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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18. 2023

음흉한 구석이 있는 안나에게

헛바람에 실없는 웃음이 나는 미니가


 음흉한 구석이 있는 안나에게



 첫 편지의 알람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오전 8시 22분의 나는 막 강남구청역에서 선정릉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5-3 문 앞에 있었답니다.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나의 몸은 조금 구겨져 있었지만 안나의 편지에 가득 설레어하고 있었어요. 앞사람의 팔꿈치 사이로 편지를 열어보는 짜릿함을, 안나는 경험할 일이 없겠죠.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랍니다.


 이번 편지를 늦게 보낸 것은 다분히 계획적이고 치밀한 수 싸움으로 밀어두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요즘 일의 동기부여가 약해진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책에서 답을 찾고자 했는데요. 흥미로운 제안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좋아하는 일을 싫어하는 일의 뒤로 스케줄을 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효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안나의 편지를 읽자마자 당장 회사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데 이미 하루의 에너지 반은 쓴 것 같아요.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어찌나 안나의 편지의 회신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에 가득하던지요. 부푼 마음은 다음 날 새로 시작하는 신사업의 기획안을 퇴짜맞고 산산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저는 인내하는 인간이기보다 발갛게 상기한 엉덩이를 긁는 원숭이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고진감래의 효과를 노리기보단 조삼모사가 더 타당한 방법일 것 같아요. 아침의 행복한 기억으로 저녁까지 버틸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제처 두고 안나에게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지금 행복하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 힘으로 저녁까지 힘써봐야죠. 화이팅!


 자신 있게 ‘나를 찾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며칠 전과 달리 저는 요즘 정말 맞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어요. 어떤 유튜버가 질문이란 잘해야 하는 것인데, 가끔 자신을 파괴시키는 질문이 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내가 안나에게 나쁜 질문을 권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치솟기 시작했어요. 안나는 나와 다른 사람이니까, 잘 찾아낼 거라고 생각한 것은 제 무심한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이미 이와 비슷한 질문을 통해 저는 나쁜 생각을 거쳐 온 경험이 있는터라, 만약 안나에게도 비슷한 패턴의 일이 발생한다면. 안나는 강한 사람이지만 강한 사람도 ‘사람’인 것이고, 우리는 모두  단단하지만, 여린 부분을 가지고 있잖아요. 나에겐 이게 끝까지 풀어나갈 숙제라고 생각해 문장을 만들고 싶은 거지만 정말 안나에겐 필요한 질문이었을까. 이런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정말로 너무 불안하기 시작할 때,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98%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는 말을 떠올려요. 만일 안나가 우울감에 젖어 무기력에 빠지게 되면, 저는 그전에 안나의 손을 잡고 노들섬을 뛸 작정입니다. 그리고 저에겐 오래되고 친근한 의사 선생님이 계시니까. 영등포에서 마포는 가깝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오늘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다시 본 주제로 넘어와 ‘나를 찾는 과정'에서 나는 매일의 나를 봅니다. 시간단위는 너무 짧고, 연은 너무 길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허상에 가깝게 늘어지는 것 같아요. J의 사람이라면 좀 더 정량적으로 작고 넓게 촘촘한 계획과 시야를 갖고 바라볼 수 있을까 싶지만, 계획과 먼 저는 하루와 월 단위로 점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 근래의 나는 ‘모글리' 같아요. 안나는 <정글북>을 알고 있나요? 디나 사니차르(Dina Sanichar)라는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실제 늑대에게 길러지고 있는 것을 발견해 인간세계로 데려왔다고 해요. 사회화가 되지 못한 채로 서른다섯 살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당시 평균연령을 생각하자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대로 정글 속에 있었다면 감염 등의 이유로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요절했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그는 정말 구출된 것이 맞았을까요? 그는 일생동안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해요. 옷을 입고 식기를 사용해 밥을 먹는 ‘기본적인' 생활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죠. 그는 행복했을까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에도 그것은 다른 의미로도 유효합니다. 살만하다. 살아볼 만하다.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내일도 저는 존재하겠지만, 회사라는 규칙에서는 벗어나고 싶습니다. 입사한 지 겨우 2달째에 이런 말은 겸연쩍네요. 모두가 평범하게 다니는 일상이 저는 왜 이렇게 버거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무실 안의 공기가 무겁습니다. 잔업이 남았는데도 7시 이후로는 도저히 그 공간에서 버티지 못해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맙니다. 프리랜서의 생활이 오래되어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전에도 저는 분명 회사가 지독하게 숨이 막혔습니다. 조직의 규모와 상관없이 다 큰 어른들이 유치한 감정싸움을 벌이는 것도 싫었어요.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책상에 선을 긋고 넘어오지 마,라는 자기 영역 싸움의 심화버전으로 느껴진달까요. 팀의 사람들이, 딸린 식구들의 입이, 생존의 값이 걸려있는 처절한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워요. 왜 그렇게 살아야 하죠? 그 미묘한 감정싸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어린 시절 왕따까지 겪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 한 영역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회사엔 그런 정치나 못된 성정의 사람들이 없지만 저는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내달리고 싶어 져요. 특히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 햇살을 맞고 있을 때면 예비 탈옥수의 마음이 이럴까 싶습니다. 주변 직장인들에게 이야기하니 그게 바로 회사생활이라고 잘 적응 중인 거라는 피드백이 왔습니다. 허망한 것과 동시에 제가 다니는 회사의 외벽이 더 두껍고 단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텁텁한 회사생활의 푸념만 잔뜩 늘어놓게 되었네요. 침대에 누워 나는 정말 왜 이 모양인가. 곱씹어보면 그놈의 ‘신의' 때문입니다. 스스로 답답하지만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내일도 암울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부정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게 다 부모님은 항상 ‘예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때문입니다. 어떤 관계든 간에 처음과 끝이 좋아야 한다고. 행동하기 전에 주술처럼 머리에 떠올라 한숨으로 밖에는 처리할 수 없어져요. 계속 땅을 보면 뭐 하겠습니까. 세상은 둥그니까 우리는 결국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그런 것이 결국 사회생활 아니겠어요? 그리 생각하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요. 저는 오늘도 사회생활을 익히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초연해질 수 있다면 저는 당장에 독일로 날아가 감자를 키우고 양말을 뜨며 책을 읽겠어요. 

 


 헛바람에 실없는 웃음이 나는 미니가








Photo l © 안나와 미니 

2021년 카타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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