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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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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ug 25. 2020

슬픔이 밀물위로 돋는 해

-속초

 “슬픈 자는 타인을 슬프게 한다.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면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행복은 타인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 그들에게도 혼자 견뎌내고 감당해야하는 외로움과 고독이 있다.”는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메모장 한 귀퉁에서 오려낸다.


 내 슬픔과 외로움을 잘 견디고 감당하면서 살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한 적은 얼마이며 그들에게 어떤 무게로 짓눌렸는지 질문과 해답 없는 공허에 등짝을 쑤시듯 역마살이 시동을 건다. 


눈동자 없는 길.

불안을 안고 걷다보면 가끔씩 마주하는 마스크 속에 숨겨진 미소가 보듬어주고, 수평선에서 몰고 온 습기와 바람이 불안에 온기를 불어 넣는 동해바다는 심심한 나에게 불덩이 안겨준다.      


해맞이 청동 조각공원이 있는 바다를 끌어와 소나무를 키우는 해안선 길. 갯바위 위에 슬픈 전설을 품고 있는 인어 청동조각상이 있다. 갈매기 울음 몇 잎. 방파제 난간에 앉아 수평, 그 엇나간 십자가를 더듬는 작은 어선을 바라보다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30여 년 전 별이 된 남편과 함께 온 여행에서 바라봤던 인어 청동조각상은 그대로인데, 오늘 홀로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바다가 행복한지 묻는 것 같아서 대답할 수 없는 슬픔이 밀물처럼 눈물로 철썩거린다.   



    속초해수욕장 긴 백사장 맨발로 걷는다. 모래알갱이는 모래알갱이대로 꿈틀거리는 시간들이다. 한 스푼씩 파도에 떠넘기면 거품 물며 달려드는 물결은 발자국을 지우고, 해무 위로 아른거리는 섬 ‘조도’와 함께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 ‘섬’이 바다 위로 달려왔다. “삶, 그것이 뭔지 잘 모른다.”는 주인공 아슈케나시의 말이 귓속에서 윙윙거린다. “아직 한 번도 삶을 살아본 적 없다.”는 단어가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서걱거린다. 작가처럼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떠나온 여행은 아니지만 왜 그 소설이 내안에 몰려들었을까.     

  

  

청호동 벽화골목 ‘아바이 길’ 뜨거운 햇빛 들지 않는 그늘진 골목 옆구리에 고요를 느끼며 앉아 있었다. 고즈넉함이 싫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강아지에게 골목을 내주고 낚시꾼 웅성거리는 곳으로 향한다. 월척을 꿈꾸는 그 뒤로 남겨지는 것들 보따리 의자에 숨겨두고서.  

       


이곳저곳 해찰부리면서 도착한 ‘영금정 해돋이 정자’ 위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면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불리게 된 영금정. 동명해교를 건너 정자에서 바라보는 정자전망대를 받히고 있는 바위가 무거웠다.      


여행에는 떠나는 순간과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있다. 계획된 시간에 도착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과 그냥 발길 닿은 데로 계획된 시간 없이 도착하는 것이다. 여행은 그리 애쓰지 않아도 된다. 계획된 시간에 맞추려고 허둥대다보면 정작 볼 수 있는 것들 놓치고 만다. 여유를 갖고 타박타박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시 가면 된다. 그래서 나는 ‘해찰하다’란 단어를 좋아한다. 이로 인해 유년시절엔 집중 못한다고 야단맞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해찰하고 싶다. 해찰하는 곳에 나의 시가 있으므로.   

   

머릿속 헝클어진 생각들이

아바이 마을에 엉키는 오후

종적 감춘 한 사람 뒤 따라 도착한 골목은 

안과 밖 구별할 수 없는데     

낮은 비행을 하는 새의 몸짓으로 

하루를 왕복하고 밤을 리필해서 써도 

담장의 척도 풀리지 않는

실향의 애달음

굽어진 길만 바게트처럼 푸석거리다

능소화 넝쿨로 또 7월이 오네     

바람의 혀로 붉은 몸 부풀린 꽃들은

돌담과 흙벽을 팽팽하게 당겨보지만  

골목은 좁혀지지 않는 길의 끝이자 시작     

새의 몸짓으로

비틀고 파닥거려도 제자리인 깃털 같은

저 능소화, 언제 목 꺾일지 모를 

지상에서 배운 바람결 따라 아등바등해도

마지막은 통꽃, 뚝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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