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난 저 고민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한 집에 두 가족이 있어 북적이는 게 좋을 때도 있었지만, 갑갑할 때가 더 많았다. 가족의 인원수가 많았고, 벌이는 적었기 때문에 옷을 하나 사 입는 것도 군것질을 할 때도 신경이 쓰였다. 어른들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무엇을 해준다고 얘기했지만, 그 얘기가 점점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상적인 얘기가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는 것 자체가 미워지게 된다.
그리고, 그 미움의 대상은 가장 가깝게 붙은 이에게 향한다. 친척 A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 집에서 어른들이 가난을 이유로, 사소한 일들로 감정이 안 좋아지면 싸웠기 때문에 친척 A와 나도 '너희 부모님이 더 잘 못했다'며 싸우고는 했다. 때론 서로를 물어뜯는 강아지들처럼 심하게 싸웠다. 옆에서 말려도 서로를 놓지 않아, 물바가지로 물을 대차게 맞은 후에야 떨어지곤 했다. 미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 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혼자서 사유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뜻했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미움을 떨쳐낼 공간도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그 미움을 고스란히 가지고 잠들었다가 눈을 떠 서로를 마주하면 다시 표출할 때도 있었다.
나는 그런 날들이 영원히 반복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신이 정말 계신지 한집에서 같이 살 것 같았던 영원한 날들이 내가 중학교 2학년 막바지에 풀어졌다. 사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일곱 살 때부터 하늘을 바라보고 빌었던 수많은 내 기도를 신이 뻔히 들으면서도 외면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친척 A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돼서야 하늘을 바라보고 신을 향해 마음을 내비치는 게 편해지기 시작했다.
"지성아, 지훈아 이렇게 우리끼리 사는 게 더 좋아?"
엄마는 친척이 떠난 집에서 우리 형제에게 물었다.
"응. 당연히 우리끼리 있는 게 더 좋지."
엄마는 웃었다.
형은 자기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야구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고, 나도 내 방과 거실을 오가며 갑작스럽게 주어진 넓은 공간을 향유했다. 하루아침에 집의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버는 돈을 소수의 인원에게 쓰게 되니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상황이 더 나아졌다.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었고 갖고 싶었던 옷과 신발을 착용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우리 가족만 있는 단란한 상황을 나는 정말 간절히도 바랬다.
친척 A와는 학교에서만 만나게 되었다.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다니다가 서로 다른 집에서 다른 경로로 학교와 집을 오고 갔다. 그렇게 A와 잠깐의 만남과 오랜 시간의 헤어짐을 경험했다. 늘 A와 같이 붙어다니다가 학교를 마치면 다른 곳을 향해 달린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면 매점에 가서 빵과 우유를 먹으며 더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서로의 집을 데려다주고 다시 혼자서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A와 그 뒤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각자 사유하는 공간이 생기고 거리가 생기고 나서야 서로를 존중할 수 있었고, 좋아할 수 있었다. 자주 싸워서 그렇지, 돌이켜보면 둘이 붙어 다니며 많이 웃기도 했다는 것을 떨어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A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공부를 했다. 한집에서 살 때 늘 같이 붙어서 밤을 새우고 공부를 해서 그랬는지, 혼자 공부하는 게 불안했다. 이상하게 A가 오면 마음이 편했고, 공부할 마음이 더 생겼다. 생각해 보면 축구, 농구, 달리기, 게임까지 A와 나는 승부욕이 강해 늘 부딪혔다. 시험기간에는 '누가 더 늦게까지 공부하나'로 승부욕이 생겼고, 자연스레 A가 있어야 안정적인 마음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가까이 있을 때 그걸 몰랐는데 떨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A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어릴 때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더니 이렇게 친해질지 누가 알았겠어?"
친척들과 모이면 A와 나를 두고 어른들이 저런 얘기를 하곤 한다. A와 내가 이렇게 친해질 거라고는 우리도 몰랐다. 어쩌면 A와 늘 싸울 수 있었기에 갑갑한 하루하루를 그나마 풀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싸울 때는 지독하게 A가 미웠는데, A를 이기려는 승부욕이 삶을 버티는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 A와 농구를 하면 한 점도 안 내주려고 끈질기게 서로를 쫓아다녀 체력 하나는 지금도 자신 있다. 대학교 때 축구를 하면 어디서든 내가 보인다고 선후배들이 엄지 척을 세우고는 했다. 나는 지금도 체력장처럼 운동장을 뛰는데, 2km는 무리 없이 잘 달린다.
"지훈아. 우리 집에 언제 놀러 와?"
가끔씩 A는 전화를 걸어와 내게 묻는다.
"나 일해야 돼. 형이 좀 와."
"이~야. 우리 지훈이 예전에는 잘도 놀러 오더니 변했네."
"아니 형은 좀 변해야 돼. 어떻게 한 번을 안 오냐."
"아니. 네가 늘 왔으니까 그렇지. 사람이 변하면 정 없잖아."
A와 나는 전화기를 붙잡으면 이렇게 시답잖은 말싸움을 하곤 한다. 물론 예전처럼 서로를 이겨먹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어릴 때 서로를 물고 뜯으며 이긴 횟수로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