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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Jan 04. 2021

나 역시 우리 가족을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왔던 아이 중에 참을성이 제일 좋아요."

  치과에서 온몸이 간호사들로부터 고정된 적이 있다. 어금니가 썩었는데, 치료비용이 없어 방치되었다가 뿌리까지 썩어버렸다. 메스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통증이 커 온몸이 꼬였다. 치과의사의 신호와 함께 간호사들이 내 몸을 붙잡았고, 메스가 잇몸을 찌르더니 뿌리까지 뽑아버렸다. 커다란 눈물 두 방울이 뚝 떨어졌다. 오랜 통증을 참은 보상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이었고, 당시에는 그마저도 고맙게 생각했다. 



 혼자 참으며 감내하다 보니, 혼자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서른 살의 나이에 1평짜리 사무실에서 무모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무자본이었고, 부모님에게 돈을 벌릴 용기는 없었고, 부모님 역시 그만한 사정이 되지 않았다. 담대하지 못해 대출 역시 생각하지 못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보증을 잘못 서 큰 빚을 진 걸 본 후로, 빚을 지는 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대출 역시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투자를 할 용기가 없었으니, 몸을 움직이는 것 밖에 없었다. 무식할 정도로 영업을 했고, 가끔씩 수주를 했으나 고객사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는 못했다. 고정비 등 빠져나갈 게 있으니 당연히 지출해야 할 게 부담이었고 몇 년 동안 들었던 보험을 깨면서 사업을 지속했다. 


자본금이 튼튼하지 않은 우리 집의 형편 상 내가 사업을 한다는 건 처음부터 가족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는데, 초기의 결과값도 좋지 않으니 가족의 시선 또한 곱지 않았다. 사회에 나와 홀로서기를 하며 혼자 고군분투하던 나에게는 가까이 있는 따뜻한 이의 시선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시선은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어렵게 구하려 해도 잘 구해지지 않았다. 

 "사업은 쉬운 게 아니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 그렇게 부딪히며 하는 거야. 힘들면 좀 쉬면서 해도 괜찮아"

 혼자서 참 많이도 속삭였던 말이지만,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들을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사회생활 초창기부터 어머님이 돈을 관리해 주고 계셨고, 장기보험과 적금, 청약 등의 비용이 꾸준하게 지출되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자유롭고 싶어 사업을 시작했는데, 돈의 굴레에 갇힌 느낌이었다. 내 지친 감정을 표현할 때가 필요했는데, 표현하면 가족들이 불안해할까 봐 내색하지 못했다. 내 감정보다 돈이 우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잠이 들기 전이면, 항상 마음이 아픈 채로 잠이 들었다.


"아빠, 나 사실 우리 가족이 나 힘든 건 모르고 초반에 사업 잘 못한다고 했을 때 많이 열 받았어."

 나는 우리 가족을 많이 챙기고 아끼는데, 우리 가족은 내가 참을성이 많다는 이유로 어떤 말도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에 화가 난 적이 있다. 가족이기에, 가족을 더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가족이기에 내 가족을 다 안다고 판단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쉽게 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는 몰랐다. 가족은 다 알아줄 거라는 기대가 내심 있었다. 

 "아들, 미안하다. 아빠도 아들 힘든 걸 진짜 몰랐네."

 사업을 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어쩌면 우리 가족도 내 상황을 모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받았다. 생각해 보니, 힘든 상황에서 힘들다고 표현을 하는 법을 나는 몰랐다. 어릴 적 너무 힘든 시기를 견딘 우리 가족이기에 내 힘듦을 표현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참을성이 많은 나였기에 어른이 되면 더 참아야 하는 줄 알았다. 힘든 얘기를 듣는 걸 우리 부모님은 좋아하지 않으실 거라고 단정 지었다. 


 '나 역시 우리 가족을 모르고 있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잘 될 때가 있고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안될 때가 있다. 지금은 부모님과 안부도 묻고, 사소한 일들도 공유한다. 힘든 일도 힘들지 않게 얘기하는 습관이 생겼다. 

 "엄마도 요즘 종일 일하고, 사람들 관리하느라 힘들어 죽겠다."

 "아빠 회사 요즘 코로나 때문에 물량이 줄어서 잔업이 없다. 인센티브가 없으니까 아빠가 심심하네."

 부모님의 상황도 알게 되며, 덩달아 나의 상황도 얘기하게 되었다. 잘 될 때나 잘 안될 때나 잘 될 거라고 믿고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기에 다 알 거라는 착각 때문에 나를 아끼는 가족의 마음을 멀리했던 시절에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이 있기에 우리 가족과 좀 더 가까워지고,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내 마음에 한 없는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엄마, 밥 먹었어?"

 "아빠, 뭐 하고 있어?"

 가족이기에 더 많은 안부와 삶의 다양한 위로를 필요로 한다. 가까운 가족이 해주는 위로가 제일 그립고 따뜻하다. 어른일수록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더 많은 표현을 해주는 게 필요하며,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진정한 노력이다. 오늘도 우리 가족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 같다. 그 사실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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