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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17. 2023

물음표 살인마 1, 미니에게

물음표 살인마 2, 안나가


 물음표 살인마 1, 미니에게


 

 미니 안녕! 화상 통화에서 미리 이야기했던 것처럼 공항 가는 길이나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답장을 쓰려고 했는데, 미니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편지를 보니 참을 수가 없었어요. 허겁지겁 씹지도 않고 삼키다 혀가 데일 수도 있지만, ‘참지 않고’ 해보겠습니다.

 

 우선 나는 잠이 오지 않거나 새벽에 눈이 떠지는 날이면, 그냥 그대로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울지 언정 절대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아요. 머릿속에는 생각들이 빗발치지만 나른한 몸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 상태’는 무척이나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초월적이랄까요. 나는 개인적으로 그 신비한 상태가 좋아서 그냥 둡니다. 일부로. 다음날 숙취처럼 더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냥 그 순간을 즐기는 편을 택하기로 했답니다.

 

 미니가 ‘나를 찾는 과정’이라는 돌멩이(주제)를 나에게 던졌을 때, 사실 내가 먼저 ‘헉’ 하고 놀랐답니다. 미니도 알잖아요?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한 두 개의 중요한 정보를 받아보고 나면 오는 그 직감 같은 거. 

 

 ‘이거 노답인데 vs 해 볼만하겠는데?’

 

 미니의 돌멩이를 받고 든 온 직감은 전자였습니다. 언뜻 식상한 주제처럼 들리기도 했고, 절대 답을 찾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꾸밈없이 직선으로 쏘는 저답게 “나를 왜 찾아요? 어떻게 찾아야 하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이라도 써야 하나요. 지금 편안하고 좋은데, 그거 꼭 찾아야 하나요?”라고 했을 때, 미니가 박장대소를 하며 “아, 안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너무 재미있는데?”라고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다른 글감을 찾아보자고 했을 거예요. 해보지도 않고 칭얼거리던 나를 있는 그대로 예쁘게 봐주어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용기가 났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주제로 돌아가서, 미니가 “나 역시 지금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인 것 같다.”라고 한 것처럼 나는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입니다만, 이 여정이 나와 미니 각자에게 그리고 또 우리에게 ‘something’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동료’였던 미니를 ‘친구’로서 다시 알아가는 이 과정이 무척 기대되고 신나요. 무엇보다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올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설레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돼서 매우 기쁩니다. (사실 답장은 후딱 썼지만, 일부로 며칠 뒤에 보냅니다. 미니도 이 맛을 꼭! 알았으면 했거든요.)

 

 돌이켜보면 나도 미니처럼 ‘나’를 찾는 것에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무리수’이자 ‘초월수’인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인 ‘원주율’을 구하는 것만 같았어요. 아무리 같은 상황도 그날의 기분, 날씨, 장소, 관계된 사람들에 따라 결괏값이 다르게 나오고, 또 그 관계된 사람들의 외, 내부적인 상황과 사정 등이 맞물려 언제나 다른 결괏값이 무한대로 반복 됐어요. 열심히 거르고 추려 겨우 규격화한 ‘나’는 보란 듯이 또 새로운 결괏값을 배설해 냈고, 그 결괏값이 내가 규격화한 ‘나’ 안에 정리되지 않아 다시 규격을 재정비하는 도돌이표 같은 상황에 맥이 많이 빠졌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원주율 = 약 3.14’라는 공식이나 ‘이효리 = Hyorish’라는 개념처럼, 그냥 ‘나 느낌’으로 두리뭉실하게 나를 인지하는 걸로 타협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로 답이 나올 수 없다.’라는 ‘전제’, 아니 ‘변명’ 뒤에 비겁하게 숨은 걸 수도 있겠어요. 어쩌면 방어 기재일 수도 있고요. 

 

 ‘나의 어떤 파편들은 과거의 나의 유산과 함께 꿰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라는 미니 말은 나로 하여금, ‘나를 찾는 것’에 소홀하고 나태했던 나를 반성하게 했고, ‘나의 예민한 지점들의 공통점을 찾아 연결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미니의 사려 깊음은 다시 또 동공이 흔들릴 뻔한 나를 구원했답니다. 이왕 떠나기로 한 거, 꼭 파랑새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다만, 그 파랑새가 어여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기로 해요. 저는 근본적으로 새드니스 베이스지만, 새드엔딩보다 해피엔딩을 더 선호하니까요.

 

 글을 마치며, 미니가 언급한 ‘선망과 창피함’, ‘패배감’, ‘스스로에 대한 평가’, ‘쓸모에 대한 고민’, ‘부끄러움’ 같은 단어와 문장들을 읽을 때 쓸쓸하고 애틋했어요. 이상하다거나 나쁘다거나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 그냥 미니가 그동안 파랑새를 찾으면서 많이 아팠던 걸 아니까, 이번엔 조금 덜 아프고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앞으로 주고받을 편지에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다음 편지는 미국에서 쓰겠네요.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미국에 대한 나의 신선한 첫인상도 기대해 줘요. 그럼 안녕.

 


 물음표 살인마 2, 안나가

 







Photo l © 안나와 미니 

2023년 장항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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