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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박스 Oct 22. 2023

괜히 왔다

나에게 크로스핏이란 체력을 단련해 준다는 미명 아래 감춰진 빌런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일 년 넘게 양날의 칼 같은 크로스핏을 하는 동안 걸을 수 없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내 다리를 내 다리라 부를 수 없고, 내 허리를 내 허리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릴레이 바통 이어받듯 끊임없이 따라붙었다. 지난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5월에 열린 운동회 때 반 대표 선수로 릴레이에 출전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아이는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바통을 받으려고 뒤돌아 섰다가 그것을 손에 쥐자마자 이전 주자가 뛰어온 길로 직진한 것이다. 아휴, 속이 타들어 갔다. 당시에는 이어 달리기 학원이 있다면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이크를 든 진행자가 1학년이라면 본인이 뛰면서도 왜 뛰는지 모를 수 있다고 위로 아닌 위로의 멘트를 쩌렁쩌렁 날렸다. 혹시 나도 거꾸로 가고 있는 건가? 실력만 늘어도 힘든 판에 부상만 느는 나 역시 역행자일지 모르겠다. 크로스핏도, 크로스핏에 걸려든 나 자신도 미심쩍기만 하다.



1. 걸을 수 없는 사연


첫 달엔 처음이니까 주 4일을 출석했다. 코치님은 내 신체 역량에 맞춰 운동 수위를 조절해 줬다. 코치님도 무릎 삐걱대는 젊지 않은 초보 회원에게 큰 기대는 없었을 거다. 코치님 기준에서 과하지 않은,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뭘 해도 근육통이 동반되는 수준에서 크로스핏에 적응해 갔다. 어찌 됐던 매일 운동을 하려면 할 수 있지만 하루만 쉬겠다고 해도 납득이 가는 경계선 상의 몸 상태로 꾸역꾸역 나갔다.


크로스핏에 입문한 지 3~4주가 지나면서 차차 내 몸이 크로스핏을 알(& 앓)아갔다. 주 6일 열려 있는 박스에 온 힘을 다해 나가도 이틀이었다. 3일을 가는 주도 있었지만 가뭄에 콩 나는 일이었다. 일상을 압박하는 근육통을 가볍게 넘기기 힘들었다. 통증의 강도로 봐서는 내가 크로스핏인지, 크로스핏이 나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크로스핏’이라는 더미 아래 파묻힌 수준이었다.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려고 주방에 가면 싱크대 테두리를 잡고 엉거주춤 겨우 걸었다. 도마를 꺼내기 위해 싱크대를 잡고 한 걸음, 칼 꺼내려고 다시 싱크대를 잡고 한 걸음, 파 꺼내러 냉장고 앞에 가기 위해 식탁 모서리를 잡고 두 걸음.... 거실로 공간 이동을 하려면 벽을 요양 보호사 삼아 몸과 마음을 기대 걸어야 했다. 예고 없이 힘 빠진 무릎이 훅, 접혀서 필사적으로 손에 닿는 물체를 쥐어짜듯 잡고 일어서는 건 덤이었다. 외출할 때는 더했다.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운전석에 몸을 접어 넣을 땐 할망구 신음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크로스핏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근육통을 배우는 신세였다. 와드는 매일 바뀌는데, 내 몸이 습득한 와드는 늘 근육통이었다. 내 가슴속에 남아있던 SNS 속 바벨 든 근육질 여성의 모습이 차차 지워져 갔다. ’그 모습을 내 몸에 장착하고 싶었는데....‘ 근육을 만들기도 전에, 길가에서 밟히는 낙엽처럼 온몸이 바스러질 지경이었다. 나는 주 2일 운동할 뿐인데 내 몸은 주 7일 크로스핏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월요일: 주말에 쉬었지만 여전히 온몸이 쑤시다. 다시 운동하러 갈 엄두가 안 난다. 크로스핏이 사람 잡네. 쉬자.

화요일: 주말에도 쉬고 어제도 쉬었으니 정말 가야 한다. 운동하러 가자.

수요일: 근육통으로 인해 걸을 수 없을 지경이다.

목요일: 겨우 걷기는 걷는데, 몸이 걷는지 생각으로만 걷는지 알 수 없다.

금요일: 일주일이 다 갔다. 양심상 오늘은 나가자.

토요일: 육아 때문에 못 가지만 근육통 때문에 더더욱 못 간다.

일요일: 아직도 온몸이 아픈데, 내일 가야 하나?


같은 패턴이 2~3개월 지속됐다. 원판은 끼지도 않고 바만 올렸다, 내렸다, 반복했을 뿐인데 봉을 우습게 봐선 안 되는 거였다. 가장 가벼운 바도 15LB(6.8KG)이다. 온몸이 파르르 파르르 줏대 없이 후들거렸다.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났을 때 처음 온 회원과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그제야 몸이 좀 풀렸다고 느낀 내가 “근육통이 심할 텐데 꾸준히 잘 나오시네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시작된 얘기가 나의 초반 2~3달 동안의 몸 상태에 관한 스토리로 이어졌다. 돌아온 반응은 "그래도 저는 며칠 못 걸을 정도로 근육통이 심하진 않아요"였다. 다음 날이면 괜찮아져서 바로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나로서는 24시간 만에 회복되는 근육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령대의 차이 때문이라는 결론 외에 다른 결론은 없어 보였다. 새로 온 회원들은 통증이란 걸 겪지 않는 듯 참 멀쩡해 보였다. 크로스핏 입문자라면 누구나 원판을 끼지 않은 바(Bar)로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두세 달이 지나면 내 것과 같은 무게를 들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것보다 무거운 무게를 들었다. 20대와 40대는 달랐다. 나는 정지해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영화 속 한 장면의 현실판이었다.



2. 좌 남편, 우 아들이 부축해 준 사연


크로스핏 초보자라면 회원이 적게 오는 비인기 시간대에 운동하는 상황을 피하는 게 좋다. 내 경우엔 그랬다.  

우리 박스는 오전에 두 타임 수업이 열린다. 오전 11시와 12시다. 나를 비롯해 오전에 주로 오는 회원들은 대개 11시 수업에 참석한다. 하루는 개인 사정이 생겨 12시 수업에 간 날이었다. 출석 회원이 나밖에 없었다. 아스팔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한여름 정오였으니 당연한 장면이었을 거다. 올림픽에 출전할 만큼 열정이 뻗쳤는지 정상 범위를 벗어난 선택을 한 게 분명했다. 아뿔싸. 혼자서 와드를 한다는 것은 피니쉬 라인 없이 전력 질주를 하는 것과 같다. 1:1 전담 코치가 내 옆에 딱 붙어 서서 하나, 둘, 셋, 숫자를 셀 때 밀려오는 중압감과 현기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오늘 괜히 왔다!’


이틀 후쯤 가족여행차 지방에 내려갔다. 한밤중 숙소에서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려고 침대 이불속에 숨었다. 갑자기 눈알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상하다 싶어서 이불을 걷어내고 천장을 쳐다봤는데 내 머리 위에 달린 등이 시계 방향으로 끊임없이 돌고 돌았다. 살짝 어지러운 거겠지 하고 놀이를 끝낸 뒤 취침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려는데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오전 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서울로 향했는데, 가는 내내 어지럼증으로 인해 구토할 것 같은 속을 부여잡아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왼손으로 남편 팔을 붙잡고, 오른손은 아이 손에 의지해서 도보 10분 거리 병원에 갔다. 검사 결과는 이석증이었다. 한여름 대낮의 1:1 특훈이 달팽이관을 사정없이 흔든 것이리라 짐작했다.



3. 유아용 킥보드를 지팡이 삼은 사연


‘셔틀런(Shuttle Run)’을 하고 있었다. 셔틀런은 단거리를 빠르게 오가는 민첩성 훈련이다. 이와 같은 순발력 위주의 운동을 할 때마다 나는 아주 살짝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수위 조절을 하면서 바닥을 터치하고 몸을 일으켜서 다음 지점으로 뛰어가려는 찰나에 윽, 허리를 살짝 삐끗했다. 초겨울에 들어서는 환절기였다. 날씨가 싸늘해지고 신체도 뻣뻣해지던 때에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나 보다. 생각지 못한 허리 부상이었지만, 날씨에는 어울리는 부상이었다. 평소에 허리가 아픈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와드를 이어갔다. 셔틀런 다음에 싯업(Sit-Up, 윗몸일으키기)을 할 차례였는데 허리 통증으로 인해 바닥에 앉을 수가 없었다. 심상치 않았다. 어설프게 와드를 마치고 나왔다.


우리 집은 853m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상체가 앞으로 기울더니 급기야 허리가 45도 이상 굽어버렸다. 너무 아파서 도저히 펼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현존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구나.’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들이 왜 다리를 다이아몬드형으로 벌리고 걷는지 그날 처음 알게 됐다. 요추 염좌가 발생하니 다리가 모아지지 않았다. 제대로 할망구 신세였다. 택시를 부르더라도 통증이 심해서 다리를 들어 좌석 안에 넣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어떻게든 걷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평소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가다 서다 반복하며 30~40분 넘게 걸어갔다.


열흘 남짓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았지만 한의사의 말대로 생각보다 회복이 더뎠다. 얼마나 더 지나야 허리가 원상 복귀되려나. 치료도 치료지만 한의원에 오가는 게 더 문제였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주차장 없는 한의원에 가기 위해 자차나 택시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박스에서 집에 돌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걸어가야 했다. 맨몸으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어서 아이의 킥보드를 지팡이 삼아 밀며 갔다. 반대편에서 유모차를 지지대 삼고 걸어오는 허리 구부정한 동네 할머니와 마주쳤다. 내 모습과 할머니의 모습은 같은 실루엣,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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