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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10. 2024

시인이 되려면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시 쓰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들의 상태를 감지한 선생님이 시 한 편 소개해주며 바꿔 써보라고 권유했다.      


 ‘10화 예술의 시작은 모방’에서 한번 시도해 본 적이 있는 ‘바꿔 쓰기’의 심화학습 단계였다. 한 문장 바꿨던 것을 시 한 편으로 확장한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일단 예시로 제공된 시를 함께 살펴보자.          





은목서     


         김진수     


      

바닷가 언덕바지 은목서 한 그루

입동 무렵 쓸쓸한 하늬바람을 타고

눈꽃같이 달콤하고 매혹적인 향기를

무작정, 無酌定

풀어놓고 있습니다     


문득, 그 사람

아! 그리운 그 향기처럼       


   



 이 시는 1연은 묘사, 2연은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세 문장으로 시 쓰기' 할 때 이미 배운 바 있다. 시에는 묘사, 그리고 화자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진술이 들어가면 좋다는 것을…      


 묘사와 진술을 잘 구사한 이 시는 모방의 교본이 될 첫 번째 요건을 충족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본적인 사항(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도 잘 배치되어 있는데, 짧은 시로선 담기 어려운 정보를 모두 갖추고 있다.      


 시인은 1연의 1행에서 장소와 대상을 나타냈고, 2행에서는 시간과 배경을 보여준다. 3행부터 5행까지는 대상의 형태와 상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강조를 위해 무작정을 두 번 나열했고, 두 번째는 한자로 바꾸어 놓는 신선한 시도도 했다.    

  

 게다가 2연에서는 은목서 꽃향기 같은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몇 개 안 되는 단어로 표현했다. 시의 함축성을 잘 살려서 독자에게 긴 여운을 전해주고 있다.      


 이렇듯 김진수 님의 ‘은목서’는 연습하기에 꽤 괜찮은 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은목서를 몇 번 읽고 구조에 맞춰 시 한 편을 지어봤다. 간만에, 그것도 아주 쉽게~~        


  

감나무(초고)     


고향집 앞마당 감나무 한 그루

입하 무렵 동풍이 포근하게 다가올 때

겨드랑이마다 노란 종 하나씩 매달고

벌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가지에 그네 매달고 손녀 기다리던

아! 그리운 할머니처럼    


     

 바꿔 쓰기를 마치고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서 잘 부러져. 그네 매달기에는 부적절하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헐~~~     


동생에게 보여줬더니 “감나무에는 그네 안 매달지” 했다.      


별 걸 다 아는 두 사람.    

 

아닌가?


나만 몰랐던가?     


그래서 다시 바꿨다. 제목과 1연을 통째로 바꿀 수는 없어서(가 아니고, 앞마당에 심은 나무 중에 그네를 매달만한 큰 나무를 생각하기 어려워) 굵은 가지를 고르는 할머니의 사랑을 추가하고 손녀는 무게가 얼마 안 되는 세 살짜리 꼬마로 상정해 2연을 수정했다.      



감나무(수정 1)     


고향집 앞마당 감나무 한 그루

입하 무렵 동풍이 포근하게 다가올 때

겨드랑이마다 노란 종 하나씩 매달고

벌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굵은 가지 골라 그네 매달고

세 살 손녀 기다리던      


아! 그리운 할머니처럼     



 이렇게 완성된 자작시를 다시 한번 남편에게 보여줬다.     

 “은목서와 감나무 중에 어느 시가 더 나아?”

 “당연히 감나무지”     


 25년 넘게 만났더니 여우가 되어버린 남편. 큭큭큭     


 여기서 감나무 수정을 마치려다 혹시나 하고 선생님께 제출했다.      


 선생님의 첫마디.     

 “입하 무렵과 동풍은 안 맞아요. 동풍은 봄을 상징합니다. 여름은 높새바람이지요.

 “입하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던데요……”     


 저도 찾아보고 썼어요, 하며 반항해 봤지만 내 의견은 사뿐히 즈려 밟혔다. 높새바람은 발음이 안 예쁘다고 툴툴거렸더니 그럼 ‘한 줄기 바람’으로 바꾸라고 하셔서 수긍하고 동풍을 포기했다. 고쳐놓고 보니 1행에 ‘한 그루’가 있는데 2행에 ‘한 줄기’를 넣기가 불편했다. 강조를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반복된 표현은 싫어해서 ‘포근한 바람이’로 바꿨다.    

 

 선생님은 또 1연 4행의 ‘반기고 있습니다’ 보단 그네의 이미지와 맞게 ‘반기느라 흔들리고 있습니다’가 낫다고 했다. 이것은 바로 수긍하고 고쳤다. 그리고 세 살이 나을까, 네 살이 나을까, 고민했던 손녀의 나이는 삭제하고 대신 할머니에 집중!      


 선생님은 ‘하염없이 손녀 기다리던, 낡은 그넷줄을 닮은’을 추가하자고 했다. 삭제당할 때마다 강렬히 저항했던 나는 이번엔 전적으로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역시, 선생님!)했다.      


 그렇게 완성된 감나무 최종본을 읽어보자.      



감나무                


               바람   


  

고향집 앞마당 감나무 한 그루

입하 무렵 포근한 바람이 다가올 때

겨드랑이마다 노란 종 하나씩 매달고

벌들을 반기느라 흔들리고 있습니다     


굵은 가지 골라 그네 매달고

하염없이 손녀 기다리던     


낡은 그넷줄 닮은

아! 그리운 할머니     




 여러 번 수정을 거쳐야 했지만 ‘은목서’는 아주 훌륭한 교본이었다. 어쨌거나 시 한 편 뚝딱 완성했다.   

  

 여러분도 시가 잘 안 풀릴 때 ‘살구나무, 복사꽃, 국화 한 송이’ 같은 대상으로 바꿔서 한 수 지어 보시면 도움이 될 듯하다.     


 시인이 되려면 갈 길이 멀지만 좋은 글 벗들이 생긴 요즘. 글쓰기 인생에서 가장 신나는 순간을 보내고 있다.    

  

 끝으로 천양희 님의 ‘시인이 되려면’을 소개하겠다. 시인의 마음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시인이 되려면 


                          천양희  


        

시인이 되려면

새벽하늘의 견명성見明星 같이

밤에도 자지 않는 새같이

잘 때도 눈 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 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 꽃을 피우려고 25년을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같이

1kg의 꿀을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려고 25번 허물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도 70만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시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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