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훈 Mar 10. 2021

엄마, 밥 먹었어?

밥 먹었어?

 지방 출장을 다녀와 늦은 저녁에 도착하면, 이른 잠을 청하는 어머니는 쏟아지는 잠도 뒤로 한채 마중을 나오신다. 서른 중반의 나이, 이제는 너무나 알아서 잘 생활하고 내 집은 당연하게 잘 찾아서 도착할 나이지만 어머니는 본인이 예상하는 시간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언제 도착하냐며 연락을 하신다. 



 저녁 11시, 잠을 청할 시간이 한참 지난 때에도 어머니는 늘 내게 밥은 먹었냐며 마중 인사를 건넨다. 

 "괜찮아. 김밥 사 왔어."

 나는 어머니가 고될까 봐 늦은 시간이면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 가곤 한다. 내가 집에 들어설 때 집 안은 환하다.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시다가 이 방, 저 방 불을 켜놓은 듯하다. 혼자 사는 집에 홀로 들어서는 것도 나만의 독립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으나 어머니가 기다리는 공간은 어머니 같은 편안한 온기가 있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어릴 적 고등학교 시절을 기숙사에서 보냈는데 금요일 오후가 되면 집에 다녀올 시간이 주어졌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이고, 다음날 점심 12시에는 다시 짐을 싸 집을 나서야 했다. 그 반나절이 주는 보상이 그렇게 꿀맛 같았다. 하루에 몇 대 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온 동네를 빙빙 돌다 우리 동네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집에 온 듯한 반가움을 나는 잊지 못한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면, 어머니의 집밥 냄새가 가장 먼저 나를 맞았다. 

 "지훈아, 공부하느라 힘들지? 얼른 씻고 밥 먹자"

 고등학생인 나를 보며 어머니는 대견한 듯 웃었다. 내가 씻고 밥상 앞에 앉으면 고등어조림부터 제육볶음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한가득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고등어조림 국물을 비비고, 그 위에 생선을 놓고 함께 먹으면 한 주의 피로가 싹 풀렸다.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공부를 하는 거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 먹는 어머니의 집밥을 먹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밥을 먹고 나면,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빵을 한가득 사주셔서 컴퓨터로 밀린 드라마를 보며 빵과 우유를 함께 먹었다. 나는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그 따뜻한 시간 때문에 다시 일주일 간 공부를 할 힘을 얻었다.



 그 뒤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시골로 내려가는 일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시골로 내려가지 않았다. 늘 기숙사에 갇혀 지내다가 자유로운 캠퍼스 생활에 취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빴다. 

 "지훈아, 집에 안 와?"

 "응. 나 공부해야 될 것 같아."

 어머니의 물음에 공부로 핑계를 되긴 했지만, 사실 대학교 1학년 무렵에는 공부를 많이 못했다. 나는 그저 가난했던 어린 시절, 사람이 별로 없는 시골의 따분함에 내려가기를 망설였던 것 같아. 어머니의 집밥도 잠시 잊었다. 그때는 시골에서 출퇴근을 하는 어머니의 고됨과 외로움을 알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때로 내가 어른이 되는 게 아픈 건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시기가 어른이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주말마다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와 집밥을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안타까운 건 우리가 부모님을 이해할 즈음이면, 부모님의 젊은 시절은 이미 지나갈 즈음에 있다는 것이다. 

 


"엄마, 밖에서 밥 먹을까?"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답을 미리 알면서도 밖에서 밥을 먹자고 제안을 한다. 

 "돈 아깝게 왜 밖에서 먹어. 엄마가 맛있는 것 해줄게."

 어머니에게 많이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밖을 나가자고 해도, 어머니는 아직도 본인이 더 많은 것을 내게 해주려고 하신다. 돈은 아껴서 후에 결혼 자금과 내 자녀를 위한 목돈으로 쌓아두라고 하신다. 지금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나만 잘 지내면 바라는 게 없다며 만족해하신다. 



 나는 더 어른이 될수록 어머니를 자주 생각한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한다. 어머니로만 살았던 세월을 어떻게 보상해 드릴지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어머니를 이해하고 고마움을 느낄 때까지 혼자된 공백을 그저 어머니로 다시 채우려고 했던 그 마음에 내 가슴이 무너질 때도 있다. 

 "지훈아, 밥 먹었어?"

 내 마음을 아는지,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밥은 먹었냐며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맛있는 것 먹었어?"

 "엄마는 그냥 집에 있는 것 대충 꺼내 먹었지..."

 "잘 먹어야지... 왜 대충 먹어..."

 요즘 부쩍 어머니에게도 잔소리를 한다. 건강한 것 챙겨 먹으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모두 다 사랑인 걸 알고 어머니의 잔소리를 나도 모방하는 중이다. 어머니처럼 안부도 자주 묻는다. 그 끝에는 역시 사랑이 있다.

 "엄마, 밥 먹었어?"

이전 18화 부모님이 보고 싶은 새벽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