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찾아 삼만리

#성장조건

by 닥터파브르

요즘 시대는 배움의 경계가 거의 없다. 도서관을 통해 쉽게 책을 빌릴 수 있고, 유튜브나 K-MOOC, Coursera 같은 플랫폼에서도 전문가와 교수님들의 강의를 언제든지 무료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문은 더 이상 높은 담장이 아니다.

coursera 'EDIBLE INSECTS' 온라인강의 갈무리

그러나 때로는 그런 배움으로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곤충학과에 편입 목표로 했다. 목적은 단 하나. 내 부족함을 채워줄 위대한 스승을 찾기 위함이었다.


우선 영어 점수를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그리고 전공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스무 해가 넘었다. 게다가 나는 문과출신이라, 그 시절에도 과학탐구 과목은 그리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이럴 수가. 부랴부랴 서점으로 달려가 EBS수능 생명과학 문제집을 사들고, 낯선 개념들과의 첫 만남을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좌절과 고백이 교차했다.


곤충학 이론은 P.J. Gullan과 P.S. Cranston의 [제3판 곤충학] 교재를 선택했다. 익숙지 않은 전문 용어들, 작은 곤충의 세계가 펼쳐내는 정밀하고도 방대한 체계 속으로 나는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2024년 1월, 추운 겨울. 나는 긴장과 기대를 안고 경북대학교로 향했다. 무려 세 시간이 넘는 이동이었다. 전공시험은 다행히도, 내가 반복해 외우던 바로 그 문제가 출제되었다.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 속에 무사히 필기를 마쳤고, 곧 면접이 이어졌다. 면접실에는 세 분의 교수님이 앉아 계셨다.


"나이가 적지 않으신데, 왜 다시 공부를 선택하셨나요? 그것도 곤충이라는 특별한 분야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교수님들 중 한 분이 조심스레 물으셨다. 사실 그 질문은 내가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던 것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과 목표에 대해 담담하지만 단단한 마음으로 이야기했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학과 차원에서 아낌없이 지원해 주겠다고 따뜻하게 응답해 주셨다. 그 말은, 그날 내게 긴 겨울을 견디게 해 준 한줄기 봄빛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합격.

우리집 청개구리를 데리고, 아빠의 대학으로

나는 곤충학을 공부하면서, 자주 언급되는 한 분의 이름을 들었다. 그분은 다름 아닌 농촌진흥청에서 30년 넘게 연구직 공무원으로 곤충을 연구하신 황재삼 교수님이셨다. 언젠가 한 번쯤 만나 뵙게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인연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24년 을학기, 황재삼 교수님께서 세종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곤충생리학’ 강의를 진행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교수님께 청강을 요청하는 메일을 드렸고, 며칠 뒤 “환영합니다”라는 따뜻한 답장을 받았다. 타대학 학생이라는 이유로 나를 거절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너그러이 기회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그날 나는 세상이 내게 문을 열어준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창업 여정에 있어 교수님의 강의가 깊은 영감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수님은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대선배이시기도 했다.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빛, 세종대학교 캠퍼스 전경

첫 수업 날, 자기소개 시간. 마흔을 넘긴 내가 스무 살 갓 지난 대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있다는 사실이 잠시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풍경은 금세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시작된 16주 동안, 교수님은 매 시간 진심을 다해 강의를 준비하셨고, 평생 쌓아온 방대한 연구의 결실을 아낌없이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질문 하나에도 성실히 답하시며, 강의실 밖에서도 늘 열린 마음으로 후학을 맞이하시는 그 모습은 내게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학기의 마지막 날, 나는 교수님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교수님은 여전히 내게 따뜻한 조언을 건네주시고, 기꺼이 자문까지 맡아 도움을 주고 계신다. 생각할수록 얼마나 크고 귀한 인연인지, 마음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사숙(私淑)’이라는 말이 있다. 직접 제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 한 사람의 인격과 학문을 사모하며 배우는 것을 뜻한다. 나에게 교수님은 그런 분이시다. 지금도 나는 교수님의 태도와 생각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오늘도 그 가르침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조용히 성실하게 내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의 가슴속에 다시 불을 밝혀줄 스승으로 기억되기를 조심스레 꿈꿔본다. 먼 훗날, 또 다른 이의 ‘삼만리’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시작되기를...

2025년 6월, 어느 여름날 황재삼 교수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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