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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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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pr 17. 2021

내 안의동백은 언제 피나

-고창 선운사

4월이다. 고창 공용버스 터미널에서 선운사행 직행버스를 승객은 나 혼자였다. 적막한 버스안 마스크 안에서 입김이 쌓이고 차창밖 한적한 농촌 풍경은 엔진 소리를따라 뒤로 밀리며 사라진다. 그 풍경과 함께 사라지고 묻히는 것들, 내 안의 꺼기들.


선운사로 들어서는 샛길을 따라 희뿌연 공기 속으로 벗꽃들이 차창으로 다가오며 저만치 동백꽃도 아슴푸레하게 스쳐간다. 언뜻 착란이 인다.


황사 걷어낼 수는 없지만 고요함 속 싱그러움이 눈에 찬다. 데크 길 따라 내안의 생각이란 생각을 모두 비우며 천천히 걷다보니 녹차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단풍 나무들 사이로 여리게 피어나는 연두. 무리 지어 푸름을 자랑하는 꽃무릇 잎. 여기저기 쌓인 돌탑들에게 이름을 붙여본다. 새싹, 봄, 계절, 향기, 설렘, 아무도 듣지 않는 이름들을 불러본다.  

 그리고 내 평생의 아픔으로 남은 당신!   

 


 도솔 암자 가는 길.

 그림자 하나 없는, 고요가 쌓인 길을 걷는다. 선운산 숲길에 내 발소리를 남기며 걷는데 청량하게 들리는 계곡물이 와락 다가와 내 안의 것들을 지우라고 소곤-소곤거린다. 물위에 비친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언뜻 버리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떠간다. 감정이란 잔상 같은 것이어서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해서 버리기가 어렵다. 자연은 이런 감정을 부려놓기에 완성맞춤이 아닐까.

 

숲길에 몸담은 두려움이 혼자 버려진 슬픔 같아서 불어오는 바람에게 칙칙한 생각을 버리며 친구의 목소리를 청한다.     


 42세에 폐암으로 사망한 미국의 작가 캐럴라인 냅의 『명량한 은둔자』에서 작가는 「전화를 붙잡고 자의식을 놓아버린 채 재잘거리는 능력은 여자들의 우정만이 갖고 있는 멋진 특징이다」고 한다. 나 또한 나연이 친구와 한참을 핸드폰 너머로 횡설수설 스다를 떤 후 씩씩하게 걷는다. 혼자이기를 즐기는 혼자서도 잘 놀고 잘 다니지만 함께 어울리지 걸 못하는 나 또한 고독한 은둔자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우울한 생각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 벌레 같아서 그만 버린다.     

진흥굴
장사송
도솔암입구

그렇게 헉헉, 숨을 뱉으며 걷는 오르막길을 따라 내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밟으며 걷는다.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선운사로 와서 승려가 되어 좌변 굴에서 수도 정진하였기에 붙여진 사자암 앞에 있는 진흥굴은 600살의 천연기념물 장사송이 지키고 있다. 한 무리의 템플스테이들 소리를 남기고 사라진 뒤로 다시 찾아온 고요. 시간은 고요를 만들어내는가. ‘계곡물에 입술을 적신 노래는 내 몸 어디에 고여 있을까’ 머뭇-머뭇거리는 돌탑의 입술에 귀 기울이다가 다시 걷는다.


땅에 핀 동백꽃 줍고 있는 보살님의 등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붉은 꽃 뚝뚝. 자루에도 담아내고, 기왓장 사이사이 꽂아도 주고, 두 손 합장 즐거운 여행 하라며 동백꽃 같은 웃음 한 줌, 내 안에 심어주는 보살님 옆으로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은 신체 높이가 약 15.7m, 무릎 너비는 약 8.5m이로 웅장하게 앉아있다.  


동백꽃은 세 번 핀다는, 나무에서 땅에 져서 그대 가슴에서의 ‘오동도 동백꽃처럼’ 노랫말에 더하기 기왓장 사이에 네 번. 그리고 다섯 번째 내 안의 동백꽃은 언제 꽃 피울까.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도솔천 내원궁 오르는 돌계단 틈틈이 모든 것은 찰나일 뿐 미움도 욕심도 다 내려놓고 오르다 보면 내 안에도 동백꽃 붉게 물들 거라는 듯 가파르고 비좁은 돌계단 오른다. 꽃으로 피워낼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도솔암 전경
마애여래좌상
도솔천 내원궁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하는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미륵 바우를 뒤로 선운사 대웅전 뒤 수령 깊은 동백 숲이 한 눈에 가득하다.      


내 앞에 아른아른 어둑한 초록과 장엄한 붉은색들. 고개를 젖혀 오래오래 바라보다 눈의 감각을 잃고, 동백 저 붉은색들은 내 발아래에 뭉개어지며 희미해져 간다.   

   

사찰의 단청과 조화를 이루며 매화꽃 목련꽃 동백꽃의 향연에 목이 메어 어두워지다 희고 환해지는 선운사의 봄날.      


선다원 담장에 붙은 담쟁이넝쿨의 사선 줄기가 강약의 필체로 그려놓은 듯 담체 한 폭. 수선화 노란 웃음에 발문을 새겨 렌즈에 담다 그만 카메라의 숨이 멎었다. 수없이 드나들었던 서비스센터에 다녀왔지만 또 말썽이다. 아마도 수명을 다한 것 같다. 내 삶도 이렇듯 예고 없이 한 순간 고요히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함께 하염없이 꽃비 날린다.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 가슴이 아리다. 평생 아버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인 나. 일찍 홀로된 딸 지켜보며 마음 삭혔을 아버지. 가슴이 뭉클해지며 한 편의 시를 새겨 본다.      


꽃무릇 화상을 입고 돌아오는 주말

아버지 모시고 선운사 갔었지

불판에 몸 구부러지는 장어 소금 뿌리며  

내가 쳐놓은 그물 문장들

기다리는 초원식당        

  

주진천 거슬러온 꼬리의 내력

읽을 수 없어

동강동강 잘린 장어 몸 깊이만

깻잎에 생강 올려 야무지게 넘기던 12시  


풍천이 파종해야 할 치어와

내가 유예시킨 언어들이

돌아오는 길은

얼마의 바다와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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