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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Sep 20. 2020

"아니, 왜 자꾸 친구를 만드는 겨?"

 "야, 오늘 할 얘기 있으니까 쫑이네서 술 한잔 하자."

 "무슨 얘기인데?"

 "나 요즘 누구 만나는데, 잘하고 싶어서 그 얘기나 하려고..."

 "오~~ 이따 수업 끝나고 쫑이네서 모이자."


 쫑이, 쭌이, 태이, 나는 대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같이 먹거나, 삼식이네 혹은 삼순이네로 삼겹살을 먹으러 가거나, 그도 아니면 다른 친구들과 합류해 같이 술을 마시곤 했다. 매일 붙어 다니니 선배들은 우리를 꾸러기라 불렀다.

 "너희들 매일 그렇게 붙어 다니면 연애 못한다. 대학교 와서 CC는 얼른 해야지."

 1년을 제외하고는 넷 다 매일 붙어 다니지는 않았다. 학부에서 학과로 갈라진 시기에 듣는 수업이 달라졌고, 연애를 하면서 수업이 끝나고 바로 보는 횟수도 적어졌다. 그래도 학부 시절에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특별한 일인 것처럼 참 자주 만났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떤데? 뽀도 너 좋아하는 것 같아?"

 "매일 문자해. 호감이 있으니까 문자 하지."

 쫑이는 문자를 참 자주 했다.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반응속도도 엄청 빨랐다.

 "야. 너무 빨리 답장하면 긴장감이 없잖아."

 "뭘 쟤고 따져. 나 그런 것 못해."

 실제 쫑이는 쟤고 따지는 걸 못했다. 사실 새내기 시절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본인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자연스레 연애의 속도를 지키지 못하고 마음이 급해졌고, 그게 표현으로 나왔다. 결과는 안 봐도 아웃이거나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는 더 가슴 아픈 사연으로 남았다. 문제는 거기로부터 사랑이 공부가 되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루는 학교 복도를 지나치는데 태이를 마주쳤다.

 "훈아, 오늘 술 한잔 해야 될 것 같다."

 "왜?"

 "쫑이 잘 안됐대."

 "아. 걔는 왜 문자만 계속하고, 대화를 잘 못하는 겨."

 "그러게 말이다. 어쨌든 쫑이 힘들 테니까 이따 모여서 얘기 나누자."

 "오키!"

 수업을 마치고, 우리 꾸러기들은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술은 여러 가지로 섞을 수 있게 장바구니 가득 담았다.

 "쫑아, 뭐 먹고 싶은 것 없냐?"

  "오늘 밤새 얘기해야 되니까 안주 많이 담자. "

 우리는 이별을 겪은 친구에게 안주 선택권을 주는 특혜를 주곤 했다. 쫑이는 즉석요리를 좋아했다. 당연히 장바구니에는 즉석 찌개류나 미트볼, 떡볶이 등의 안주가 담겼다.

 "이시끼는 맨날 즉석요리네..."

 테이는 안주가 마음에 안 드는지 궁시렁 거렸다.

"내버려 둬. 전자레인지랑 특별한 사연이 있나 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친구로 잘 지내기로 했어."

 쫑이는 다소 무덤덤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얘기했다. 표정은 많이 슬펐다.   

 "야. 지금 너 옆에 친구가 이렇게 많은데 왜 자꾸 친구를 만드는 겨?"

 "야.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러냐?"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이는 내 막말에 방바닥에 누워 크게 웃고는 했다.

 "야. 위로해주려고 했는데, 이 시끼 때문에 위로해 줄 말 다 까먹었어."

 "아~~ 쟤 때문에 술이 더 당기네. 야 마셔마셔."

 "아니, 그래서 술 장바구니에 가득 담았잖아!"

 나는 마음 아픈 친구 앞에서 일부러 큰 소리를 쳤다. 연애 후 이별 후유증과, 고백 후 차이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커서 아픔이 유머와 재미를 잠시나마 타지 못하면 오래 아픔으로 남는다. 그냥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만이라도 이렇게 울고 웃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길 바랬고 실제로 그 시절 우리는 그랬다.



 

 지금 우리는 그때에 비해 많이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의 결혼과 같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자주 연락하는 일은 드물게 되었다. 사회에 나와 학교와는 다른 세상을 배우며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가치관을 정립했고, 그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 과정에서 각자 겪는 기쁘고 슬픈 일들은 독립적인 존재로서 받아들이고 이겨나갔다. 1년에 한두 번 보는 일이 있으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음에 또 보자"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고, 다음은 기약 없이 흘러가다가 다음 해에 보는 일이 반복되었다.



  요즘처럼 본인을 잘 증명하고,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경쟁력이 있는 시기에는 이것저것 할 게 참 많다. 달리 말하면, 가만히 있으면 뒤쳐지기도 쉽다는 뜻이다. 이 말은 바쁜 이유를 대기도 쉽다는 것이다. 서로가 참 바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그 해에 열심히 안 살았던 친구가 없다. 그래서 하루 중 틈을 주어 밤에 산책을 하거나, 글을 쓰려 옛 생각을 하다 보면 새내기 때 그 시절이 회상되곤 한다. 때로 추억은 추억으로 머물 때 아름다울 때가 있다. 예전처럼 누가 연애를 하고, 누가 이별을 하는 이유로 만나는 일은 없다. 그때는 서로의 기쁨과 아픔에 함께 할 낭만과 시간이 있었고, 별것도 아닌 일에 의미 부여를 하는 바보 같은 행동도 많이 했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당연히 아니다. 지금은 각자가 정의하는 낭만이 다르다.

 


 그래도 여전히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밤을 새웠던 꾸러기 친구들이 생각난다. 별일 아닌 일에 취할 수 있고, 늦잠을 자주 잘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못된 상상이기는 하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내 친한 친구가 '친구로 남자'라는 말을 고백했던 상대방에게 듣는다면 나는...


 "아니, 왜 자꾸 너는 친구를 만드는 겨?"라고 또다시 장난을 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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