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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Jun 28. 2020

혼자 창밖을 보고 자주 고독을 씹음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꼬마의 걸음으로 족히 삼십 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꾸불꾸불 비포장도로 옆에는 노란 논밭이 우렁차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꼬마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집에 도착하면 무언가 재미난 세상이 가득하길 바랬다. 집에 도착했는데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고, 아빠는 서울에 계셨다. 엄마가 시골에 내려오면서 "지훈아, 아빠 주말마다 자주 오실 거야."라고 얘기한 말을 꼬마는 굳게 믿었다. 그런데 그 말을 믿을수록 아빠가 보고 싶었고, 아빠는 꼬마의 믿음이 강해질수록 옆에 없었다. 


 집에는 대신 고모가 있었다. 그리고 고모의 아들, 딸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 광경이 낯설었다. 지금도 시골에는 똑같은 집 두 채가 있다. 한 채는 우리 집, 한 채는 고모네 집이었다. 그런데, 자금사정의 어려움으로 고모네 집이 마저 지어지지 못하고 집을 지을 때까지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간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6년 동안 이어졌다. 서울에 있을 때 가끔 명절에 만나면 그렇게 재밌고 좋았던 사이였는데, 작은 집에 함께 사니 싸울 일도 많고, 서로 못 볼 꼴도 많이 봤다. 집 안에서 동선이 겹치니 감정도 자주 부딪혔다. 무엇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내가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없는데, H와 G는 마중해 줄 엄마가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H와 G가 고모의 품에 안길 동안 나도 그 품이 그리워 안겨보려 했지만, 엄마만큼 그 품이 따뜻하지는 못했다.


 해가 지고 가로등 하나가 논밭을 비칠 때쯤이면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왔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나가 엄마를 마중했지만, 엄마는 많이 피곤해 보였다. 당시 힘들 때여서 엄마의 밝은 표정을 많이 접하지 못했다. 내가 느낀 공허함을 엄마 옆에서 떠들고 싶었는데, 엄마는 집에 와서도 마음이 바쁜지 곁을 잘 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내가 "엄마, 아빠 언제 와?"라고 물으면 엄마는 더 짜증 나듯이 "아빠 얘기 그만해."라고 나를 다그쳤다. 어린 꼬마는 자신 때문에 엄마가 속상한 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다음 날 엄마가 출근한 후 엄마의 서랍장에 쪽지를 써서 넣었다. 

 '엄마, 엄마도 바쁜데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이제 아빠 얘기 안 할게.'

 그렇게 쪽지를 쓴 후 나는 아빠를 가슴에 묻은 채 아빠가 보고 싶을 때면 속으로 말을 걸었다.

 '아빠, 언제 와?'

 그리고, 내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았던 엄마도 옆에 있지만 조그만 가슴에 함께 묻었다. 엄마는 바빴고, 아빠는 서울에서 시골에 올 생각을 안 했다. 형은 나보다 고작 세 살 위였는데 마치 어른처럼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 듯, 집에 오면 형 방에서 스탠드를 켜고 공부에 매진했다. 형은 형 방을 자주 닫았다. 나는 혼자 고독했고, 어린 나이부터 자주 고독을 씹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의 태도 평가에는 감점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혼자 창 밖을 보고, 자주 고독을 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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