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만 연락이 오는 사람.

튼튼한 경계를 설정하는 방법.

by 꿈꾸는왕해

20대 초반에 친구랑 친구의 동생이랑 한참 친하게 잘 지냈다.

대학진학과 취업으로 비슷한 곳에 자리 잡게 되어 가까운 곳에 살게 되었다.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운동도 같이하며 몇 년을 친하게 지냈다.

그 사람을 생각할때 가장 순수했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기였다.

어릴적 친구들과는 이런 기억이 가장 빛나는 추억이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갈수록 삶의 형태가 달라지니 약간은 소원해졌다.

결혼, 육아 시기를 거치면서 물리적인 거리가 생기고 각자의 삶에 치중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새로운 육아동지가 생기고, 또 경제적인 상황이나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다.


나는 원래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먼저 연락을 잘 안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리고 싶지도 않다.

딱히 외로움을 느끼는 성격도 아니고, 지금 삶이 만족스러워서 누군가를 갈급하게 만나고 싶지도 않다.

친한 친구나 가족들은 시간을 내서 만나기도 하지만, 그 범위 밖의 사람들한테는 시간을 잘 쓰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에게서 가끔 근황을 묻는 연락이 오면 반갑게 맞아주긴 했지만, 다시 친해져

서로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마침 이번 주 그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라는 문자와 함께, 나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몇 달 전에도 보험을 시작했다고 해서 응원도 할 겸 간단한 부탁을 들어줬다.

그런데 또 연락이 와서 새로운 부탁을 하다니 달갑지 않았다.


나는 마흔이 되고 나서 나의 에너지를 뺏는 관계를 과감히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 응답에 어떤 답을 할지 고민이 되었다.

간단한 부탁이긴 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연락이 온다면 나에게 좋은 시그널은 아니다.

나는 주변에 표면적으로만 친한 관계를 두지 않는다.

오랜만에 연락해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좋은 추억으로 그 사람을 기억하길 바란다.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가끔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어.

그런데 네가 나에게 연락하는 방식이 늘 어떤 부탁이나 ‘도와줄 일’이 있을 때뿐이라 조금 아쉬웠어.

나는 네 일이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만 연락이 온다면 솔직히 반갑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아.

내가 이렇게 말을 꺼낸 건, 너를 불편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하는 거야."라고 말이다.


말하지 않고 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지만, 한번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왜냐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 나는 이런 게 불편해, 너랑 조율이 가능할까'라는 의미를 담아 내 입장을 말했다.

상대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내가 불편한 것과, 거리 두는 이유에 대해서 모를 것이다.

앞으로 연락을 안 할 거면 굳이 말해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누구든 관계에서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일이 있을때 조율을 하기보다 종료를 선택한다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더욱 적어질 것 이다.

그리고 이런 말에 상대가 더 서운하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그때 관계를 정리하면 된다.

다행히도 이 친구는 자기가 세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친구와 , 그 언니의 근황도 들을 수 있었다.


안 좋은 일들이 많아서 쉬쉬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힘든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매일 삶이 버거워서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잘 지내길 바라면서 연락을 마무리하곤, 이 동생과 앞으로도 연락이 계속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좋은 기억이 아직 남아있으니까, 좀 더 지켜볼 생각이다.

나도 가끔 궁금할 때, 궁금하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떻게 사는지 응원의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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