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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y 29. 2019

여행에서 지옥을 만났다

내가 되어 살고 싶어요  #1



2017년 3월, 'YOLO'라는 단어가 새겨진 체크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그때 나는 개미처럼 쉼 없이 일해도 베짱이가 한 번 뛰는 것보다 못한 현실에 진한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나도 한 번쯤은 다 던져버리고 훌쩍 떠나보고 싶었다. 퇴직금으로 비행기 표를 사고 숙소를 예약했다. 남은 돈은 모두 YOLO 카드와 연계된 계좌에 털어 넣었다.








YOLO! 내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였다. 그곳에서 13시간을 머문 후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체코 프라하에 내리는 일정이었다.


13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탔다. 태어나 처음 보는 풍광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바르샤바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문화과학궁전 정류장에 내려 셀카를 찍고 거리를 걸었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엔, 내 다리보다 긴 날개를 가진 까마귀들이 바쁘게 날아다녔다. 말로만 듣던 동유럽의 우울감이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공항에 내렸다. 전날과 너무 다른 날씨, 너무 다른 분위기가 프라하에 있었다. 100년 전, 200년 전에 만들어진 거리에서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와 코젤 생맥주를 마시며 유럽의 정취를 구경했다. 프라하 근교에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에선 16세기 중세의 유럽을 만나기도 했다. 다음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향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세운 휘황찬란한 궁전에서 이국의 화려함에 감탄을 내뱉었다.


빈을 뒤고 하고 도착한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낡고 오래된 도시였다. 전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라는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은 금세 고장이 날 것처럼 생겼다. 낙서로 가득한 무서운 길 위에는 순박한 웃음을 가진 헝가리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비행기 올랐다. 내가 탄 비행기는 태국에 섰다. 그곳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코끼리 바지를 입고 고수 냄새가 가득한 음식을 퍼 먹었다. 처음 며칠은 남자 친구와 함께 보냈고, 또 며칠은 싱가포르에 사는 친구를 초대해 보냈다. 먹고 자고 마시고 그게 전부였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제주도에 갔고, 그 후론 남자 친구가 출장을 떠난 대만에서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을 무렵엔 홀로 오사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나는 그해 완벽한 YOLO 라이프를 살았다. 표면적으로는.









나는 그냥 화려한 껍데기를 입고 있었어요




아침에 눈 뜨면 어떤지 알아? 열정, 희망, 감정 아무것도 안 느껴져. 제일 힘든 순간은 지나간 줄 알았는데, 계속 이렇게 사는 건 죽음보다 잔인해!

-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 中



모든 게 완벽해 보이던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유였다. 껍데기만 화려한 삶, 화려한 껍데기 속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갑갑함. 그것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머니까.



나는 부다 왕궁이 눈 앞에 서 있는 부다페스트 도나우강 벤치에 앉아

수많은 여행 채널이 극찬하는 방콕의 짜오프라야 강변에 서서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것 같은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오사카의 길거리에 주저앉아

내가 지옥에 머물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껍데기만을 화려하게 꾸민 채, 썩어버린 알맹이로 살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그 나이 먹도록 여행도 안 가고 뭘 한 거야?



첫 직장을 다닐 때였다. 매거진 기획회의를 하는데 내가 낸 아이디어 가운덴 크게 쓸만한 게 없었다. 편협하고 단편적인 아이템에 불과했다. 몇 번의 회의가 반복되었고, 편집장은 끝내 내게 한 마디를 했다.

그녀 본인도 욱 하는 마음에 뱉은 말인지, 내게 자극을 주려고 의도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깨달음보단 상처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돈, 학벌, 명예, 실력 그리고 경험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가지지 못한 내가 그렇게 부끄러웠다.


나름대로의 변명거리는 있었다. 나는 여행보단 방세를 내는 게 급했다. 방세를 내기 위해 일을 했고, 일을 하려면 방이 있어야 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월세를 내고, 또 열심히 돈을 벌어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했다.



사실 내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꿈꿨던 건 17살 때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선 수학여행지를 선택할 수가 있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보기는 중국, 일본, 그리고 제주도였다. 중국이나 일본에 가고 싶다면 1달에 5만 원씩 1년을 저금하면 되었고 제주도에 가려면 2만 원씩 적금을 하면 되었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을 담임선생님께 내면 되는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학교에서 하는 건데, 해외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집에 들어가는 순간 처참히 무너졌다. '차라리 선택지가 없었다면 좋았을 걸.' 들어주는 이 없는 푸념을 속으로 반복했다. 1년 후 나는 친구들과 제주도에 갔다. 해외여행을 준비했던 친구들도 '함께'가는 게 더 재미있을 거라며 제주도로 여행지를 바꿨다.










여행 강박


내가 27살이었던 201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첫 해외여행을 준비했다. 그 나이를 먹도록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겨우 6박 8일로 떠나는 일정을 2달 동안이나 준비했다. 수많은 블로그를 섭렵하며 출국부터 입국까지 모든 상황 공부했다. 예산이 얼마 없었기에 100원 단위까지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행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생전 처음 해보는 여행이었기에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하는 줄 몰랐던 것이다. 음식에서 풍겨 나오는 낯선 냄새가 힘들어 제대로 먹지 못했다. 무더운 태국을 빡빡한 일정으로 돌아다녔다. 결국 배탈이 났다. 밤새도록 설사를 했다. 다음 날엔 기운이 없어 호텔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여행도 좋았다. 여권에 출입국 도장이 찍혔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그렇게 나의 여행 강박이 시작되었다. 여권에 빈 공간이 줄어들수록 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모두가 떠나고 싶어 하잖아. 나도 정말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블로거들이 알려주지 않았던 여행의 문제


출입국 도장은 늘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여행하는 법을 몰랐다. 그저 떠났고 머물렀으며 다시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블로거들이 하는 방법을 따라했다. 그들이 추천하는 곳에서 밥을 먹었고, 그들이 인증해준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블로그 후기가 많은 숙소만 예약했다. 무엇을 배워보겠다, 특별한 체험을 해 보겠다는 계획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 찾아다녔던 것 같다.


문제는 자유시간, 남는 시간이었다. 블로그에서 본 음식은 10분이면 사라졌고, 유명한 관광지는 1시간이면 그럭저럭 돌아볼 수 있었다. 먹는 데는 한계가 있고 구경하는 것도 금세 지치고 만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무리 딴짓을 해도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블로거들은 이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면 겁이 났다. 낯선 밤거리를 걷는 기분은 마치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작고 어리바리한 동양인 아가씨는, 언제나 쉽게 누군가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숙소로 돌아가 내 작은 공간에서 맥주를 마셨다. 돈도 없었고 용기도 없어서 커튼 속에서 불을 켜 놓고 일기만 썼다.


지옥 같던 일상을 떠나왔는데, 그곳에서 일상보다 못한 상태로 다만 존재할 뿐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에 희망과 열정을 함께 떠나보냈다. 나는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부터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정표 없는 바닥 위에 존재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나는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데 시간을 쏟지 않았다. 그저 되는 대로 했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혹은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했다. 그게 안전했으니까, 나는 겁쟁이니까. 겁쟁이에게 지옥이 다가오는 건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니까.









내가 만약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렸어도,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도

내가 원하는 것들을 계획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지금이라도 나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더라도

그 결과가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라도, 괜찮을까.


일상을 떠난 먼 곳에서의 시간이든,

일상에서 만나는 여행의 순간이든.




그대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中



Photo by Tim Gouw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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