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2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재 Apr 04. 2023

봄꽃 쏟아지는 봄을 걷다

-낭도

p대장을 비롯하여 열네 명의 얼굴들은 어둠 이끌고 밤을 갑니다. 도로는 바퀴의 소리를 줍고, 나는 자동차에 설렘 달고, 누구도 모르는 저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행 장소도 모르고 떠나는, 우리의 인생 또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대들은 지금 어느 계절로부터 왔나요. 서로 다른 계절을 거치면서 마주한 인연들이 쌓여 또 다른 계절을 만나 쓰는 밤의 연서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질까요. 우리는.    

  

붉게 지는 달이 어제의 마음을 몰고 화포 항까지 왔습니다. 바다는 바다의 연대기를 쓰기 위해 바쁘게 어둠을 걷어내고 있습니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휘감기는 바다는 너무 넓어서 적막합니다.

     



화포와 우명을 잇는 ‘어부해안 길’ 공사 중 데크 길 걷지 못하고 배고픈 고양이처럼 화포선착장을 서성거리다 포근한 바닷가 화포마을의 유래를 읽어봅니다. 화포는 우리말 이름인 곶개를 개명하였답니다. 해안 지형인 곶과 바닷물이 드나드는 개를 꽃의 옛 이름이 곶이라 꽃 화자로 바꾸고 개는 바닷가 포를 써서 화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안내판 설명입니다.   

  

일출, 사과처럼 붉게 익어 바다에 떨어진 윤슬 담아 끓인 라면 맛은 p대장의 수고로움에 더해 진하게 타오릅니다. 친구인 k는 멀리 방파재에 앉아 바다 식탁이 펼쳐놓은 라면 국물 갯바람에 휘휘 저어 한 젓가락씩 풍경 그리고 있는 그 자체가 풍경화 한 폭입니다.



쓴다는 것은 나를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나를 구속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늘 서성거리게 하는, 나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떠나온 오늘이 다시 그 자리가 될지라도 고양이 섬 묘도 건너고, 낙안읍성 지나,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튜율립과 관람객 인파에 널뛰기 하다 여수 야경을 유람선 폭죽에 쏘아 올리며 늦은 밤 낭도에 스며들었습니다.  

    


낭만낭도. 섬의 형태가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낭도라 부르게 되었다는 참 고운 이름을 가진 섬입니다. 낙지 꿈틀거리는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서 고량주는 목구멍을 타고 내립니다. 붉은 와인 검붉은 밤을 달리고 양주잔 건네는 서로의 웃음소리는 어둠 엮어 밤하늘 별빛으로 반짝입니다. 어둠이 쓰는 밤의 연서는 어쩜 알코올 도수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가는 시간일지 모릅니다.      


숙소 앞 연분홍 모과 꽃과 함께 펼쳐진 바다 멀리 고흥 나로 우주 발사대가 아침을 열고 있습니다. 와인의 깊이도 모르면서 홀짝홀짝 마신 묵직한 몸을 이끌고 꽃들로 봄이 쏟아지는 봄을 걷습니다.     

 

(사진제공 정명순님)


담벼락을 지키고 있는 푸릇한 마늘잎과 유채꽃밭 싸목싸목 걷는 섬 산타바오 오거리에서 오른쪽 비탈길 오릅니다. 멀리 사빈해변으로 불리는 장사금 해수욕장 반짝이는 모래 지루함을 달래주는 파도가 드나들며 나른한 시간을 풀고 있습니다.     

  

걷기 좋은 둘레 길 사부작 걷다 만나는 달착지근한 찔레꽃순 맛은 어린 날의 추억을 불러옵니다. 장사익의 찔레꽃도 이연실의 찔레꽃도 가슴 아린 노랫말이지만 흥얼거리며 걷는 앞발자국 따라가는 나는 뒤발자국입니다. 망개순 휘적이다 망개떡이 그리워지고, 설익은 보리수 텁텁한 맛에 길을 멈추게 하며 남포등대 눈 맞추고 있습니다.   

   

남포등대(사진제공-박상우님)
공룡발자국 화석 (사진제공-노경희님)



파랑에 노출되어 암석해안이 발달해 있다는 신선대 주상절리 암석에 앉아 ‘100년 전통의 낭도 젖샘 막걸리’ 한잔 파도 안주 삼아 바다와 건배해 보는 낭만 대신 믹스커피로 바다를 데워주는 시간입니다.

       

낭도 해수욕장 입자 고운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사박사박 걸어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 부르는 것 같아 모래 푹푹 빠지는 신발을 건지며 걷습니다. 과자 부스러기처럼 씨앗처럼 모래 날리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101세 모지스 할머니는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에서 “세상아, 꼬리를 흔들어대라. 나는 명랑하고 행복하게 살련다.”라고 말합니다. 차창 밖으로 스치고 가는 담벼락 ‘낭도 갱번 미술길’을 바라보며 모지스 할머니 그림들과 언어들도 함께 지나갑니다. 낭도에서의 내 인생도 봄날인 거지요.   아니 우리 모두의 봄날입니다.

       

*사박사박: 눈이나 모래 따위를 가볍게 자꾸 밟을 때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      


   

이전 19화 풍경소리 고요를 덖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