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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Apr 10. 2021

버텨줘서 고마운 거야

 친한 사람과 술을 마시다 보면, 술 꽐라가 될 때 나오는 비슷한 레파토리가 있다. 그 레파토리가 우리를 행복한 시절로 가서 웃게 하든, 후회가 남는 시점으로 데려가서 사뭇 진지해지든 중요한 건 그 모든 시점을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술 꽐라가 돼서 내 앞에 있다는 것이다. 


  내겐 아버지가 그렇다. 우리 부자는 한 달에 한두 번, 각자 거주하는 집으로 놀러 오고, 놀러 간다. 내가 일에 쫓겨 아버지에게 연락을 안 하면, 아버지는 한 달이 되는 시점을 딱 기다렸다가 정확하게 문자를 하신다.

 "아들, 별 일 없니?"

 직역하면 '아빠한테 연락도 안 하고 뭐 하냐'이다. 그런 문자가 오면 다음날이나 그 주 주말에 아버지를 만나 회포를 푼다. 나를 만나면 아버지는 설렘에 가득한 표정을 지으신다. 나와 먹는 술이 고픈 건지, 나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에 젖는 건지 둘 중 뭐든 관계없다. 아버지가 좋으면, 나도 좋다. 


"아빠, 고기 먹을래, 참치 먹을래?"

 친하면, 물어보지 않아도 촉이 오는 게 있다. 답은 어차피 참치이다.  아버지는 참치집의 정갈한 서비스와 조용한 곳에서 나오는 오붓한 분위기를 좋아하신다. 물론 내 입장에서 돈은 더 많이 들지만, 소중한 사람에게 쓰는 돈은 기분이 좋은 돈이다. 아버지가 행복한 모습을 보며,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된다. 웃픈 이야기지만, 다음날 카드내역서에 찍힌 돈이 나를 더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아들, 너희 어릴 때 있잖아..."

 우리 부자 옆으로 소주병이 쌓이면, 아버지는 눈가가 조금 촉촉해져 분위기를 잡는다. 

 "응..."

 "아빠가 그때 너희를 시골로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희 그때 너무 가난했던 게 다 아빠 탓 같아서 그게 아직도 후회가 많이 된다."

 "괜찮아. 그 시절이 있어서 내가 시인도 되고 형이나 나나 더 성숙하게 잘 컸잖아.."

 "그건 그렇다. 우리 아들 말이 맞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후회와 상처가 되는 시점으로 본인과 나를 데려간다. 살다가 가끔 떠오르는 후회의 순간에 함께 얘기 나눌 친구가 필요한 걸 수도 있고, 그 상처를 함께 극복한 친구가 필요한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아빠..."

 "응..."

 "내가 첫 번째 시집 아버지 주제로 냈잖아... 코로나 터지기 전 한참 북콘서트 할 때 이모가 그러더라. 아빠가 실수로 돈 크게 날려서 너희 가난했던 것도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시를 쓰냐고..."

 "그래서 뭐라 그랬어?"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아빠가 아빠로 버텨줘서 고맙다 그랬지... 아빠가 큰 실수 했다고 자책하고 아빠 역할을 놓아서 시골로 꼬박꼬박 아빠 월급 안 보냈으면 우리 가족도 무너졌을 거야. 사람이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하는데 아빠는 아빠로 버텨줬잖아. 엄마도 그렇고... 나는 그게 제일 고마워."

 "우리 아들 강사라 그런가, 말을 너무 잘해서 아빠가 위로가 되네..."

 "그럼 이게 얼마짜리 위로인데, 얼마 줄 거야?"

 "아니지, 돈은 우리 아들이 내야지."

 "뭐야... 사기꾼이네 사기꾼!!"


 아버지의 웃는 표정에 내가 걷는 삶도 위로를 받는다. 아버지와 나란히 걷는 거리에, 아버지는 혹시 놓칠까 싶어 내 손을 꼭 잡는다. 나 역시 그런 아버지의 손을 따뜻하게 잡는다. 삶을 살다 보면, 당연한 듯 보였지만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대상들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다. 한 달에 열흘, 늘 서울로 올라와 밥도 해주시고, 나를 챙겨주는 어머니가 그렇고, 친구처럼 나와의 술자리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버지가 그렇다. 사업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에 부딪히는 일이 많다. 변화하는 환경에 부딪혀야 하고, 생각만큼 일이 진전이 없으면 내려놓고 싶은 순간도 있다. 마음마저 게을러져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물음에 서성일 때도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한다. 부모님께 살가운 막내아들의 역할과 내 동반자에게 누구보다 책임감 있고 따뜻한 사람의 역할, 교육사업가, 강사와 작가의 역할을 기본부터 다시 잡으려고 한다.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이런 마음마저 들지 않을 텐데 나는 축복이 많은 사람이라 주변에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옆에 있다. 그들이 그들로 살려고 버티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며 그 자체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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