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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Aug 24. 2020

마음은 여전히 집에 남았다.

 "지훈아. 왔어?"

 버스에서 내려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동네의 입구를 좋아한다. 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벼들의 결들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길을 걷다 맡은 축사의 똥냄새에 뇌가 짜릿했던 생동감도 잊지 못한다. 늘 걷던 길이었으나 가끔 걷게 되어 더 소중했던 것 같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중학교까지는 전교생이 몇십 명이 안 되는 작은 학교를 다녔는데, 처음으로 몇백 명의 전교생이 있는 곳에서 생활을 했다. 차로는 학교까지 30분이 안 되는 거리였지만, 워낙 시골이라 버스 배차도 적고, 버스가 한번 다니면 온 동네를 돌았기 때문에 학교까지 두 시간은 걸렸다. 고등학교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어쩔 수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형과는 세 살 터울이라 내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 자연스럽게 형은 대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형과는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학교에서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형은 부산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며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아빠는 서울에서 일을 계속 해야 했다. 그렇게 어머니와 단 둘이 집에서 지냈는데, 나마저 기숙사에 들어가며 어머니는 혼자 집에 거주하게 되었다.

 "지훈아,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있을 테니까 잘 다녀와."

 내가 살던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살기 위한 짐을 싸고 밖을 나서는데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내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당부의 말을 건넸다.  텅 빈 곳에 어머니 혼자 두고 가려니 차를 타고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어머니 곁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이 외로웠고, 나 역시 외로웠다. 


 '공부가 그렇게 중요한가? 엄마를 혼자 두고 기숙사에 들어올 만큼?' 

 학교에서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기숙사에 들어와 스탠트를 켜고 새벽까지 공부를 할 때 답답함이 몰려올 때가 있었다. 아직 인생이 뭔지도 모르는데, 기계처럼 답만 죽어라 맞추는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공부가 나에게 어떤 인생을 살지 가르쳐 주지 않는데,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일까.' 

 '우리 가족의 삶도 더 나아지는 게 맞는 걸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도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엉뚱한 수다를 떠는 재미도 물론 많았다. 그런데 어떤 날은 친구들의 수다는 들리지 않고, 침대에 누워 그저 멍했다. 자유롭고 싶은데, 자유롭지 않은 느낌이 나를 지배했다. 스트레스로 잘 나지 않던 여드름도 온몸을 덮었고, 이도 툭 튀어나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지훈아, 너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을 보면 친구들이 놀라 질문을 할 때도 많았다. 여드름이 얼굴을 덮은 후로는 표정을 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어떤 표정을 하고 싶었을까.'

 학교생활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새벽 6시 기상 후 구보와 체조를 했고 아침 식사 후 학교로 이동했다. 수업 후 도서관에서 자율학습을 마치면 기숙사로 돌아와 공부를 하는 생활이 기계처럼 반복되었다. 기숙사에 들어오면 나이 든 기숙사 사감 선생님의 지루한 집합 시간이 이어졌다. 따분한 연설이 1시간가량 지속될 때가 있었고, 사감선생님이 과도하게 자신의 말에 취한 날이면 두시간 가량 연설이 이어지기도 했다. 

  "와우~진짜 말이 왜 이렇게 많은겨?"

 사감 선생님의 말이 끝나면 다들 지쳐 침대에 쓰러져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나 역시 침대에 뻗어 있었다.

 나는 그럭저럭 적응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5일이 지나고 기숙사에서 다시 짐을 쌌다. 주말에 하루를 집에서 자고 올 수 있었는데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버스를 타고 시골길로 향하는 길이 설렜고,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이동네, 저동네를 뺑뺑 도는 버스에서의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창밖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과 정겨운 똥냄새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지루함도 잠시,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었다. 그렇게 집에 가까워지자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조림 냄새가 문밖으로 퍼지고 있었다. 집에는 벨이 없었는데, 요리를 하는 어머니는 어떻게 아셨는지 한걸음에 달려 나와 문을 여셨다. 

 "지훈아 왔어?"

 "응."

 "공부하느라 힘들지? 손 씻고 밥부터 먹어."

 손을 씻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상 앞에 앉았다. 고등어조림 특유의 고추장 향과 오래 조려 적당히 깊은 맛이 몸안에 들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도 듬뿍듬뿍 퍼먹었다. 

 "엄마, 밥 더 줘."

 평소 답지 않게 엄마가 해준 밥을 많이 먹었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쌓여 배가 더 고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밥을 먹고 쇼파에 앉아 TV를 보며 집에서의 아늑함을 더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밤은 너무 쉽게 왔고 논밭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아니, 잠이 들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잠을 설쳤고, 그러다 아침이 왔다. 어제와는 달리 아침을 먹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다시 짐을 싸야만 했다. 

 "지훈아, 공부 열심히 하고 잘 다녀와."

 어머니는 여전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몸은 움직였고, 마음은 여전히 집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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