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자리를 잡으려고 한 게 잘못인 걸 금세 깨닫고, 내가 잠자리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는 듯이 차분하게 내 갈 길을 걸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가 무지막지하게 뛰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빨라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감히 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뒤통수 너머로 들리는 뜀박질 소리가 치타처럼 빨랐고 코뿔소처럼 강했다. 그리고 역시나 누군가 쫓아와서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겁이 나서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져서 금세 웃었다. 아빠였다.
"야. 지훈아! 아빠가 불렀는데 왜 도망가."
"아니, 아빠가 내 이름을 안 부르고 다짜고짜 이놈아 라고 하니까 그렇지!"
아빠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 손을 잡고 뒤돌아서 걸었다.
"아빠, 근데 어디가?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빠가 오늘 우리 아들 맛있는 것 사주러 일찍 퇴근했지."
"진짜? 나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도 돼?"
"당연하지. 아빠가 우리 아들 못 사주는 거 없지."
나는 신이 나서 아빠 손을 빨리 끌어서 제과점을 향했다. 그리고 아주 거대한 맘모스 빵을 골랐다. 아빠는 찹쌀떡 몇 개를 집었는데, 내가 부모님도 나랑 똑같은 것 먹으라며 소보로빵 몇 개를 집어주었다. 아빠는 역시 싱글벙글 웃으며 그런 나를 바라보고, 소보로빵을 바구니에 집어넣으셨다. 아빠는 뭐든 다 받아주셨다.
평소 아침 6:55분이면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아빠가 출근하러 신발을 신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꼬마여서 아빠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아기 강아지처럼 재빨랐다. 순식간에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아빠에게 뛰어가 두 손을 건넸다. 아빠는 내가 재밌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으며 500원을 주셨다. 그것은 아빠와 나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빠 출근길 배웅해주면 500원씩 주는 것. 그 500원은 당시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을 하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나는 500원을 받으면 누가 못 가져가게 손주먹 안에 꼭 넣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잤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이유는 혹여나 돈이 침대 밖으로 세면 어머니가 홀랑 가져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돈은 배를 가를 수 없는 돼지저금통에 넣어졌다. 돼지저금통을 가르면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나기 때문에 매일 돼지와 눈싸움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돼지가 돈을 머금은 모습을 보면 풍족했다.
이 장면이 내가 일곱살 이전에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장면이다. 군것질을 할 수 있고, 떼를 쓰면 늘 받아주는 아빠가 있었고 내 돈을 돼지저금통에 채워주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일곱살 이후로 이어지지 못했다. 풍족했던 꼬마는 잠깐의 행복을 간직한 채 가난에 의해 갑작스러운 이별을 맛보았다. 나를 보면 반가워 치타처럼 빠르게 뛰어와 대형맘모스 빵을 안겨주던, 달콤한 아버지도 가뭄에 콩 나듯이 볼 수밖에 없었다. 행복한 기억의 조각은 있는데, 그 조각은 어린 꼬마 안에 실체로 존재했는데,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어린 꼬마에게 고독을 주었다. 그리고 그 행복한 조각은 가난에 가려져 오랫동안 살릴 수 없다는 걸 안 후로 꼬마는 정말 오래 말을 아꼈다. 부모님에게 무얼 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도 갑작스러운 가난에 꼬마에게 무얼 해준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아꼈고, 행복한 기억의 조각은 서로의 마음에 담았다. 때로는 그 기억이 너무 큰 상처로 다가와 쓰렸다. 삶이라는 게 한 순간에 내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갈릴 수 있다는 것. 나에게 한 없이 줄 것 같았던 슈퍼맨 같았던 우리 부모님도 힘이 없을 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마음에 품는 시기가 생각보다 일찍 올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꼬마였던 나는 일찍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