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선수가 들던 바벨을 내가 들 줄이야. 내 생애 역도를 할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토크 프로그램에 나온 장 선수가 억지로 역도를 시작하던 때를 회상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우락부락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마음 앓이 하며 눈물 흘렸던 소녀 시절의 이야기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어린 미란이는 도망치고 싶어 했던 역도 인생인데, 나는 자발적으로 문미란 라이프에 발을 들였다. 물론 거창하게 ‘인생’이란 말을 붙이긴 매우 민망하다. 역도 ‘생활’쯤으로 하면 적당하려나. 어느새 나는 문미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생활의 역도인이 되어 갔다. 마음속으로는 ‘피지컬 100’에 들길 선망하지만 실상은 크린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이 연속 재생되는 중이다.
나는 바벨을 어깨너비만큼 벌려서 잡는 게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넓게 잡는 것보다 쉬우니까. “바벨을 넓게 잡으세요” 하는 코치님 말에 오늘은 좀 힘들겠는데, 하며 ‘스내치(Snatch)’ 할 준비를 갖추곤 했다. 박스에서 역도 훈련을 할 때 '스내치(Snatch)'와 '클린 앤드 저크(Clean & Jerk)'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 말로 각각 '인상'과 '용상'이었다. 올림픽 역도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단어일 거다. 예전에 역도 경기를 봤던 기억을 되짚어보면, 인상과 용상 기록을 합산해서 최종 메달 색깔을 가리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래서 도대체 ‘스내치(인상)’와 ‘클린 앤드 저크(용상)’가 뭐지? '스내치'는 한 동작으로 구성된 것으로, 바벨을 최대한 넓게 잡고 지면에서부터 한 번에 들고 일어서는 것이다. '클린 앤드
저크(용상)'는 스내치보다 양팔의 폭을 좁게 잡으며, '클린'과 '저크' 두 동작으로 진행된다. 먼저 바벨을 바닥에서 가슴 위로 끌어올려서 어깨에 걸치는 클린 동작을 한 뒤, 양팔을 뻗어 머리 위로 드는 저크 동작으로 마무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내치를 더 어려워할 거다. 클린 앤드 저크처럼 적당히 어깨너비 정도로 바벨을 잡고 들면 양팔과 바 사이에 직각이 이뤄져 안정적인 지지 구조가 형성되는데 반해 양팔의 간격이 벌어지면 이러한 구조가 깨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클린 앤드 저크는 동작 자체가 두 번에 나눠 들 수 있게 돼 있지만, 스내치는 단번에 끌어올릴 폭발적인 파워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스내치는 몇 번을 연습해도 힘에 부쳤다. 특히 ‘스쾃 스내치(Squat Snatch)’의 경우와 스내치를 ‘오버헤드 스쾃(Overhead Squat)’과 연이어 할 경우, 한 번은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가 다음에는 뒤로 자빠질 뻔 하기 일쑤였다. 스쾃 스내치는 스쾃을 하면서 스내치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벨을 바닥에서 머리 위까지 끌어올리는 스내치를 하는 동시에 스쾃 자세로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이다. 오버헤드 스쾃은 바벨을 머리 위에 든 채로 앉았다 일어서며 스쾃을 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동작이 진행되는 동안 균형을 유지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스내치는 버겁다, 버겁다, 하면서도 꾸준히 무게를 늘려 15LB(15파운드, 약 6.8KG) 원판을 낄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바만 들고 하던 것에서 2.5LB 초록색 원판, 5LB 파란색 원판, 10LB 검은색 원판 순서로 무게를 늘려갔고, 이제 드디어 두 번째 검은색 원판인 15LB를 끼게 됐다. 바와 양쪽 원판 무게를 합산하면 약 20.4KG이 나가는 바벨을 단번에 들어 올리는 인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10LB 원판을 들기 시작할 때 비로소 아, 드디어 역도를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10LB부터 원판의 지름이 가장 큰 45CM가 되기 때문이다. 이보다 가벼운 초록색, 파란색 원판은 지름이 작아서 그것을 낀 바벨이 왠지 연습용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더욱 15LB 원판을 들 수 있게 된 순간에는 10LB 입문 단계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느낌이었다.
어느 날 코치님이 나와 내 옆에 선 회원에게 바 잡는 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껏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으로 먼저 바를 감고 엄지 손가락을 가장 바깥에 감싸는 방식으로 쥐어 왔다. 그 순서가 뒤 바뀌어야 했다. 먼저 엄지 손가락을 바에 대고 그 위에 나머지 네 손가락을 덮어서 쥐어야 손이 안 풀린다고 했다. 1년 반동안 몸에 밴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 않았다. 바에는 울퉁불퉁하게 표면 처리 된 부분이 있다. 미끄럼 방지용으로 생각되는데, 그 부위가 마치 굵은 사포의 표면 같다. 엄지 손가락이 네 개의 손가락에 감싸여 압력이 가해진 데다 꺼끌꺼끌한 부분에 닿아서 바벨을 들어 올릴 때마다 계속 쓸리고 까졌다. 한두 번 들고나니 엄지 손가락이 아려서 원판 무게를 다시 10LB로 낮춰야 했다. 원점이구나, 하고 살짝 허무해졌다. 1년 반이 지나도 시작이라니, 기운이 빠질 법했다.
같은 바벨 운동이지만 ‘데드 리프트(Dead Lift)’를 할 때는 그나마 마음이 가벼웠다. 바닥 위에 움직임 없이 죽어 있는(dead) 봉 녀석을 잡고 기울였던 상체를 일으키기만 하면 바벨이 저절로 딸려 올라오기(lift) 때문이다. 바벨을 상체 위로 끌어올릴 필요가 없어서 어려운 기술 없이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다. 데드 리프트를 할 때만큼은 나도 여러 장의 원판을 장착해 볼 수 있어서 왠지 우쭐해졌다. 단 한번 들어 올릴 수 있는 최대 무게를 ‘1RM(1 Repetition Maximum)’이라고 하는데, 특히 데드 리프트의 1RM 기록을 재는 방식으로 근력 훈련을 할 때면 제법 역도인답게 원판을 두껍게 끼고도 부담 없이 딱 한 번만 들면 됐다. 그 덕분에 ‘무게는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 운동할 수 있었다. 데드 리프트의 가장 최근 1RM 기록이 105LB였다. 오늘 오전에는 데드 리프트보다 높은 무게를 들기 어려운 ‘프런트 스쾃(Front Squat)’을 했는데, 최고 기록이 100LB였다. 이것으로 비추어 보건대, 다시 데드 리프트를 하면 105LB보다 향상된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데드 리프트를 말할 땐 뭐니 뭐니 해도 100LB를 넘는 순간 걸음마 단계를 벗어난 크로스피터다,라는 뿌듯함이 뿜어져 나왔다는 얘기를 빠뜨릴 수 없다. 숫자가 주는 기쁨이 있다.
‘쓰러스터(Thruster)’는 또 다른 세계다. 운동 능력 향상에 필요한 갖가지 요소를 집약해 놓은 동작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헬스장에서 딱 하나의 운동만 해야 한다면 쓰러스터를 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쓰러스터와 더불어 등 부위를 단련할 수 있는 풀업(Pull-Up, 철봉 운동)이 한 쌍으로 구성된 와드 ‘프란(Fran)'을 하면 전신을 아우르는 완벽한 운동을 할 수 있다. 쓰러스터는 바벨을 어깨에 두고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머리 위로 쭉 들어 올리는 동작이다. 앉을 때 '프런트 스쾃(Front Squat)'을, 일어날 때 ‘프레스(Press)’를 하는 것이다. 영어사전을 보니 항공기의 반동 추진 엔진을 'Thruster'라고 하던데, 이름처럼 추진력을 가해 바벨이 위로 힘껏 솟구치게 해야 한다. 쓰러스터를 할 때마다 속으로 ‘무를, 뽑자!’라고 소리 냈다. 앉으면서 ‘무를’, 일어나면서 ‘뽑자’, 하고 구령처럼 외치면서 바벨이 나를 뽑아 올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가 되어 뽑힘 당하는 거다. 본래대로 내가 바벨을 들어 올려야 한다는 걸 인지하면 갑자기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바벨이 나를 잡고 흙 바깥세상으로 힘껏 당겨주는 편이 좋다. 어떻게든 바벨에 깔려서 수모당하지 않으려고 나도 참 애쓴다.
내가 바벨을 들 일이 생길 줄 몰랐던 것처럼 ‘으라차차’와 같은 의성어를 낼 상황이 생기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않았다. ‘으라차차’라는 발음은 글로나 적는 소리지 실제로 입에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스릴 넘치는 놀이 기구를 탈 때도, 번지 점프를 할 때도, 심지어 자연 분만으로 아이를 낳을 때도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던 나다. 그런 사람이 와드의 중반부가 넘어가면 저절로 '흐억', '으아', '으-아-차'와 같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웃통 벗은 돌덩이 같은 아저씨들이 땀 냄새 풍기며 낼 것 같은 소리를 내가 내고 있다니.... 내가 들 수 있는 무게의 최댓값을 끌어올리려면 없던 소리도 나올 수밖에 없나 보다. 내가 정말 크로스핏을 하고 있긴 한가 보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생활의 역도인다운 면모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었다. 우리 집에는 2주에 한 번씩 생수가 배달 온다. 2.0L짜리 페트병 6개가 하나로 묶인 팩을 낑낑대며 옮기고 있다 보면 어디선가 남편이 나타나서 자세를 지적했다. 그렇게 하면 허리가 나가고 어쩌고.... 그러면서 남편이 데드 리프트 자세로 팩을 들어 올리는 시범을 보였다. 굉장히 진지한 그를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 그는 트리플 진지남이자 트리플 생활의 운동인이다. 박스 안 라이프 스타일이 박스 밖까지 연결되다니 뫼비우스의 박스 라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