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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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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Dec 28. 2020

풍경소리 고요를 덖는

-용인 와우정사

모든 바이러스는 별똥별이다. 


이런 생각이 내게 왜 왔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사찰에 와서. 그을린 마음이 이곳 고요함을 한 숟가락씩 떠서 코로나로 마른 세상의 입술들에 불어 넣어주고 싶은, 하늘을 눈부시게 밝히는 한 순간의 빛이 있다. 그것은 찰나의 영원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코로나도 별똥별 떨어지는 순간처럼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벗은 나무들이 먼 능선을 짊어지고 있는 연화산과 산사 처마 풍경소리 들으면서 어느 시절의 시린 그리움이 이마를 짚고 간 잠깐의 그런 순간. 


붉은 잎들 먹장구름 떠안고 떠난 산사의 풍경소리만 고요를 덖는 와우정사는 1970년에 남북 평화 통일과 세계의 평화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삼국시대 호국불교 정신을 오늘에 재현하고자 한 대한불교 열반종 사찰로 네팔,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 불교 양식과 문화를 볼 수 있는 사찰이다.   

  

일주문 없이 들어선 사찰은 호수를 배경삼아 황금으로 빛나는 부처의 머리가 보였다. 세계불교박물관 옆 살짝 비껴 오르다 보면 만나는 왼쪽 가족의 기원을 담은 금박표식이 하늘거리는 그 뒤로 자박자박 쌓아 오린 석탑들이 늘어서 있었다.      


못난이 인형을 닮은 조각상 스님은 입 닫고, 눈 감고, 귀 막고 법문에만 집중하라는 뜻이겠지만 내가 바라본 스님의 조각상은 단지 어찌하라는 거야로 보이고 들린다.     

 


12지신상의 다양한 스카프로 중무장한 코와 입에서 차가운 바람이 이마를 짚고 지나간다. 대웅전 옆구리 끼고 통일신라시대 황룡사종과 같은 크기로 통일을 기원하며 만든 통일의 종은 황금빛 눈 시리게 했다. 

      

오르막 산책길 한발 한발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를 눈으로 읽으며 오백 나한상 바라보다 옷소매 안쪽에 숨겨두었던 손끝 어루만졌다.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상태로 불교수행자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향하던 인도 라즈기르 베하라 산에 있는 칠엽굴에서 경전 결집을 향한 오백 명의 아라한들 불멸을 기약하며 이천 육백년 전의 아라한 낭랑한 음성을 여기서 다시 듣는 것 같은 착각에 울컥 뜻 모를 마음 한 움큼 삼킨다. 




네팔 국민들의 성금으로 5년이나 걸려 만들어졌다는 네팔 식 불상과 종, 몇 년 전 뜻 모르고 따라다녔던 인도 성지순례,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에서 만났던 불상과 타르초,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책 『타르초』를 구름과 햇볕 가르며 바람이 독서를 한다. 어떤 날은 읽히고, 어떤 날은 캄캄한 타르초 경전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그때도 지금도 좀처럼 읽을 수 없는 난해한 그저 색색의 깃발로만 펄럭일 뿐이다.     

 

댓잎파리 바스락대는 석조건물 안 부처님 고행상이 있었다. 인도 우루벨라 고행림의 석가모니는 수자타의 유미죽을 네란자라 강물에 풀어 득도의 바깥으로 가기 전까지, 그곳에서 보았던 석가모니 상과는 다르다. 폐허의 서까래 같은 갈비뼈에 쭈글쭈글 뱃가죽은 말라 비뚤어진 조롱박 같았는데 흑갈색 얼굴은 허허벌판 버려진 해골의 모습이 아닌 이곳 고행상은 백옥처럼 하얗다.


와우정사 와불
인도 아잔타 석굴 와불
인도 쿠시나가르 열반당 와불
방콕 왓 야이 차이 몽콘 석고 와불

마른 낙엽 바스락거리는 돌길을 내려오면 진안 마이산 돌탑을 닮은 탑이 듬성듬성 배경을 이루고 열반에 든 부처가 봉안되어 있는 열반전이 나온다. 붉은 가사 입은 와불 나무열반상의 길이가 12m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니 대단하다.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아잔타 석굴의 가사 입지 않은 와불과 쿠시나가르 열반당 황금가사 입은 적색 사암을 깎아 만든 와불. 방콕 왓야이차이몽콘 석고 와불은 이처럼 돌이나 황금 · 동으로 만들어졌다. 나무로 빛은 이곳 와불의 색다름 뒤로 돌 틈 사이에 낀 단풍잎들을 처마 끝 풍경소리에 묶어 이 계절로 떠넘기며 사찰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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