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고 내 손을 끌고 가던 엄마와 멀리서 손을 흔들어주던 아빠 사이에서 나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아빠, 나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짜장면 시켜 놓아. 계란 프라이도 얹혀달라 그래."
"알았다. 이놈아."
아빠는 해맑게 웃으셨다. 그리고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별이었다.
차를 타고 내려간 곳은 서울과 멀리 떨어진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분명 여행이라 그랬는데 땅 위에 한 채의 집이 있었고 곧이어 이삿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훈아, 이제 여기서 살 거야"
엄마가 갑자기 나를 보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왜? 여행이었잖아. 아빠는?"
"아빠는 서울에서 일해야 돼."
"아빠는 같이 안 산다고?"
"응. 아빠가 주말에 자주 내려오실 거야."
엄마는 그렇게 얘기하고 나로부터 고개를 돌리셨다.
나는 그제야 집 주변의 환경을 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지어진 집과 비포장도로, 축사, 논과 밭, 갓 태어난 듯 심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 뱀풀 등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나를 감싸는 듯했다.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고?'
아파트에서 늘 만나던 친구가 없고,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없고, 반짝거리는 상가들이 없는 반짝거리지 않는 곳. 무엇보다 아빠는 같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이 이곳을 더 마음에 들지 않게 만들었다.
"지훈아, 걸을까?"
풀이 죽어 땅만 툭툭 차고 있던 나를 그제야 발견한 듯, 엄마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응!"
나는 엄마가 어디 좋은 곳이라도 데려가는 줄 알고, 신이 나서 대답했다. 엄마가 그렇게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작은 학교였다. 운동장 안에 떡하니 자리 잡은 2층짜리 건물이었다.
"지훈아, 여기가 네가 다닐 곳이야. 어때?"
"근데... 내 친구들은 이제 못 봐? 우리 서울 언제 가?"
"상황 좋아지면 언제든 갈 거야."
엄마가 웃으며 얘기했다. 나는 '언제든'이라는 말을 '곧'이라고 받아들였다.
"응. 엄마! 여기 좋아."
그렇게 다시 엄마가 우리 집이라는 장소에 도달할 때쯤 엄마가 다시 나를 쳐다보셨다.
"지훈아, 엄마랑 이렇게 걸어왔던 길 학교 끝나면 혼자 올 수 있겠어?"
"혼자?"
"응. 지훈이 혼자 와야 돼. 엄마는 일 해야 해서 지훈이 마중 못 나가."
나는 그럼에도 엄마가 마중 오면 좋겠다고 답 하고 싶었지만, 속마음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응. 할 수 있어."
당시 내 나이가 이제 갓 일곱살을 넘은 여덟살이었다.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혼자라는 말을 접한 적이 처음이었다. 유치원을 마치면 학원 차 혹은 엄마의 지인분들이 나를 마중 나왔고, 거기서 나는 늘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고 반겨줌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것이 없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나를 위해 무엇을 못한다는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나는 혼자라는 말이 무엇일지 알지 못하지만 내 안에 들어온 혼자라는 단어를 골똘히 곱씹고 있었다. 막연히 '혼자'라는 단어는 외롭다는 것을 그 때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