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나를 근심 있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 역시 근심을 안은 채 문 밖을 나섰다. 그렇게 문 밖에 나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짱이가 중간에 서있었다. 짱이의 얼굴이 살짝 굳어 있었는데, 짱이의 피식거리는 웃음을 보고서야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직감했다.
"짱아, 너 이번 내신 국영수 성적 별로 안 좋았냐?"
"응... 너도?"
"응"
"내려가자..ㅋㅋ"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건데, 진짜 안 좋은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사람이 안 좋은 예감에 더 몰두하는 버릇이 있어 안 좋은 것들이 눈 앞에 실제로 보이나 보다. 예상대로 기숙사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짱이가 없었다면 그날 내 기분의 다운지수는 엄청나게 급감할 뻔했다. 기숙사를 나가라는 건 밑의 기숙사로 옮기라는 뜻이다. 고등학교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기숙사의 구조는 성적에 따른 계급제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용기숙사는 지상에 위치했고, 한 방의 평수도 넓었고 책상 등의 시설이 좋았다. 사감 선생님은 무던했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분이었다. 옹기숙사는 용기숙사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시설은 좋지 못했고, 사감 선생님은 나이도 많으셨고, 복도에 학생들을 세워놓고 일장 연설을 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새벽부터 깨워 구보와 막일을 시켰다.
당연히 기숙사 학생들은 용기숙사를 선호했다. 그리고 매 학기 국영수 성적으로 순위를 매겨 학생들 간 순위 변동이 있을 시 지하로 낙방되거나 지상으로 승격하는 구조였다.
짱이와 나는 옹기숙사에서 용기숙사로 2학년이 되던 해 함께 승격했다가 3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낙방 선고를 받았다.
"짱아. 옹기숙사로 내려갈 거야?"
"너는?"
"나 안 갈래. 거기 사감 선생님 일장 연설도 못 듣겠고, 시설도 안 좋잖아. 우리 그냥 하숙집에서 같이 지낼까?"
"그래. 오늘 아빠한테 얘기할게"
"나도 엄마한테 얘기해야겠다."
그렇게 짱이와 나는 옹기숙사로 내려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용기숙사로 들어가 주섬주섬 짐을 쌌다. 우리를 바라보는 방 친구들의 눈빛이 애처로웠다. 아마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힘내'라거나 '괜찮아'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짱이와 나는 짐을 싸고 교실로 등교했다.
"안녕. 나 갈게."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과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았다.
생각해보니 사람이 예측하지 않게 이별을 맞는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은 것 같다.
"오! 이 시끼들 너네 둘 다 그 짐 뭐야. 먹을 거야?"
짱이와 내가 짐을 싸고 교실에 등장하자 친구들이 짐으로 우르르 달려들었다.
"아 먹을 거 아니야!."
"야. 웃기지 마. 비켜 이 시끼들 떼어내."
짱이와 나는 기숙사에서 쫓겨난 것도 서러운데 친구들에게 우리의 짐마저 사수하지 못하고 저만치 내팽개쳐졌다.
"이거 뭐야. 무슨 옷들이 이렇게 많아. 너희 용기숙사에서 쫓겨났어?"
한 친구의 눈치 빠른 발언에 친구들이 우리의 눈을 동시에 쳐다봤다.
"어... 떨어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시끼들 다시 구식 기숙사 가는겨?"
"아니. 옹기숙사 안가. 하숙집에서 같이 살 겨"
"하숙집?!! 뭐여. 이제 미쳐가지고 인생 놔버린겨?"
"아씨... 하숙집에서 열심히 할 겨!"
"웃기지 마. 야! 형들 잘 데 없으면 놀러 갈 테니까 자리 마련해라"
"웃기고 있네. 오면 죽여버릴 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바탕 반 친구들의 낙방 환영회가 거칠게 열렸다. 태풍이 휘몰아친 것만 같았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야자까지 끝난 후 짱이와 하숙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쓰는 하숙집 방은 용기숙사에 비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자유로웠다. 통제가 없었고, 무엇보다 아주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따뜻했다.
우리 방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 두 개가 있었고, 책상 옆으로 수납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불을 깔면 딱 맞을 공간이었다. 그날 짱이와 책상에 앉아 새벽 두 시까지 공부하고, 이불을 깔고 누운 채 잠시 수다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