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1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재 Jul 31. 2022

베론 성지에서 토굴속 아픔을 마주하다

- 제천 1박 2일


누가 아픔과 슬픔을 만들어냈는가요. 사라진 이들의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청풍호는 들끓는 뜨거움으로 거기에 햇살을 얹고 있습니다. 청풍호는 수몰지구입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수몰민들 가슴 밑바닥에 박혀 피멍이 만들어낸 호수는 구름과 노닐고 이쪽과 저쪽을 외줄에 매달려 가는 케이블카의 하두자, 김희경 시인과 y샘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호수에 풍덩 물그림자 만듭니다. 우리들은 수몰된 시간과 한 삶의 터전에서 웃음 방울을 건져 올리고 있었습니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북도청에서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해 단지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단지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를 옮겨 놓았는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참깨 향기로 버무려진 es리조트의 밤은 오이 맛이 납니다. 희경시인이 우르르 쏟아 놓은 참깨와 오이는 서로에게 서로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여름밤을 알코올로 적셔 봅니다. 7월의 끝자락이 초롱초롱 별들과 익어가고 있습니다. y샘의 선물인 머그잔에 아침 청평호수를 담았습니다. 빵과 커피가 어우러진 호수는 맛깔나게 차려진 풍경 한 상이었습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날아가 꽂힌 데에 절을 세운 것으로 제자 '정원'이 부처의 법문을 널리 펼치고자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는 설화를 지닌 금수산 자락 천년고찰 정방사에 갔습니다. 자드락길 자드락자드락 걸어보지 못해서일까요.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정방사의 공기는 투명했습니다. 아침산사의 정적이 주는 묘한 맛이었습니다.     




정방사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숨어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 촌 배론 성지에 왔습니다. ‘배론’은 마을 계곡이 ‘배 밑창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황사영의 부인 정명련(난주)과 아들 경한이 이별한 추자도 ‘눈물의 십자가’와 배론 성지 ‘황사영의 백서 토굴’이 겹쳐집니다. 작년 여름 추자도 황경한의 묘지 앞에서 바람처럼 스쳐가는 성지순례자들을 바라보았던 어제의 오늘 같습니다.     


오늘은 토굴 속에 앉아 실물 크기 복사본 백서를 바라보며(백서 원문은 현재 로마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8개월간의 토굴생활 속 황사영과 종교의 힘이 주는 인간 의지와 냉담 중인 나를 마주합니다. 믿음과 의지 사이에서 아직도 방황하는 나를 또 그렇게 접어두고 나온 토굴 밖은 환하네요.     

토굴 앞에는 1855년 프랑스인 선교사 메스트로 신부가 세운 한국 최초 서양식 신학교이자  가톨릭계 신학대학의 시작이기도 한 한옥이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푸르름과 어우러진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옆구리를 끼고 담소하는 두 시인의 모습은 한 편의 시로 남겨두고 성지를 나오면서 나의 아픔이 또 다른 누군가의 아픔으로 전염되지는 않았을까 나를 돌아봅니다. 

     

토굴 안 배서 복사본
한국 최초 신학교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이전 16화 부소담악에 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