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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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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Sep 10. 2020

산문과 시 사이에 바다가 있다

-2. 양양, 오색약수

  오이소박이를 담다가 헝클어진 마음 바다에 풀어 놓으면 오이소박이는 어디로 사라지고 붉은 빛에 익어가는 바다만 내 안에 들어와 아삭 거릴까. 세상의 바다에 풀어놓은 그 오이소박이를 찾아 동해, 양양으로 갔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워하는 빨강과 하양이 어우러진 물치항 등대를 마주보며 그리워할 수 있는 그 무엇 자체로 빛이 되는 그 어디쯤에서 나는 물질을 하고 있을까. 

     

양양 가는 길.

외설악 오색 천 너럭바위 암반 세 군데 구멍에서 나오는 약수터 물맛이 특이하단다. 위쪽 약수는 철분 함량이 많고, 아래쪽 두 개의 약수는 탄산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물맛이 궁금하였지만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 사진만 찍고 주전 골로 스며들었다. 

잘 다듬어진 산길 오르다 보면 군데군데 설치된 출렁다리 건널 때마다 코로나-19로 만남은 흔들리고 닫힌 경제가 울렁거려서일까. 맞잡지 못하는 손끝이 아롱진다. 출렁이는 감정 다리 쇠줄에 매달아 놓고 껑충 뛰었다. 충남 보령군 성주사지에서 보았던 무염국사(신라 때 고승)의 비명에 쓰인 오색석사(성국사), 보물 제497호인 오색리 삼층석탑과 마주한 본채 너머 기암절벽 초록 옷 살포시 뽐내는 풍광이 떠올랐다. 본채 마루에 잠시 앉아 식히는 땀방울에 튀는 일가족 웃음소리가 구겨진 내 웃음까지 펴줬다.


골 깊은 계곡 양쪽으로 솟아 기암괴석과 출렁이는 설렘 안고 고개 들면 만경대, 고개 숙이면 선녀탕 그렇게 한 낮을 힐끔거리다 보면 금강문. 소원을 말하고 통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뒤로한 채 용소폭포에 도착했다.

성국사
삼층석탑


  해찰해야 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에서 살던 천년 묵은 암수 이무기 두 마리 중 수놈만 승천하고 준비가 덜 된 암놈은 용이 되지 못하여 비관하다 죽어 똬리를 튼 모습으로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천년을 기다리고도 부족한 준비가 얼마였기에 승천하지 못하였을까. 잠깐 생각을 깊이 있게 다녀왔나 하는 궁금증 하나 물고 나에게 늘 멀기만 한 운문의 물길 보고 싶어도 보여주지 않아 그냥 계곡물 속에 젖어들었다.      

보여주지 않는 문장들. 내 안에서 울툭불툭했다. 아무 말이나 잡히는 대로 풀어 놓으려고 물속에 들었지만 투명한 하늘만 아른거릴 뿐이었다. 잠시 목젖까지 왔던 단어마저 발가락 사이로 빠져버린 오색에서 뻥 뚫린 바람타고 낙산 해수욕장까지 왔다.   

   

     

금강문
선녀탕
용소폭포


모래사장 위로 군데군데 진을 치고 있는 텐트의 무리들 사이로 삐져나가는 표정들 줍다가 거품 걷어가는 물결의 끝으로 방파제를 끼고 돌아오는 어선 한 척이 있었다. 선장과 함께 펄럭이는 태극기는 바다를 다녀왔지만 어선은 바다가 그립고, 바다는 바다가 그리워서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두 개의 마음이 아른거리는 나 또한 어느 것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운문과 산문에서 헤매고 있었다. 어선이 바다가 그리워 바다로 가듯 입안 어디선가 가로막고 결핍되어 불안하게 절룩거리는 조각난 단어들. 시가 시로만 보이지 않는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날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 하나 바다에 꽂는다.   

  

낙산사에서 상복마을까지 길게 뻗은 노을 그림자 길어지는 뒤로 어둠이 뛰어오고 있었다. 바쁘게 걷는 걸음 사이로 옥수숫대 바스락거리며 아이들 둘째 고모인 이순 누님의 굽은 허리가 호미 끝으로 밤을 끌고 간다.  

   

머릿속 잡념 뿌리 뽑아내고 등 구부려 호미 끝으로 옥수수 어린 순에 흙 북돋아 주듯 나의 언어도 이 밤을 이끌었으면 하는 날이다. 산문과 시 사이 저만치 등대 불빛만 밤새 반짝였다.     



낙산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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