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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Jul 16. 2019

낮의 나와 밤의 나의, 이중생활

안녕, 싱클레어 #2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데미안> 가운데







술이 내게 준 선물들



처음으로 술에 취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고등학생 때였다. 십 수년이 지나서야 고백하지만 그때 나와 옛 친구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이따금씩 술을 마셨다. 그때의 술이란, 우리가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는 증명 혹은 어른들을 속였다는 작은 일탈이었고 반항을 통해 얻는 쾌락이 더 큰 만족이었던 듯하다.


가끔씩 마시던 술은 스무 살이 넘고서부턴 아주 자연스럽게 늘 마시는 것이 되었고 나의 부모는 그런 나를 혼내지 않음으로써 응원했고, 나는 점점 과감해졌다.


같은 학부에 다니던 친구들과 술 멤버가 되었다. 우리는 비슷한 수업을 들었고 같은 과제를 했으며 비슷한 때에 유사한 형식의 시험을 쳤다. 우리들은  남자 동기, 혹은 같은 학과 선후배와 연애를 했고 자연스럽게 연애사를 공유하곤 했다. 3학년이 되어서는 각자 비슷비슷한 스펙을 두고 진로를 고민했다. 그렇게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매일 술을 마시며 더 끈적끈적한 관계를 맺어갔다.


'나의 소문이 내 귀에 들렸다'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 대부분이 안다는 뜻이다. 나와 내 친구들, 그러니까 우리 멤버들은 단과대학 내에서 소문에 시달렸다. 7~8명의 여자애들이 매일 시끄럽게 학교를 다녔고 학교 근처에서 만취했고, 공공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다녔으니 같은 건물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를 모르는 것도 이상할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를 욕했고 손가락질했으며 때로는 없는 소문도 만들어냈다.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우리를 좋아했고 우리와 어울리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런 생활을 꽤 즐겼다. 시선을 즐기며 다녔고, 그 시선과 상관없이 다니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그때를 떠올리고 함께 웃곤 한다. 그리고 또 한 잔의 추억을 쌓아간다. 비록 이제는 그렇게 망나니처럼 놀지 못하지만 여전히 함께 술을 마시고, 십 년 후에 나눌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간다. 술이란 이렇게 좋은 것이다. 그것이 과하지 않거나, 과해도 괜찮을 시기에는.







주정뱅이가 된 주정뱅이의 딸



나는 아빠가 술을 마시는 게 싫었다. 술을 마시면 우리에게 욕하거나 우리를 때리거나 우리를 짓밟았으니까.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이 나 역시 술을 좋아한다. 그 아빠에 그 딸이라는 말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아빠의 피를 물려받았고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며 술에 빠져 살았다.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두 개의 자아를 가진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하나는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지킬 박사이고 또 다른 자아는 이기적이고 야만스러운 하이드다. 지킬 박사는 타인의 시선 가운데 살아가지만 그런 무미건조한 생활 속의 지겨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늘 쾌락에 목말라했다.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새로운 자아 '하이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하이드로 살며 타락하지만 하이드가 선물하는 일차원적인 쾌락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중병에서 회복된 사람처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것,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 새로운 것, 그리고 그 새로운 기분에서 나오는 엄청난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 몸은 더 젊어졌고, 가벼워졌고,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안으로는 난폭한 흥분, 무질서한 관능의 환상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줄기처럼 분출했다. 의무의 구속은 소멸되고, 뭔가 모르겠지만 순수하지 못한 영혼의 자유가 느껴졌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가운데


지킬 박사가 자신이 만든 물약을 통해 자아를 분리시켰다면 내겐 술이 있었다. 나는 그 약을 좋아한다. 술을 마시면 알 수 없는 듯한 기운이 생겨난다. 주변의 시선과 기대감에 부응하느라 숨기고 있던 또 다른 내가 기지개를 켜고 몸을 편다.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내 속에 있던 욕망이 도도하게 말을 내뱉고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튀어나온다. 밤의 나는 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았다.


스물한 살, 스물두 살 무렵 혹은 그보다 몇 살 조금 더 많았을 때는 친구와 술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취할 때엔 옆자리 친구도 취해 있었는데, 우리는 그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조금 더 솔직해졌다. 가정사로 힘든 친구를 위해 자신의 아픔을 기꺼이 내보였고, 실연의 상처로 눈물짓는 친구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비련한 여주인공의 친구 그러니까 조연이 되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할 때는 그 고민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술을 통해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술에 취해 누군가가 망가지면 쾌감이 찾아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하며. 다음 날 아침, 술이 깨면 다시 멀쩡한 상태로 돌아갔지만 그 밤 우리는 다시 모여 벌거벗은 자신을 꺼내곤 했다.


나는 그들과 술을 마시며 내 속에 소화되지 않은 무언가를 밀어냈고, 그들과 담배를 피우며 내 속을 가득 채우는 한숨을 토해냈다. 나의 고통을 눈에 보여주며 내가 얼마나 입체적인 사람인지, 얼마나 고뇌하는 인간지 보여주기 위해 그것을 애용했다. 술과 담배는 참 멋진 도구였다.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나를 파괴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그 까닭은 하이드에게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지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지킬은 갈수록 대담하고 무자비하며 뻔뻔하고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하이드를 말리지 않았고 나중에는 그 자신조차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이드는 점점 강해졌고 지킬은 약해졌다.


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낮과 밤이 다른 생활을 살았다. 낮의 나는 똑똑한 학생이었고 센스 있는 직장인이었고 매력적인 연애 상대자였지만, 밤의 나는 본능에 충실하고 과격했으며 공격적인 전투사 혹은 방랑자였다. 술을 빨리 마셨고 많이 마셨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고 기억을 잃기는 일쑤였다.


나는 모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때에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또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당했는지. 기억하지 못해 아쉬운 때가 있지만 기억하지 못해 다행인 순간이 훨씬 더 많다. 내가 그 짓거리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박적인 이성이 그 수치를 잊지 못할 때니까.


어린 시절에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위로받으려고 술을 마셨지만, 나이가 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부터는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술을 마시곤 했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었으니까. 문제는 밤의 내가 점점 강해졌다는 데 있었다. 나는 술에 취한 상태가 아주 좋았다.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트라우마들, 나의 내면적 약함을 맨 정신으로 버티기는 힘들었다. 제정신으로 살아갈 용기가 없어 술을 마셨다. 그렇게 취하면 나는 대담하고 무자비하고 노골적이며 뻔뻔한 태도로 타인을 비난했다. 그들이 주저앉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그들을 까내려야 내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정말로 그건 아니었다.



다시 아침이 오고 낮의 내가 정신을 차리면 더 큰 고통이 나를 찾아왔다. 술을 많이 마셔 생기는 숙취도 힘들었지만 관계의 위기와 단절에서 오는 고통이 더 힘들었다. 다시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밤이 되면 홀로 술을 마셨고, 휴대폰을 들어 아무 버튼이나 눌러댔다.







두 개의 자아, 두 개의 생활, 두 개의 목소리



나는 원했다. 술에 취해 모든 것을 잊어버리길. 내가 꽉 잡고 있는 이성을 무너뜨리고 거짓된 나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나약한 모습 그대로 세상에서 잊히길. 그런 내게 술이 말했다. 그 길에 자신이 함께 가겠노라고. 나는 술의 말에 현혹되어 오랜 시간 내 몸과 돈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버렸다.


그런데 그 길에서 낯선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힘없고 작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젠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않겠냐고. 언제까지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위태롭게 버틸 거냐고. 그렇게 해봤자 부질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냐고.


그 목소리는 점점 강해졌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목소리가 오는 방향을 쳐다봤다. 어느 멋진 남자의 목소리일까, 성공한 CEO나 예술가의 것일까. 내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안 목소리가 정체를 드러냈다. 나였다. 내 목소리였다.


나는 한 동안 두 개의 목소리에서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더 행복하고 편안한 것일까,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밤의 내가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낮의 나이면서도 새로운 내가, 나를 휘둘렀다. 술을 마시는 나의 몸을 아프게 만들었고 나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버티다 버티다 어쩔 수 없이 그 새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Cover Image. Photo by Sam Moghada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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