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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Feb 26. 2019

나에겐 다섯 명의 어머니가 있다



나에겐 몇 명의 어머니가 있다. 그들 중 몇은 이미 나를 떠났고, 몇은 아직 내 주변에 있어 내가 손을 뻗으면 닿는다.






얼굴을 기억할 수 없는 어머니


첫 번째 어머니는 내가 나 자신의 나이를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릴 때 헤어졌다. 지금은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고,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이름도 이게 맞나 싶다. 혹시 그녀는 나를 기억할까? 어쩌면 그녀 역시 나처럼 나의 존재밖에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은 아마 우리가 헤어지던 날인 것 같다. 나는 울고 있었다. 여러 명이 내 앞에 서 있었는데, 서로를 마주 보고 대치 중이었던 듯하다. 나는 내 어머니의 옆에 서 있었는데, 자꾸만 맞은편에서 내게 손짓을 했다. 그리로 오라고. 나는 가기 싫어 울었지만, 그녀는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졌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내 첫 어머니와의 마지막이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내가 기억하는 까닭은 그녀가 내 어머니라서가 아니다. 그날 내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너무도 강렬해, 여전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를 키워준, 내 아버지의 어머니


두 번째 어머니는 첫 번째 어머니와 헤어지던 날 만났다. 그 전에도 몇 번 본 적은 있었겠지만, 그녀를 나의 어머니로 받아들이게 된 건 그날부터다.

나의 두 번째 어머니는, 내 아버지의 엄마였다. 그녀에게 나는 예쁜 존재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들의 아이들을 지긋지긋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의 아이들을 키워야만 했다.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나를 화와 인내로, 아픔과 눈물로, 그리고 사랑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그녀의 네 번째 딸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손에서 먹었고 잤고 씻고 울고 웃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지만 그만큼 자주 분노했고, 나와 함께 울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울었다. 내 기억 속 그녀는 나를 혼내다가 종종 함께 울었다. 같이 죽자고, 너 때문에 내가 이러고 산다며, 나를 등진 채 벽을 보고 울던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내가 그녀의 짐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녀만큼 나를 사랑할 어머니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 후에야, 이렇게 글을 쓰는 오늘에서야 그 마음을 짐작해볼 뿐이다.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나의 두 번째 어머니, 오늘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두 명의 어머니


나는 오랫동안 나의 할머니를 어머니로 여기고 살았다. 할머니에겐 진짜 딸이 세 명 있었고, 그중 두 명의 딸은 늘 자신의 엄마를 찾아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던 내게 용돈을 줬고 맛있는 음식, 예쁜 옷을 사줬다.

둘째 고모에겐 아들만 두 명 있고, 막내 고모는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을 하지 않았다. 둘째 고모는 내게 늘 ‘내 딸 하자’고 말했었다. 그리고 막내 고모는 보다 자주 우리 집에 와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선물해줬다. 고모들은 내 아빠를 싫어했지만, 자신들의 엄마가 있어서 자주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고모 중 한 명이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모들은 젊고 예쁘고 내 친구들의 엄마와 비슷했다. 나는 왜 아빠한테서 태어났을까, 고모들한테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고모가 엄마가 되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는 내가 서른이 넘고서야 이뤄졌다. 2018년 추석, 둘째 고모집에서 고모들과 소주를 한 잔 마시는데, 둘째 고모가 울며 말했다. 

“네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고모부 눈치를 보느라 맛있는 거 한 번 못 사줘서, 그게 그렇게 미안했어. 이제는 고모가 다 해줄게. 네 아빠는 됐고, 네 엄마도 네가 나이를 많이 묵고 만났고 이제 내가 니 친정이 돼주게.”

옆 자리에 앉아있던 막내 고모가 울었다. 그리고 막내 고모는 내게 카톡으로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딸”이라고. 나의 두 번째 어머니가 선물해준 두 명의 어머니. 그 선물을 받고서 다시 깨닫는다. 나의 할머니는 진정 나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고.






이번엔 ‘엄마’가 생겼다


다섯 번째 어머니가 생기던 날, 할머니는 내게 칭찬을 했다. 모두가 그토록 원하던 ‘엄마’라는 말을, 그토록 하지 않았던 내가 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잘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도 나는 그녀는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경험 속에는 단 한 번도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을 아무에게나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내게 ‘아무’에 불과했다. 하지만 엄마라고 했다. 내 아빠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게 아내였고, 그 아내에겐 엄마라는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어머니는 정말 낯설었다. 생김새와 말투, 밥 먹는 습관, 걸음걸이까지 무엇 하나 익숙한 게 없었다. 내가 그녀와 처음으로 싸우던 날, 내 아빠는 웃었다. 이제 진짜 가족이 되었다고 말했다. 화가 났다. 왜 다들 그렇게 자기 생각으로 나를 판단하고 가르치려 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나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내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말했으니까. 내 존재에 대한 비난을 듣고서도 나는 화를 내지 못했다. 진짜 버려질 것 같아 두려웠다. 대신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직장인이 되고서 어느 날이었다. 술을 한 잔 마셨는데 화가 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여전히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다그치기에 폭발하고 말았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욕을 했다. 가족이고 뭐고 필요 없다고.

술에서 깬 다음 날, 나는 후회했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진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던 복수를 해냈다. 내가 당신들을 버릴 거라는 복수를 이룬 것이다. 내가 벌어 내 삶을 살 수 있는 상태였기에 더 이상 가족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그들을 버리고 보니, 내가 그토록 원하던 복수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그들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혹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그들을 보고 판단한 것뿐이었다. 

언제나 내 감정과 생각들로 그들을 판단했고, 때로는 그들의 판단까지 내가 판단했다. 나는 내 가족을 버리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먹고사는 게, 어른으로서 책임을 지는 게 이렇게 힘든 줄을. 나 하나조차 건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내 생각에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정말 나 혼자 남게 되고서야 말이다.

나는 되돌아 갔다. 나는 그들을 버렸지만 그들은 아직도 나를 버리지 않았었고, 나를 반겨주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섯 번째 어머니이자 나의 첫 번째 엄마인, 엄마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그제야 그녀의 품이 따뜻하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는 네 명의 어머니와 한 명의 엄마가 있다. 그들 중 몇은 이미 나를 떠났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두 명의 어머니와 한 명의 엄마가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 그리고 나를 떠난 어머니들도 한 때는 세상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주었다고 짐작한다. 나는 또다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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