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싱클레어 #1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데미안> 가운데
나는 특별하지 않고 어디에서나 흔히 보이는 ‘보통’의 존재다.
1970년대 80년대를 살며 고도의 경제성장과 IMF라는 위기, 그에 따라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는 혼란의 시기를 살았던 베이비붐 세대의 딸이다.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시기에 학교를 다녔고 친구를 사귀었다. 가슴 아픈 가정사가 제법 있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제법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고 그 덕분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있는 편이다.
대학 동기들이 취직을 위해 방향 없는 스펙을 쌓을 때 나는 일찍이 진로를 정했고 지역 한 신문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그들보다 한 걸음 앞서기도 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학교를 마치고 취직을 했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고 내 생활을 꾸려나갈 순 있었다. 몇 번의 이직을 통해 커리어를 굳혔고, 이직 가운데 공백 기간에는 멀고 가까운 곳으로 길고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탄탄한 커리어를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을 게다.
서른 하나에 5년간 만나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반골 기질이 가득한 나는 상투적인 것이 싫어 대구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 와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싫어 최소한의 인원만 불렀는데, 친구들은 그런 나를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나는 요즘의 시대를 사는, 30대 초반의 보통 여자였다.
일상도 타인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평일에는 쉴 새 없이 찾아오는 ‘퇴사 충동’을 누르며 회사를 다녔고 금요일이면 정시에 퇴근해 지극히 평화로운 주말을 영유했다. 대형 마트에서 프로모션을 하는 와인을 사고 타임세일 중인 안주거리를 사 와 음악을 틀고 조명을 켰다. 주말 아침엔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거나 영화를 봤다. 가끔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고, 남편의 전화기로 시댁에 전화를 걸어 짧게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땐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TV를 보고, 정서적으로 힘들 땐 프랜차이즈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에세이를 읽으며 세상에 나만 힘든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다들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때로 몇 개의 트라우마가 주는 고통에 힘들어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남들에게 보이진 않는다. 어차피 남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않는다. 힘들게 내 이야기를 꺼내봤자 반응은 시원치 않다. 일시적인 동정이나 표면적인 위로 같은 게 싫어서 그저 평범한 30대 여성으로 살아가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범하게 굴기를 요구한다. 나 또한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어렸을 때 친해진 친구들이 있다. 같은 동네에서 살며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반이 되어서 친해졌다. 그런데 그들도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큰 아픔들이 있었다. 그때는 하늘의 운명 같은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아, 신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나만큼 힘들고 아픈 친구들은 내 곁에 보내주셨구나.’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비밀을 만들었고 비밀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진한 동지애를 느꼈다. 언제라도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면 그들에게 털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 세상의 중심이 내 가족에게 있어서 그들이 내게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하면 그렇게 힘들었다. 나는 그 슬픔들을 꽁꽁 싸맨 채로 친구들을 찾았다. 그런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늘 들어주고 공감해주던 친구였다. 나도 그 친구의 이야기를 위로하고 공감하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문제를 털어놓았는데, 싫증이 난 건지 아니면 그녀 또한 힘든 일이 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욱하는 감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야! 니는 왜 그런 걸로 아프면 안 되는데? 왜 니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웃긴다 니, 니가 뭐 그렇게 특별한데?”
차분했지만 화가 난 목소리였다. 말소리에 놀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나를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 친구가 미웠다. 그런데 또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어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함께 있던 다른 친구가 그 친구를 말렸다.
‘그래, 그 친구의 말이 백 번 맞지. 왜 나는 나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나에게 일어난 불행에 그리 힘들어했을까. 그냥 재수가 없는 거지 뭐.’
‘아니,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순 있지만 이렇게 한 번에 찾아올 필욘 없잖아. 불행 3종, 아니 5종, 7종 세트가 한 번에 나를 찾아올 필욘 없잖아. 오더라도 순차적으로 내가 하나씩 극복할 수 있게 와도 되잖아. 이렇게 동시에 오는 건, 이렇게 길게 유지되는 건, 나한테 가혹한 거 맞잖아.’
여러 생각이 머리를 오갔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무리 친구라도 늘 죽는소리만 하는 친구가 좋을 리는 없다는 생각, 그건 확실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 친구와의 관계는 조금 불편했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는 다시 친구로 돌아갔다. 함께 수업을 듣고 떡볶이를 먹고 시험공부를 하고, 연예인을 좋아하고 우리를 놀리는 유치한 남자애들을 때려주며. 다시 보통의 날들로 돌아갔다.
스무 살이 넘고부터 학교라는 틀 밖에서도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들과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익숙해지긴 했는데, 절대 유의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나의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거다.
나는 스물둘, 스물셋이라는 어리고 미숙한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그보다 더 어릴 때 시작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내가 만난 세계는 내 나이와 경험으로는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인턴 생활을 하던 신문사는 전국 규모의 큰 행사를 열었는데 본의 아니게 행사 전담 스태프가 되었다. 그러면서 ‘돈 많고 나이도 많고 경험까지 많은’ 사람들과 자주 부딪쳐야 했다. 40대였던 사수는 내게 기죽지 말라고 했다. 그들보다 내가 더 능력이 있으니, 이렇게 어린 나이에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냐고.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느꼈다. 그들은 나를 무시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몰라도 아는 척, 힘들어도 괜찮은 척, 못하겠지만 할 수 있는 척을 하고 말았다.
그 무렵 나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가족에게도 ‘척’하기 시작했다. 아는 척, 능력 있는 척, 당당한 척 아주 척척박사가 되었다. 내면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런 내면을 채울 시간이 부족했고,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써야만 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 속을 내보이기 싫었다. 힘들다고 말하면 그만두라고 할까 봐, 생각보다 별 볼일 없는 애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쥐고 있는 이 실낱 같은 가능성조차 사라질까 봐. 나는 그 자리가 독인지도 모르고 그 독에 스스로가 말라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해낸 수작이자 ‘완벽한’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안나’다. 안나는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상류층을 대표하는 여성이자 누군가의 부인이다. 능력 있는 남성(카레닌)의 간택을 받은 그녀는 그 시대의 보통 여성들처럼 그 삶에 순종했고 누구보다 잘 살아냈다. 그녀 역시 그런 삶에 만족했다. 누군가의 칭송과 시샘을 받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달콤하니까. 사실 안나는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래야 하는 지조차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욕망이 ‘남성’이라는 존재로 그녀 앞에 찾아온다.
브론스키는 러시아의 장교이자 좋은 가문의 자손이었고 젊은 아가씨들이 마음을 고백하는 매력적인 젊은이였다. 그는 안나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고 안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안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 감정에 대해 혼란을 겪지만 결국, 용감하게 사랑을 선택한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카레닌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게 무엇보다 싫었던 사람, 그래서 아내에게 당부한다. 이혼은 불가하며 바람을 피우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라고.
새장에 묶인 채로 새장 밖을 날아다니던 그녀의 움직임이 알려지지 않을 수 없다. 안나는 모든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러나 카레닌과 불륜의 대상인 브론스키는 누구도 욕하지 않는다. ‘남자가 그 정도쯤이야’, ‘큰 일을 하는 사람이 그 정도 스캔들이 없어서 되겠어?’. 결국 모든 화살은 안나에게로 향한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지 자신이 원하는 삶,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뿐이었다. 안나는 기차에 뛰어든다. 자신을 향한 세상의 손가락질을 이겨낼 수가 없었고, 진정한 꿈이라고 생각했던 브론스키와의 사랑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안나에게 브론스키는 운명이었다. 마침내 마주해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외면하고 살아도 또다시 그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되는 피할 수 없는 그런 것. 제 아무리 화려한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할 지라도 그 가면은 자신이 아니고, 결국은 자신을 찾아야 하기에. 안나는 단 한 번도 가면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그 가면을 벗어던진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가면인 브론스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못하면 결국 여린 자아가 쓰러져버릴 것이니까.
페르소나(Persona)라는 개념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프 융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건강하게 소통하는 내면의 주체인 ‘자아’와 달리, 집단에 속하기 위해 맡는 역할, 가면과 같은 상태를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나는 오랫동안 어디에 속하기 위해 가면을 썼다. 약한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않을 테니까. 상황에 맞는 가면, 나이에 맞는 가면을 쓰고 다녔다. 대체로는 무난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쓴 그 가면을 좋아했고 부러워했다. 가면을 쓴 나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숨이 막혔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가면 속에 있는 내가 너무 작고 여리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반대로 가끔은 대중 앞에서 가면을 벗고 비참한 나를 그대로 소개하고 싶었다. 그 상태로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고 방법을 몰랐다.
그때 브론스키 같은 존재가 나를 찾아왔다. 여린 자아가 기댈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페르소나. 때로는 사랑이었고 때로는 술이나 담배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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