동안 공부할 거야!"

라고 의지를 다진다. 나는 또 나도 모르게 훈수 둘까 봐 걱정돼서 남편과 아들만 놔두고 얼른 딸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핸드드립 카페 가서 커피까지 마시고 들어왔더니, 남편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지금 의대 가면 교수보다 내가 나이가 많을 거 같아. 그리고 지금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

음.. 오늘도 이해에 어려움이 있었나 보다.

"응? 아냐~ 자기는 동안이라 30대로 보이니까 괜찮아. 그리고 평소에 달리기도 열심히 해서 체력도 짱짱이 잖아~ 100세 시댄데 한참 더 할 수 있어. 걱정 마셔~"

그랬더니 남편은 다시 두 주먹 불끈 쥐며,

"빨리 중1 수학 정복하고 중2로 넘어가야겠다! 아들~ 일로와~ 아빠랑 또 공부하자!"

이렇게, 부자의 도전은 매일매일 계속되었다.


"이제 드디어 1과 끝났어. 내일부터는 자연수와 유리수다. 아들아!"

"정수와 유리수거든?"

"그래? 정수가 뭐야?"

"정수는 구슬이야."

정수가 구슬이라니? 무슨 유행하는 게임 아이템을 얘기하는 것 같다.

"음.. 어쨌든 오늘 태종 이방원 마지막 회니까, 이제 그만하고 tv 보러 가자~!"

남편은 아들의 뜬금없는 게임 아이템 타령에도 용케 짜증내지 않고 함께 사이좋게 드라마를 보러 간다.


아들한테 아빠랑 공부하는 거 좋냐고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어떤 점이 좋아?"

"그냥 아빠랑 같이 있는 거 자체가 편해."

그런데 아빠도 과연 그럴지 의문이다.

"오~ 잘됐네. 참, 건조기에서 이불 좀 빼서 줄래?"

"이불? 뺄까? 더할까, 나눌까, 곱할까? 우히히."

이쯤 되니 남편이 존경스럽다.


아들이랑 같이 공부하기도 힘들텐데, 남편이 설거지까지 하려고 한다. 그래서, 존경과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힘들지 않냐고 걱정해주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근데 애가 영특해서 잘 알아들어. 같이 공부하는 재미가 있어."

라고 한다. 역시 교육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내 눈에는 안 보이는 영특함이 왜 남편의 눈에만 보이는지. 1년 전 거 복습하고 있는데... 아버님 참교육자 인정이다!


애들 교육과 설거지와, 또 그리고 밥, 반찬은 재능 있는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그냥 변호사 업무에 더욱더 매진하는 걸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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