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내게 '빠르다'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4살이란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가 아닐까. 연수원 수료 후 취업도 빨리 했다. 당시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빨리 합격하고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연수원 수료 후 로펌에서 송무와 자문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3년 차가 되자 무려 130건의 사건을 동시에 진행했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닥쳐오는 재판기일에 맞춰 준비서면을 내야 하는데, 눈뜨고 일어나면 벌써 한 달이 지난 기분이었다.
또 11년 전 결혼과 동시에 임신과 출산, 육아로 점철된 삶을 살게 되었다. 육아를 경험해 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육아는 끊임없는 소소한 잡일(chores)의 연속이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고 필요한 것들을 사고. 제 때 처리하지 못하면 안 되는 일들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을 해 온 17년간 일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져서 작년 말 퇴사를 앞둔 시점에는, 생각과 동시에 손가락이 움직여 30분이면 재판서류나 의견서 10장 정도는 가뿐히 완성할 지경까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의 속도 향상과 동시에 찾아온 것이 있었다. 바로 조급증이었다.
조금만 계획보다 늦어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졌다. 내 일이야 그렇다 치고 후배들이 기한을 넘기면 돌연 화가 났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화를 못 내는 아이가 아니냐며 놀림까지 받은 일이 있었을 정도로 '화'와 친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낯설고도 내 본성에 반하는 일인 것 같았다.
또 다른 문제는 이 조급증이 일 빨리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언정 육아에는 방해가 된다는 거였다. 숙제를 빨리 안 한다는 이유로, 빨리 씻고 잘 준비를 안 한다는 이유로 큰 아이를 잡게 되었다. '기다려 주는 만큼 아이는 자란다'라고 했는데, 아이를 기다려주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둘째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약을 장기 복용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고서, 엄마는 강해야 해서 아이 앞에선 눈물을 보일 수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아픈 둘째에게는 아무것도 급한 것이 없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도, 수업시간에 보건실에 가도,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글씨를 잘 쓰지 못해도 마음이 급해지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건강히 자라는 것 외엔 다른 소원이 없었으므로.
그즈음 10년 정도 다니던 법인을 퇴사했다.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았다. 아직은 조급증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이제라도 빠름의 세상에서 내려와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직 가슴을 졸이며 발을 동동대며 화를 내며 살고 있었을 테니까.
삶은 아이러니이다. 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아이가 아프지 않았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기에.
안타깝게도 난 아직도 집에서 아이들에게 빨리빨리를 외친다. 일 빨리하는 조급한 엄마라 미안해. 조금만 더 느리게, 조금만 더 기다리며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날마다 후회하며, 오늘도 부러 큰 숨을 들이마신다. 눈에 띄게 호전되어 가는 둘째의 상태에 감사하며.
그래. 엄마는 너희들이 건강히 자라는 것 외엔 더 바랄 게 없어. 서두를 것도 조급할 것도 없다고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이야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