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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 Mar 01. 2020

네가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아프다고, 알아달라고.


얼마 전, 우리 집 강아지 A의 가벼운 스케일링과 지방종 제거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뜻밖의 악성종양 판정을 받았다. 몇 년 전에도 유선종양 때문에 종양 제거 수술과 유선 일부를 제거하는 편적출 술을 했었는데, 남은 유선에서 또다시 종양이 생긴 거다. 키트 검사를 해보니 악성 종양일 확률이 88%라고 했다. 또, 재발한 경우이기 때문에 이럴 때는 유선 전체를 들어내는 전적출 술이 권장된다고. 하지만 악성일 확률이 높으므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전이될 위험도 있고,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되면(특히 폐) 수명이 급격히 단축되니 모든 선택은 보호자의 몫이라고 한다. 아, 이럴 때 A가 시원하게 자기 의견을 얘기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가족’인 A는, 약 8년 전부터 나와 함께했다. 유기견이었던 A를 보며, 이렇게 예쁜 아이를 누가 길에 버려뒀을까 싶었는데 데려온 지 얼마 안 되어 A의 몸에서 진동하는 악취를 맡고 대충 짐작이 갔다. A가 앓고 있는 지루성 피부염은 평생 치료가 되지 않는 불치병으로, 수천 개의 각질과 악취, 그리고 엄청난 가려움을 동반한다. 씻긴 지 세 시간쯤 지나면 겨드랑이나 배 안쪽에서 스멀스멀 냄새가 올라온다. 특유의 코를 찌르는 콤콤한 냄새가 지금까지도 적응되지 않지만,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천연비누와 스파 등을 찾아서 적용하니 예전보다는 그나마 나아졌다. 또, 예전에는 정말 피부에 피가 맺힐 때까지 발톱으로 긁어댔는데,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소양감을 없애주는 약이 개발되어 아침저녁으로 급여하면서부터는 긁는 일도 현저히 줄었다. 가족으로서는 A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매달 드는 약값과 병원비, 알레르기 사료값은 충분히 감수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은 가족을 둔 모두의 마음이 그러하듯 아프지만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내왔는데, 악성종양이라니.  



수술 여부를 천천히 고민해보고 연락 달라는 의사 선생님을 뒤로하고, A와 함께 집에 오는 길 내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났다. 어떨 때는 A가 내 감정을 다 읽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되도록이면 A앞에서 슬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편인데 그날은 다 틀렸다. A는 내가 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남편과 상의 후 결정을 내려야 하겠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수술을 하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수술의 부작용처럼 급격히 악화되지는 않겠지만, 시간만 지연시킨다 뿐이지 종국에는 더 큰 고통이 따를 거였다. A가 수술을 잘 견뎌주기를 바라며 희망을 가져보는 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언니, 나 수술 무서워.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 될까?”라거나, “언니, 나 아직 튼튼해! 그니까 얼른 수술해서 더 오래 함께 있자.”라는 A의 결정을 듣고 싶은데, 답을 구하며 아무리 A의 눈을 골똘히 들여다봐도 묵묵부답이다. 끄덕거리거나 고개를 가로저어주기만 해도 좋을 텐데. 이 동그랗고 까만 눈 뒤로 A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부디 우리 부부의 선택이 A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기를, A가 오래오래 곁에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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