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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Jul 13. 2020

공부의 동기가 없었다.

집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희망이 적었다. 삶이 희망적이지 않으니 공부에 동기가 없었다. 조금 집중하다가도 금방 딴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학교에서도 맨 앞에 앉아 들으려는 자세는 좋았는데,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면 여러 단어들이 내 귀를 거쳐 창문을 거쳐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듯했다.

 "넌 대체 왜 그러니."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인원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늘 나를 주시했다. 성적도 좋지 않은데,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늘 공만 차던 아이. 공으로 하는 놀이는 목적이 있어서 좋았다. 축구, 농구, 탁구 모두 점수를 많이 내면 이기는 경기였고, 열심히 하면 결과가 나는 경기였다. 그래서 운동을 할 때는 늘 필사적이었다.

 "우와. 지훈이 진짜 열심히 한다. 공으로 하는 건 다 잘하네. 공부도 그렇게 하지 인마."

 유일하게 공을 찰 때면 선생님들이 칭찬을 해주셨다.


 그래서 그런가. 공으로 하는 활동을 제외하고는 중학교의 모든 수업이 지루했다.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 삶이 나아질까.'

 내게 어린 시절은 동일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잠깐 행복하려다가도 다시 돈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여러 상황들을 봤고, 그 상황에 아파하는 엄마를 보며 함께 지쳤다.

 '서울에서 혼자 외롭게 일하는 아버지의 여러 날과, 시골에서 열심히 버티는 어머니의 여러 날들 중 단 하루도 내가 좋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는데, 공부를 하면 삶이 나아지나.'

 누군가 그랬다. 사춘기는 '내가 왜 태어났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내게 사춘기는 길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오래 방황했다. 수업의 내용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는 없었다. 공부가 싫었고, 공부하라고 혼내고 무시하는 선생님들도 싫었다. 세상이 내게 고독을 만들어, 고독을 풀이하려 쓰는 시가 좋고 악바리처럼 공을 뺏어 시원하게 골문에 골인을 하는 것이 좋았다. 적어도 내가 쓰는 시와 내가 골문에 넣는 공은 내 눈에 보였고, 그 움직임을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다 한 번은 어머니가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에게 둘러 싸인 일이 있었다. 당시 내가 전교 회장이었는데, 지훈이가 너무 정신을 못 차린다며 선생님들이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다. 그 상황을 목격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교무실에 볼 일이 있어 들어가다 그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나는 그냥 천진난만하고 바보처럼 웃으며 나왔는데, 교무실을 나오며 어머니를 생각했다.  안 그래도 여러겹으로 가려진 앞날을 뚫기 해 열심히 살고 있는 어머니가  선생님들에게 둘러 싸인 모습이라니. 그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것은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일이 생겼다. 나는 독하게 결심을 했다. 선생님들에게 본 떼를 보여주겠다고.

 결심을 먹고 나서야 수업의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상대적으로 사회과학은 약한 분야였는데, 마음을 여니 흥미가 생겼다. 수업 때 선생님들은 내게 여러 질문을 하고는 했는데, 늘 맞추지 못하다가 이 시기에는 거의 다 맞추었다. 선생님들은 의아한 듯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학기에 나는 평균 30 이상을 올렸다. 평균 60에서 평균 93을 맞았다. 선생님들은 지훈이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고 칭찬해 주셨고,  어머니 역시 선생님들에게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

 "지훈아. 이제 공부가 잘 돼?"

 어머니는 내게 웃으며 물었다.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아들 머리 좋아. 안 해서 그렇지. 그런데 엄마 공부가 재미없어."

 "왜 재미없어. 평균 30 올린 건 네가 최초래."

 '엄마 때문에 공부한 건데...'

 나는 속에 있는 말을 엄마에게 하지는 못했다. 엄마가 웃는 걸 보니 그냥 만족했다. 그 뒤로도 나는 기복이 심한 성적들을 보여주었다. 삶에 기복이 심할수록 성적도 그 모양을 닮아갔다.  나는 불안한 감정을 밖에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불안했고, 삶에 동기가 필요했고,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아이였다. 너무 안타깝게도 나는 그 위로를 받지는 못했다.


 "얘들아, 공부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공부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니에요?"

 "아니야. 정서가 제일 중요해. 정서는 너희들의 동기와 연결되어 있어. 동기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인데, 꿈과 연결되기도 하고,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과 연결되기도 해. 그래서 공부를 하기 전에 중요한 건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를 찾는 거고 그 동기를 찾았을 때 정서가 안정되는 거야. 근데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동기가 약하다는 것이고, 동기가 약했을 때 하는 공부는 결국 휘발돼. 그래서 자기감정을 잘 살피고, 힘들면 스스로 위로해 주고, 고생했다고 스스로 안아주는 게 진짜 중요해. 알았지?"

 "네.선생님 수업 시간 진짜 빨리가요. 재미있었어요."

 "나도 너희들 덕분에 시간 빨리 갔어. 고마워."


 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어릴 때 내 모습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많이 웃고, 학생들 또한 나를 보며 웃는다. 그러다 반 아이들 중 표정과 달리 속에 외로움이 보이는 아이가 있으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마음을 쓴다.

 "피곤하지? 졸리면 조금만 자고 일어나. 괜찮아."

 아이는 고단한 마음을 책상에 눕힌다. 잠시 후 눈이 뜬 아이에게 다시 다가간다.

 "잘 잤어? 선생님 오늘 하루 보면 또 못 볼 수도 있는데 진짜 너 인생에서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선생님이랑 같이 해볼까?"

 "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아이의 마음을 열어간다. 어릴 때 고독했던 내 마음 또한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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