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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Feb 25. 2021

부모님이 보고 싶은 새벽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떨어져 산 지 오래다. 올해로 28년째가 된 것 같다. 신혼 때부터 떨어져 지내 두 분이 만나면 다소 어색한 감도 있었으나, 지금은 두 분 다 꽤 나이가 드셔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예전보다는 두 분의 대화도 많이 이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 수록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가 몇 없는데, 두 분에게 서로가 살아온 흔적들이 충분히 친구가 될만한 기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빠, 엄마랑 아빠는 진짜 내가 중간에 껴있어서 친해진 거야."

 "맞다. 우리 아들 없었으면, 엄마랑 진짜 못 친해질 수도 있었겠다."

 서로 애정 하는 공통분모가 있으면, 대화할 거리가 생긴다. 두 분이 오래 떨어져 계셨어도 대화 소재를 찾을 때 공통분모는 내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부모님과도 관계가 좋아 셋이 함께 모이면 장난스럽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연출되곤 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두 분이 계실 때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나는 그 모습에 잔잔한 미소를 짓곤 했다.
 



 "아들, 잘 지내니?"

 아버지는 현재 김포에 거주하고 계신다. 2주 전에 나와 데이트를 했으면서도, 연락한 지 2주가 지나면 아주 오랜만에 하는 듯 문자를 보낸다. 

 '나 잘 지내는 거 뻔히 알면서, 무얼 잘 지내냐는 거지?'

 '아들, 잘 지내니'를 올바로 직역하면, '아빠, 지금 심심하다'이다. 나는 '아들, 잘 지내니?'라고 아버지로부터 문자가 오면, 내 일정을 먼저 확인하고 아버지와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내가 먼저 아버지가 보고 싶어 연락을 할 때도 있지만, 가끔 일에 치일 때 아버지에게 연락을 받으면 버거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가끔, 일 할 때 부모님이 귀찮을 때가 있어."

 내가 아는 지인은 저 말을 하고 나서 부모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 듯 혼자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도 무슨 마음인지 알아. 그런데 사실 부모님이 귀찮은 게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시간에 치이고 있는 거잖아. 우리가 여유가 있으면 가정 먼저 부모님한테 맛있는 것 사드리고 함께 시간 보내고 싶은데, 매번 그럴 수는 없으니까. 그 맛있는 걸 사드리려고 열심히 일하는 시간에 부모님이 찾으면 마음에 여유가 안 생길 수도 있지..."

 



 예전 같으면, 없던 시간도 쪼개서 부모님을 보곤 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게, 내 솔직한 상황을 부모님께 얘기한다. 

 '아빠, 내가 지금 일이 많이 몰려서 이번 주 말고, 다음 주에 보자'라거나, '내가 주말 말고 평일에 시간 날 때 따로 연락할게'라고 문자를 보낸다. 어머니는 2주에 한 번씩 나를 챙기러 시골에서 서울에 올라오곤 해서 따로 약속을 잡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집에서 일하는 내 공간과 동선이 어머니가 활용하는 공간과 겹쳐 신경 쓰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하고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니 어머니와 집에서 겹치는 공간마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집에서 일하는 방과 TV를 보는 방이 나뉘어 있는데, 어머니가 오시면 TV를 보는 방을 며칠 동안 양보한다.  어머니는 집에 오시면 건강한 음식부터 약까지 많은 것을 챙겨주신다. 나는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의 사랑만큼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모님은 겨울에 언 강과 같은 거예요. 언제 어떻게 녹을지 몰라요."

 예전, 군대에서 대대장님이 했던 말씀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는다. 일을 하고 쉴 때나, 산책 삼아 공원을 돌 때 저 말이 문득 떠올라 부모님을 떠올릴 때가 많다. 내 시간이 여유롭지 않을 때, 때로 버거울 수 있는 부모님과의 시간도 내게 주어진 엄청난 복이라는 걸 그렇게 알곤 한다. 먼 훗날 '내가 보고 싶을 때 부모님이 내 옆에 없다면...'이라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끔찍한 상상보다 이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내 앞에 자주 서 있는 부모님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부디, 내게 부모님은 언제 어떻게 녹을지 모르는 건강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으면 한다. 봄에 피는 새싹처럼 내 손 붙잡고 수많은 따뜻한 날을 경험하다가 웃으며 필 수 있는 새싹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다. 금방 다가올 봄처럼 부모님이 자주 보고 싶어 지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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