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이와 내가 야자를 마치고 하숙집에 오면 행동하는 경우의 수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씻자마자 한 명이 바로 공부 태세로 전환할 때도 있고, 둘 다 공부 태세로 전환할 때도 있었다. 아니면 둘 다 누워서 여유를 부릴 때도 있었다. 둘 다 누워서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그 날 둘 다 공부가 잘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야. 우리 왜 사냐?"
가끔은 우리가 공부하는 기계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인간이 왜 사는지'에 대해 나오는 대로 수다를 떨다가 별스티커도 없는 천장을 무수히 쳐다본 적도 있다.
"짱아. 오늘 기분도 꿀꿀한데 그냥 김밥천국 가서 야식 먹고 올까?"
"그려. 그래도 네가 같이 공부 안 하니까 마음이 편하다."
"미친...ㅋㅋㅋㅋ."
짱이와 함께 하숙 생활을 하며 공부 리듬을 맞춘 것은 좋았다. 사실 하숙집에는 공부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방에서 PC로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해만 지면 전투부대처럼 PC방에 우르르 출동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덕분에 짱이와 내가 공부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PC방으로 향했던 전투부대는 새벽에나 들어와서 잠을 청했기 때문에 짱이와 나는 별다른 소음 없이 조용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만약 짱이도 전투부대에 합류했거나 이탈을 했다면, 공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짱이는 독하게 공부하는 친구였다. 잘 안 풀리는 게 있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포커페이스로 공부를 해 나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같이 공부를 했다.
"자자."
새벽 두 시가 되면 짱이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훈아. 오늘 공부할 거냐."
그러다 짱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는 날은 짱이의 성적이 올랐다는 것을 뜻했고 사기 또한 상승했다는 것을 뜻했다.
"피자 먹을래?"
내 사기 또한 좋은 날이면 우리는 피자를 시켜 놓고 둘 만의 축하파티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의고사 성적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은데, 그때는 성적이 올라야 내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가장 순수하게 세상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질 시절에 반복된 학습과 성적으로 삶을 판단했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짱아, 피자 먹을래?"
어느 날은 내가 짱이에게 제안을 했다. 그러나 짱이의 반응이 안 좋은 날도 당연히 있었다. 우리 둘 다 성적이 오르거나 동일하게 컨디션이 좋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슨 피자여. 김밥 천국 가."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짱이의 상황을 짐작했고, 짱이 역시 나의 말로 내 상황을 짐작했다.
"훈아. 나 라면 사줘라."
"그려. 김밥도 사줄게."
"너밖에 없다."
밤거리를 걷는 게 성적이 떨어진 날을 위로하기도 했다. 풍경을 보며 걷는 건 아니었지만, 걷다가 바람을 맞고 잠시라도 주변 거리를 보는 게 마음을 푸는 데 좋았다. 그리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함께 피자를 먹고, 위로받을 일이 있을 때 김밥 천국으로 산책을 하는 짱이가 있다는 게 마음이 놓였다.
"짱이, 훈이... 너희 하숙집 애들 열라 놀러 다니는 거 아녀?이 시끼들... 나한테 걸리면 죽는 겨 아주!"
담임 선생님은 짱이와 나를 볼 때면 저렇게 겁을 주곤 했다. 밤마다 하숙집 친구들이 전투부대처럼 어딘가로 향한다는 걸 선생님들도 당연히 알고 계셨다. 하숙집 친구들은 마치 군부대처럼 질서 정연하고 당당하게 밤거리를 해쳐나갔기에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짱이와 나도 같은 하숙집이었기에 그런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