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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un 26. 2021

숨어있는 유월을 찾아서

-부여 1박 2일


‘유월은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고 이상국 시인의 시「유월」에서처럼 숨어 지내는 유월 찾아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자 백제 패망의 아픔을 지닌 사비시대의 역사와 문화 유적 그 줄기를 따라간다.  


유월의 파란 하늘 전기 줄에 맑은 현들이 소리를 내고 그 소리 끝에서 만나는 국립부여박물관 중앙 로비. 마침 상영 시간에 입장한 나는 천정에서 쏟아지는 빛을 차단하기 위한 스크린이 닫히면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빔 프로젝터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석조와 천정에서 화려하게 색의 잔치를 펼치는 백제금동대향로 미디어 쇼에서는 순간 이동을 하는 듯 백제로의 시간여행을 했다,    


제1전시실 ‘부여의 선사와 고대문화관’은 백제의 연대표를 시작으로 토기들이 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겹아가리토기」에서 아가리는 어릴 적 많이 들었던 말이다. 아이들이 쫑알거리면 ‘아가리 닫아’였는데 토기의 입구인 아가리는 백제시대부터 전해지는 단어일까 후세 역사가들이 붙인 이름일까.   

  

제 2전시실 「사비백제와 백제금동대향로」 호랑이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호자’가 어서오라한다. 아이들과 역사탐방 하였던 때다. 꽃병인 듯 물병인 듯 술병 아니면 곡물 담는 토기쯤으로 상상을 펼치는 아이들에게 남자용 변기 요강이라 하면 신기한 듯 다시 본다. 


 

  

 

백제 문화의 정수라고 손꼽을 수 있는 걸작이라 한다.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눈 맞춤은 심장박동 소리조차 벽에 부딪혀 낮은 파동을 일으켰다. 견고하고 섬세하게 관람객들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백제인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제 3전시실 「백제의 불교문화」 온화하고 세련된 백제 미술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불상과 석불, 연꽃무늬 수막새와 벽돌 등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제 4전시실 「기증 유물실」을 나오니 야외 전시실은 당유인원기공비와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를 비롯하여 비석과 비서 부재들이 군데군데 소나무와 푸른 잔디를 친구삼아 노닐고 있었다.

  



정림사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석탑인 정림사지 오층 석탑을 낮은 담장 너머로 바라본다. 소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깨금발 딛고 카메라 줌 당기고 짧은 목 길게 뽑으며 봐도 잔디 푸름만 가득하다.      


백제 왕실의 상징적인 불교 건축물이었다고 한 사찰은 소실되고 석탑만이 덩그러니 서 있는,  정림사지박물관 또한 보수 중이라 함께 관람하기 위해 다음을 기약하며 문밖에서 살짝 훔쳐보고 궁남지로 간다.  

    

 



백제 왕실의 상징적인 불교 건축물이었다고 한 사찰은 소실되고 석탑만이 덩그러니 서 있는, 정림사지박물관 또한 보수 중이라 문밖에서 살짝 훔쳐보고 궁남지로 갔다.    

  

궁의 남쪽에 연못이 있어 붙여진 이름 궁남지. 연꽃은 아직 이르고 양귀비꽃이 대신 웃는다. 서동요의 주인공 선화공주와 무왕의 만남처럼 버들가지 한 가닥 제 그림자 연못에 닿을 듯 닿지 않아 시름 중이고, 포룡정 정자 건너는 붉은 다리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인 구도심과 테마파크로 만들어진 신도시가 갈리는 백마강이 경계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면, 역사 지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는 백제문화단지는 국내 최초로 삼국시대 백제왕궁을 재현한 곳으로 왕궁과 사찰 등 백제시대를 근거에 사실적으로 재현한 역사 문화 단지다.     


사비궁의 정전인 천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년행사를 비롯한 외국 사신 접견 등을 하던 곳이라 하니 나는 오늘 무왕의 즉위식에 초대되었다는 행복감에 사로잡혀 빈 궁궐을 어슬렁거렸다. 동궁의 정전인 문사전과 외전인 연영전 회랑을 돌아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 왕실의 사찰이며, 사찰명칭을 알 수 없어 능산리에서 발굴된 ‘능사리사지’를 줄여 능사라 부른다는 오층 목탑은 사비궁궐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듯했다.      


능사를 외돌아 서궁의 외전인 인덕전과 정전인 무덕전를 나와 백제 한성시기 도읍 모습을 재현한 위례성 오른다. 한성시대의 군사가 되어 토성 반 바퀴 순찰하고 내려오다 마주친 담장을 넘어온 붉은 앵두 주렁주렁. 에드몬드 수사 초대로 장충동 베네딕트 수도원 정원에서 따먹었던 그 새콤달콤한 입맛이 유혹을 했지만 눈으로 만족하며 지나쳤다.  

   



    

 


의자왕은 충신 성충과 흥수 말에 귀 기울였다면 백제 역사는 달라졌을까. 수도 방어를 위해 축조된 복합식 성곽, 부소산성 산책길을 걸었다. 부소산성 정비 복원을 위한 학술발굴조사가 한창이었다.      


산책길 바람이 듬성듬성 길을 터주고, 관광객의 소란이 몰려왔다가는, 작은 몸 웅크리고 바라보는 다람쥐 눈망울에 삐걱거리는 마음 주고,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전설 혹은 소설 속 낙화암이 나타났다

.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낙화암에서 백마강에 투신한 삼천 궁녀를 추모하기 위해 험준한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 백화정 앞. 수학여행 때 친구와 바위 틈 비집고 폼 잡던 사진 속 여중생인 나와 만나 그때 그 자리 그 포즈로 혼자 셀카로 그 시절 나를 잠시 불러 세운다.   

  

모르고 지나간다는 유월을 찾아서 떠나온 부소산성에서 말랑말랑하였던 소녀 시절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웃고 있다. 유월 너는 결코 지나치는 계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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