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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03. 2019

일부러 아이를 안 낳는다고?

그들의 고유권한을 침범하지 마세요.

나는 올해 결혼한 지 10년 차이고, 40대 초반 여자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남편과 둘이 재미있고 따뜻하게 그리고 평온하게 살고 있다.

나의 부모님은 차로 10분 거리에 살고 계시고, 형제자매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나의 형제자매와 남편의 형제는 모두 결혼을 한 경우에는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평범하고 안락한 가정에서 큰 기복 없이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대학원 공부를 했고, 그 후 다시 직업을 가졌고, 결혼했다. (남편은 대학원 다닐 때 우연히 알게 되었다.) 물론 결혼 후에도 계속 직장생활을 했다.


남편 역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약간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마쳤고, 열심히 공부해서 본인이 희망했던 직업을 가지고 만족하며 잘 다니고 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지극히 평범한, 별다른 게 없는 가정에서 자랐는데, 왜 남들과 다른 무자녀 부부의 삶을 선택했을까? 나의 형제자매와 남편의 형제는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삶을 선택하여 잘 살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런 삶에는 전혀 의미를 찾지 못하고, 비출산(무자녀 부부)이라는 것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의 합치가 되었을까?


한때는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

'나는 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지?', '난 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지?' 하는 생각을 깊게 해 보았지만 딱히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그냥 같은 부모에게 태어나고, 같은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고, 좋아하는 계절, 색깔, 영화나 음악 장르가 다른 것처럼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다른 것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난 그냥 아이를 낳고 싶고,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을 뿐이다.

 

나의 부모님은 우리의 비출산에 대해 환영은 아니지만 '너희들의 결정'이니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시부모님은 아이를 안 낳겠다는 우리의 말을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이셨고, 2-3년 후부터는 안 생기나 보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간혹 "일부러 안 낳는 사람도 있다더라. 둘이 잘 살면 된다"라고 위로(?)를 해주셨고, 그 후로는 '설마 진짜로 일부러 안 낳은 건가' 하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이다.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큰아들(남편의 형)이 결혼하여 손주가 2명이나 있으니 작은 아들인 나의 남편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이 그저 조금 서운한 정도인 것 같다. 물론 이건 내 느낌이다.

 

그런데 양가의 부모님보다 우리의 비출산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주변 지인들이다.

사람들은 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여행을 좋아해서', '직업적인 성취감이 높아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서'라고 (나에게 묻지도 않고) 결론을 내렸고, 말을 이리저리 옮기곤 했다. 그들이 갖다 붙인 이유들은 내가 비출산을 한 이유가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직업적인 성취감이 높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이 더 많다. (심지어 나는 직업적인 성취감이 그리 대단히 높은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비출산을 그렇게 결론 내렸다.

난 그저 아이를 갖고 싶고,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사람일 뿐이다.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조카를 보면 기분이 좋고, 친구들의 아이들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내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뿐이다.

뭔가에 끌린 듯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됐고, 우리는 그저 같이 살고 싶어서 결혼을 했을 뿐이다. 정말 행운인 것은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나와 생각이 같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지'라는 말에서 <당연히>라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우리 둘이 사는 것이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 '아이가 안 생기는 거냐'는 무례한 질문이 다소 거북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나의 생각을 아무리 얘기해도 결국은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나를 이해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화의 끝을 맺는 방법은 '나는 너에게 비출산을 강요하지 않는데 왜 너는 나에게 출산을 강요하니?'라고 

다소 공격적으로 묻는 것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터득했다.

40대에 접어들고 나서부터는 '정말 아이를 낳지 않을 거냐'는 지인들의 질문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아이를 낳기가 어려운 나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나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과의 만남이 한결 편해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 후 5년 정도 지난 후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지인 :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결혼은 하셨어요?

나 : OO살이에요. 결혼은 했어요.

지인 : 결혼한지는 얼마나 됐어요?

나 : 5년이요.(혹은 7년이요, 혹은 9년이요, 현재 나는 앞서 얘기했듯이 결혼 10년 차)

지인 : 그럼 아이도 있겠네요? 아이는 몇 명이예요?

나 : 아이는 없어요

지인 :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아.......


난 뭐라도 말을 해야 할까? 일부러 안 낳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불쌍한 표정을 지을까?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아무 말 안 하기도 하고 '계획이 없어요' 혹은 '아이 안 낳기로 합의하고 결혼했어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대답을 하든 상관없이 그들은 그들만의 생각으로 나를 '불임', '이상한 사람', '가난한 부부', 혹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의 자유이고, 난 내 방식대로 살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자주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고,

그저 한번 보고 끝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상관없으므로...


몇 년 전 직장동료와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동료는 나보다 6살이 많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으며, 1남 1녀를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 동료는 내가 결혼을 할 때 누구보다 축하해 준 사람이다. 내가 결혼 한지 몇 년 지난 후의 일이다.


동료 : 혹시 자기 딩크야?

나 : 네,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얘기했었던가요?

동료 : 아니~ 그냥 그런 것 같아서....

나 : 그게 느껴져요?

동료 : 응~ 우선 자기는 남편과 사이가 너무 좋아 보이고, 본인 삶에 만족하는 것 같이 보이니까... 결혼한 지 몇 년 됐는데 딩크가 아니면 그러기 힘들지.


그리고 몇 주후에 그 동료가 남편에게 내 얘기를 했었는데, 동료의 남편은 내가 불임일 거라고 확신하면서 '자세히 보면 아마 그늘이 있을 거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동료는 남편에게 본인이 그동안 봐 온 나의 모습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주면서 스스로 선택한 소위 '딩크족'라고 강조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동료는 본인 남편 같은 사람이 많을 텐데,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에 꽤 힘들었겠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난 웃으면서 말했다.

나 : 그늘이 있다고요? 그늘은 선배가 있는 것 같은데요~ 애 키우랴, 일하랴 힘들어서 다크서클 내려왔네요.

동료 : 뭐라고? 하하하, 역시... 저 말발... 이래서 내가 자길 좋아하지.

나 : 피곤할 텐데, 제가 커피 한잔 타 드릴게요.

동료 : 그래~ 땡큐~


나는 그 선배가 나의 조금은 공격(?)적인 말을 웃으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약간 까불 수(^^) 있었고,

우리는 서로 추구하는 삶의 형태가 다를 뿐 유머 코드나 성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선배를 참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늘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니들 부부가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좋을 것 같냐?', '나이 들면 후회할 걸' 혹은 '늙어서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보내게 될 것'이라고 면전에서 악담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마치 내가 후회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왜 그토록 내가 후회하기를 바라는 걸까? 그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행복하다면, 나도 다른 방식으로 행복하길 바라면 안 되는 걸까?


가끔 지나칠 정도로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바로 응대를 해주었다.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보낼 거라고 말한 사람에게는 "나중에 나 있는 양로원에 울면서 오지나 말라"라고 말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조금 심했나 하는 생각에 잠깐 후회를 하긴 했지만,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면 더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물론 내 주위에는 나의 삶을 방식을 인정하고, 응원해 주는 소중한 친구들이 꽤 많이 있다. 서로 추구하는 것이 인생관이 다르고, 사는 방법이 다르지만 다름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관계의 친구들이다. 무례한 사람들을 마주한 날에는 그 친구들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다.

아이를 출산할지 말지는 오로지 부부(혹은 남녀)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자녀에게 아이를 낳으라 마라 하는 것은 월권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런 월권이 너무나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자녀의 진학, 취업, 결혼, 심지어 출산까지 부모가 관여하는 것을 부모와 자녀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는 안타깝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출산이든 비출산이든 심사숙고하여 스스로 선택하고, 본인이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물론 조언을 구하는 것은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자신의 기준으로 섣불리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 역시 내가 선택한 배우자와 함께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자녀를 키우며 살고 있는 나의 형제자매와 친구, 지인들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 모두 스스로 선택한 인생에서, 자기답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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