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훈 Jul 05. 2020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지훈아, 아무리 친해도 돈은 절대 빌려주지 마."

 지금도 어머니는 가끔씩 버릇처럼 내게 저 말을 건네곤 한다. 당연히 나도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 돈을 함부로 빌려주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너무 친하면 차라리 소액을 주거나, 맛있는 것을 사주지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며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도 '내 손 한 번만 잡아달라'며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보증'

 나는 얼핏 들어 저렇게 든든한 단어가 굉장한 위험한 단어가 될 거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은 시골에 사업하시는 친척에게 보증을 섰고, 그 사업은 단년만에 무너졌다. 채무인은 채무를 할 능력이 없다고 여겨졌다. 보증을 선 부모님이 대신 을 갚아야 했는데 역시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시골에 있는 물건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압류 대상이었고 집조차 날아갈 위기를 맞았었다. 어머니는 빨간딱지들을 보고 넋이 나갔었다. 그 표정은 며칠 동안이나 길게 이어졌다.

 "엄마, 그래도 힘내야지" 혹은 "엄마, 같이 힘내자"라고 감히 얘기할 수 없었다.

 걸핏하면 찾아오는 힘든 상황에서 힘내자는 말만큼 바보 같은 말은 없었다.


 "A야 미안한데...."

 "B야 미안한데..."

 어머니는 전화기를 붙잡고 어디론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나에게 우리 엄마는 미안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머니는 돈 앞에서 자주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내게는 웃음을 보이려고 노력하셨다.

 "지훈아,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하루는 어머니가 중학교서 돌아온 내게 밝은 표정으로 무얼 먹고 싶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애써 힘을 내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해주는 돈가스 먹고 싶어."

 "그래, 엄마가 해줄게."

 나는 엄마가 해준다는 말에 위안을 받았다. 엄마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직도 많다는 것은 엄마가 힘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머니가 힘을 내어 정성을 쏟은 돈가스는 힘든 상황을 다 잊을 만큼 달콤했다.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도 함께 느껴져 내 뱃속이 아주 오랫동안 따뜻했다.


 따뜻함을 품은 날이면 잠을 잘 잘 잤다. 이른 아침이면,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등교를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20분은 걸렸는데, 그럴 때 나는 워크맨에서 에이브릴 라빈의 곡들을 신나게 듣고는 했다. 영어라서 알아듣지 못했는데, 오히려 영어라서 알아듣지 못해 더 신났던 것 같다. 당시 학교에서 나에게 들어오는 한국말은 다 힘든 말들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삶에 대해서 격려를 해주는 멋진 선생님도 참 많았는데, 내게는 그런 선생님이 없었다. 어찌 보면 학교 진학 문제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아는 어른들이었기에, 그 애가 처한 상황이 무엇이든 '공부'를 먼저 강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힘든 삶에 대해 위로를 해주는 선생님이 필요했었다. 인생에서 공부를 왜 잘해야 하는지 얘기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그분에게 훌훌 털어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수업을 들으며 필기는 했지만, 단어들은 곧장 어디론가 날아갔다. 국어든, 영어든, 수학이든 내가 처한 상황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단어들이었기에 듣는 즉시 휘발되어버렸다. 조그만 시골학교라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선생님들은 금세 눈치를 채셨고, 가끔은 선생님이 날리는 신발을 그대로 얼굴에 맞기도 했다. 선생님도 내가 조금 피할 줄 알았는데, 그대로 맞자 미안한 눈치였다.

 "왜 안 피하냐."

 "괜찮아요. 안 아파요."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괜찮고 싶지 않았고, 많이 서럽고 아팠다.


 하루는 집에 들어가 컴퓨터를 켰는데, 컴퓨터에 붙은 빨간딱지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딱지에는 압류된 물건이니 함부로 건들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써져 있었다. 나는 반항심이 들어 딱지를 벅벅 긁었다. 그렇게 하면 내 인생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지훈아, 그거 왜 때? 떼면 안 되는데..."

 "창피해서..."

 어머니는 잠시 머무르다 내 얼굴을 보고 웃더니 방을 나가셨다.

 어머니에게 그렇게 밖에 말을 하지 않은 내가 더 창피했고, 나는 떼었던 빨간딱지를 다시 컴퓨터에 붙였다.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붙은 딱지는 다시 붙여줬는데, 어머니에게 붙인 상처는 떼어주지 못했다. 말이란 것이 한 번 내뱉으면 내 것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내가 내뱉은 부끄러운 말도 내 것인 듯했으나 내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 말을 감당하셨다.


 나도, 어머니도 밤이 외로웠다.

이전 05화 형의 방에는 늘 스탠드가 켜져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