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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Jul 02. 2020

해가 떴는데, 뜨지 않았다.

 해가 떠서 신났던 순간이 있고, 해가 뜨지 말았으면 하는 순간이 있었다. 한 집에 두 식구가 엉켜 사니, 말 한마디 서운하게 들리면 그 말이 꼬투리가 되어 심하게 싸웠다. 무엇보다 시골까지 가서 진행한 사업이 잘 되지 않고, 벌이가 되지 않으니 감정의 선이 서로 날카로웠다. 어른들의 감정선이 날카로워지면 꼬마들은 숨을 죽였다.

대부분 사소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내가 기분 좋게 얘기하는데, 꼭 그렇게 얘기해야 되냐'부터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할 마당에 설거지할 때 왜 뜨거운 물을 트냐'까지 어른들의 언성이 높아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어른들의 언성이 높아지면 언성이 닿지 않는 거리에 나가야 하는데, 당시 시골은 나가도 할 게 없었고 나갈 용기도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음소거를 죽였지만, 집 안에서 조심스레 동선을 왔다 갔다 하다가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혼나기 쉬웠다. 집 안에 CCTV는 없었지만 꼬마들은 자연스레 비교의 대상이 되었고, 어떤 날은 말이나 행동이 꼬투리로 잡혀 질책의 대상이 되었다. 'J는 잠 줄이고 공부하는데, 왜 너는 안 하냐'부터 '어디서 어른이 얘기하는데 말대꾸를 하냐'며 혼날 때도 많았다. 이유가 있어서 한 행동인데도, 이유를 얘기하면 혼날 것 같아 혼날 때는 그냥 가만히 있기도 했다. 일곱 살까지 나는 아무도 못 말리는 천방지축 꼬마였는데, 여덟 살 때 시골에 내려간 후로는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시골에 가끔 내려오는 아빠와 친척들이 나를 보면, "지훈이가 기가 많이 죽었다."며 용돈을 주시거나 갖고 싶은 것을 사주시고는 했다. 나는 당시 용돈을 받고, 갖고 싶은 것을 주는 어른들이 내게 칭찬을 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기가 죽었다'는 의미가 안쓰러운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원래의 내 당찬 모습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좋지 않은 날도 있으면, 좋은 날도 있었다. 어쩌다 돈이 벌린 날은 시내로 나가 돈가스를 먹기도 하고 짜장면을 먹기도 했다. 많이 가난할 때 가끔 먹었던 돈가스여서 그런지 아직도 그 겨울, 열 살 때 먹은 돈가스가 제일 맛있다는 것을 가슴이 기억하고 있다.  또 어른들이 목도리와 겨울 모자를 사준다고 즐겁게 나간 적도 있는데 그때 보았던 어른들의 해맑은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난다. 나는 H와 목도리와 모자가 연결된 것을 샀는데, 노란색 모자와 목도리가 연결된 것을 사서 한참을 착용한 기억이 난다. 어른들의 기분이 좋은 날에는 핫케익부터 피자, 계란빵까지 가정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가 맛있게 나왔다. 초등학교 때 나를 포함해 형과 H까지 모두 공부를 곧잘 하고 교내부터 교외 대회도 자주 나갈 때여서 어른들의 대화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어른들이 웃으면 우리도 해맑게 웃고 집안과 밖을 좀 더 편하게 뛰어다닐 수 있었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게 용인이 되었다.


 문제는 좋은 날과 좋지 않은 날이 하루 걸러 하루로 이어졌다. 딱 중간의 평온한 상태가 이어지면 참 좋았을 텐데 오늘 좋으면 내일 너무 안 좋았다. 사업의 경영난이 지속되고 빛은 쌓이고 가난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박힐 때쯤, 집안의 공기가 무거워서 더는 가벼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나의 표정을 살피러 거울을 보는 일보다 어른들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 잦았다. 어른들도 당장 불안하게 닥친 현실 앞에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어른들의 어두운 표정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다. 한 번은 학기가 끝나 많은 상을 받고도 성적상을 못 받아 학교 벤치에 앉아 집을 오랫동안 못 간 적도 있다. 성적우수상을 못 받으면 죄를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가면 되려 괜찮다며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내가 무거운 마음을 가지니 엄마가 많이 아파하기도 했다.


 저녁 11시가 넘으면 모두가 잠이 드는 시간이었다. 모든 방과 거실의 불을 다 끄기 때문에 그때가 제일 마음만은 고요했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매일 기도했다. 내가 아는 신이란 신을 마음속으로 다 깨워가며 "내일이면 이런 생활을 벗어나게 해 주세요. 저 착하게 살게요."라고 땀이 날 때지 기도하다 잠들었다. 당연히 오늘은 어제와 같았다. 나는 그때 신은 참 정이 없다고 단정 지었다. 다음날 해는 내 머리 위로 떴지만, 여전히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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