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훈 Oct 02. 2020

"아빠. 나 고시텔에서 살게."

"아빠, 나 이제 고시텔에서 살게."

 토요일 저녁, 기분 좋게 이어진 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내가 내뱉은 한마디로 인해 오래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는 서운한 지, 내가 짐을 싸고 나가는 일요일까지 아무런 말이 없으셨다. 특정 기간씩 텀을 두고 어머니 혹은 아버지와 같이 살던 내가 처음으로 혼자서 선택한 독립이었다.

 


 "우리 이제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을 것 같아."

대학교 때 만난 여자친구의 이별 선고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평소 데이트를 할 때도 그녀의 감정 기복에 따라 내 감정은 아주 쉽게 흔들렸다. 특히 이별 선고 앞에서는 마음이 무참히 깨졌다.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 화 한번 내지를 못했다.

 "나 군대나 미리 갔다 올까?"

 "에이. 지훈아 군대는 감정적으로 갔다 오는 곳이 아니야. 지금 들어가면 너 감정상태로 봤을 때 큰일 난다."

 이별 후유증으로 내가 한동안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을 때, 나는 학교라는 공간만 떠나면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술을 마시다 무심코 내뱉은 내 말에 친척형은 단호하게 말렸다. 생각해 보면 헤어진다는 것은, 혼자가 혹은 서로가 잘 살기 위한 일방적인 또는 합의에 의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이별을 선고받은 사이라 여겼고, 그녀의 별 선고가 그녀에게도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가 내린 이별이라는 선택은 그녀가 잘 살기 위한 방식이었고, 나는 곁에서 그녀가 더 잘 살게 해 줄 수는 없는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피하지 말고 그냥 부딪혀볼까.'

 나는 어린 나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겁이 났다. 내가 이별을 당해 사람들이 측은하게 바라볼까 겁도 났고, 학교 복도에서 그녀를 마주치면 마음이 흔들릴까 불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로 했고, 한 학기 더 학교를 다녔다. 실제로 학교 복도에서 그녀를 마주치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사람들의 측은한 시선 역시 받았다. 나는 그럴수록 수업에 집중했고, 친구들을 더 사귀기보다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집까지 오고 가는 시간이 아까워 고시텔에서 지내기로 결정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 10시까지 도서관에 있었고, 고시텔에 와서 늦은 야식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혼자서 세상을 견디는 마음을 배웠고, 한 편으로 이제야 조금은 철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애꿎은 자존심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버티는 법을 배웠고, 그 덕에 두려움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알았다. 누군가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도 내게 필요했다면, 혼자서 세상을 견디는 시간도 필요했던 것이다.


  "잘했어. 고생 많았네."

 나는 군대를 가기 전에 다음 학기에 받을 장학금을 미리 받았다. 엄마에게는 너무 오랜만에 착한 아들이 되었다.

 "오. 지훈이 장학금 받았어? 형이랑 같이 방학 때 공모전 같이 해볼래?"

 달라진 내 모습에 동기들과 선배들도 적지 않게 놀랐다. 내 습관과 행동이 달라지니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사람들도 생기고, 공모전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선배님의 좋은 제안도 이어졌다. 그렇게 방학 때는 공모전에 매진했고, 군대를 가기 전 입상도 하고 상금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진로를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시기였지만, 적어도 무엇을 할지 모를 시기에는 뭐라도 하는 게 좋다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를 좋아하지 못할 때 자존감은 흔들리고, 상황이 안 좋아질 때 상대방 탓을 하게 돼요. 그런데,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으면 상대방 잘못이 분명한 상황인데도 오히려 여유 있게 상대방을 감쌀 수 있게 돼요. 즉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좋아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아주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위 말은 청소년들에게 강의 마무리에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연애를 하며, 일을 하며 이별을 하는 순간들을 맞는다. 혼자가 된 경험은 그 순간 아프지만, 그 순간에 있는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또 한 번 성장할 기회를 얻게 만든다. 내가 나로 단단해질 수 있을 때 내가 진정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안아줄 수 있다. 인생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고난 앞에서도 별일 아닌 듯 웃어넘길 수 있다. '왜 내게만 이런 아픈 일이 생길까' 하는 순간도 버티고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일도 생긴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아쉽지만 수많은 아픔을 동반한다. 그 아픔 속에서 누군가는 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내 인생을 함께 걸어가고 싶은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그 소중한 인연을 지키려면 가끔 떨어져, 떨어진 거리에서 혼자인 나와 상대방을 이해하는 시간과 시각도 필요하다. 수많은 인생의 난관 속에서 우리는 혼자이기도 하고, 연인이기도 하고, 배우자이기도 하다. 혼자서 견디는 시간은 존중해 주되, 다시 연인으로 내게 왔을 때 안아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은 가져야 한다. 그게 사랑에 대한 예의이자, 혼자로 버티는 인생의 외로움에 대한 따뜻한 포옹일 것이고 나는 믿는다.

이전 14화 "아니, 왜 자꾸 친구를 만드는 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