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단백질, 기적의 스타트업을 꿈꾸다.

#창업동기

by 닥터파브르

나는 다섯 살 무렵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소풍을 앞둔 밤이면 새벽부터 김밥을 싸시던 할머니.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따끈한 참기름 향이 밴 김밥의 꼬다리 부분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꾸벅꾸벅 졸다가도 꼭 한입은 베어 물던 그 감촉과 냄새는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내 미각 깊숙한 곳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내내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던 할머니와는, 결혼을 계기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짐을 챙겨 집을 나서던 날, 현관 앞에 조용히 서 계시던 할머니. 아무 말 없이 멀리서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이별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어느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할머니의 품에 증손주를 안겨드릴 수 있었다. 그 순간은, 내가 할머니께 드릴 수 있었던 가장 큰 효도이자,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오래 간직해 온 예물을 꺼내어, 돌반지로 만들어 증손주의 첫돌에 정성스럽게 건네주셨다. 세대를 건너온 깊은 사랑이, 주름진 손끝을 타고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스쳐간 고요한 행복은 이내 균열을 맞이했다. 2023년 여름, 엎질러진 물에 발을 헛디딘 할머니는 크게 넘어지셨고, 며칠을 말없이 고통 속에 견디시다 결국 병원으로 실려가셨다. 골반뼈가 부러졌다는 진단, 94세의 연세, 닫힌 병실 문과 코로나로 인한 면회 금지. 우리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무력감과 불안이라는 긴 터널을 조용히 통과해야만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회복은 더딘 걸음이었다. 위장이 약해진 할머니는 음식조차 삼키지 못했고, 몸은 눈에 띄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날 처음 본 할머니의 다리는, 내 손목보다도 가늘었다.


그제야 나는 ‘근감소’라는 단어가 얼마나 깊고 위태로운 삶의 무게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먹을 것이 있어도, 그것을 먹을 수 없다면 회복은 단지 바람일 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우연히 곤충단백질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근감소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 시골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오면 할머니가 바삭하게 볶아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소한 향과 맛은 단지 추억이 아니라, 지금의 문제를 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문득 찾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했다. 노인, 환자, 혹은 갑작스러운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경색으로 쓰러진 장인어른, 암 수술 뒤 병원 복도를 힘겹게 걷던 매형의 모습, 그리고 아기의 옹알이 영상에 미소를 지으며 회복하기 위해 재활의 걸음을 멈추지 않던 한 젊은 여성의 눈빛까지. 모두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 질문이 내 발걸음을 움직였다. 나는 곤충이 품은 생명력과 가능성을 배우기 시작했고, 마침내 ‘닥터파브르’라는 이름으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한 사람의 손목보다 가늘어진 다리를 마주하며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조용한 나의 다짐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나는 작은 생명이 가르쳐준 인내와 생명력으로, 다시 걷고자 하는 이들의 길에 단단한 희망을 오늘도 심고 있다.

2023년 2월 사랑하는 할머니와 제주도에서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곤충을 사랑한 두 사람의 여정, 닥터파브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