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 시부모 특히 시어머니에게 고된 시집살이를 당하던 며느리가 참다못해 시어머니를 향해 내뱉는 한마디, "저도 저희 집에서 귀한 자식이에요." 그런데 과연 그 말 사실일까?
난 주변에서 귀한 자식이 아닌 딸을 무수히 보았다. 나 역시 지금 그 문제로 나의 부모님과 약간의 설전이 오갔고 지금도 여전히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다. 내가 부모님과 약간의 설전을 겪으면서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본인의 부모님에게 오빠(남동생) 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내 주변의 수많은 딸들이 본인이 귀한 딸이라고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한결같이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고, 부모님의 재산을 받아놓고 도리를 하지 않는 오빠(남동생) 혹은 올케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 딸들은 부모님에게 참 착하다. 그게 자식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그 착한 딸들이 그녀들의 시댁에서는 시부모님의 재산을 받고도 도리는 하지 않는 며느리와 동일인물은 아닐까?
나와 가정사와 일상을 모두 공유하는 몇몇 친한 친구 중에는 부모님에게 나와 비슷한 서운함을 느끼고 부모님과 일정 거리를 두거나 한동안 왕래를 하지 않았던 친구도 있다.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들이 결혼할 때는 집을 마련해주거나 집을 마련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해주시면서 딸에게는 왜 살림(이른바 혼수)에 필요한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심지어 딸은 본인이 혼수비용 정도는 벌어서 시집을 갈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도 꽤 계신다. 그러면서도 딸들이 결혼 후에 남편에게 그리고 시댁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당당히 살기를 바라는 걸까?
더 가관으로 부모님들은 아들에 비해 경제적인 지원을 턱없이 적게 해 준 딸에게 뭘 그리 요구하는 게 많은 걸까? 명절에 딸이 집에 오길 바란다면 아들이랑 똑같이 대우해주면 된다. 그걸 사돈집에서 모를 리가 없다. 며느리를 명절에 친정에 안 보내는 시어머니는 본인이 겪었던 것처럼 며느리가 친정에서 아들보다 후순위라는 걸 아시는 게 아닐까?
<명절에는 왜 시댁에 먼저 갈까? 그보다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진짜 아들이랑 똑같이 소중한 자식이 맞기는 할까?>
"아플 때는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게 과연 뭘까? 무료 간병인? 만만한 간병인?
예전에는 부모님의 노후(간병)를 아들이 책임지는 분위기였기에 결혼할 때 지원해주는 금액이 많았고, 딸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니 지원해주는 금액이 적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도 아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주말에 시간을 같이 보내고,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딸인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지원을 제외하고라도 남녀의 평균 결혼 비용은 차이가 크다. 주변의 지인들을 보면 결혼할 때 본인의 결혼자금은 남자 쪽 결혼자금의 1/2, 1/3 정도이다. 그리고 시댁에서 집을 사줬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남자가 대출을 많이 받아서 집을 마련했다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결혼을 한 후에 명절이 되면 "내가 왜 시댁에 가서 전을 부쳐야 되나?", "왜 시댁에 먼저 가야 하나?"라고 억울해한다. 결혼 전에는 "왜 나도 당당한 독립적인 인격체인데 남자에게 경제적인 의존을 해야 하나?", "우리 집은 뭐가 부족해서 남자 쪽보다 돈을 적게 내야 하나? 똑같이 부담해야지"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나의 시부모님은 우리가 결혼할 때 단 한 푼의 지원도 해주시지 않았다. 둘째 아들(나의 남편)의 결혼자금을 위해 여유자금을 모아두지 않은 분위기였고, 남편도 지원을 해달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나와 남편은 시부모님이 그저 노후준비를 해두셨고, 각자 알아서 잘 살고 계시는 걸로 만족했다. 내가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우리 시부모님은 내가 가본 적도 없는 미국 스타일 시댁"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렇게 결혼을 해서인지, 나의 시부모님의 성향 때문인지 나와 남편은 결혼 후에 시부모님의 관심, 간섭, 경조사로부터 자유롭다.
나의 부모님은 오빠(남동생)가 결혼할 때는 집을 마련하는 자금을 지원해주셨다. 내가 결혼할 때 지원받은 금액의 몇 배는 될 것이다. 물론 내가 결혼할 때 부모님이 지원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몇 배의 혜택을 더 받은 오빠(남동생)보다 왜 나에게 더 정서적인 친밀감을 더 원하시는 걸까? 집 사준 아들 집에는 가보지 못하는(아들, 며느리가 오시라는 얘기를 안 하니까) 나의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는 건 비교적 자유롭다.
오빠(남동생)에게는 별다른 감정이 없다. 그들은 그냥 나의 형제일 뿐이다. 같이 자랐고, 꽤 친밀감을 느끼는 형제, 그러나 각자 결혼 후에는 각자의 가정에 충실하느라 조금은 소원해진 평범한 형제 사이다. 오빠(남동생)의 배우자(올케)에게는 더더욱 감정이 없다. 그녀들은 나의 형제의 배우자일 뿐이다.
나는 단지 나의 부모님에게 너무 서운하고 섭섭하다. 나는 왜 부모님에게 오빠(남동생)만큼 하려고 했을까? 왜 부모님 생신이나 기념일에 오빠(남동생)와 1/n로 돈을 똑같이 냈을까? 나의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1/n로 똑같이 받지 않았는데,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오히려 부모님을 정서적으로 더 살갑게 더 챙겼을까? 부모님은오빠(남동생)에게 나보다 몇 배의 지원을 해주시는데... 나는 왜 부모님 생신을 주관해서 챙기고, 오빠(남동생)와 같은 금액의 돈을 내서 부모님 선물을 사고, 장소를섭외하고, 날짜를 조율하며 생신을 챙겼을까?
나의 지인 중 누군가는 나에게 "부모님이 너 원하는 만큼 공부시켜주고, 결혼할 때 금전적인 지원도 해 주셨는데, 그 금액이 아들보다 적다고 서운해하는 것은 자식 된 도리가 아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복이야"라고 했다. 그런데 왜 그 자식 된 도리는 딸만 해야 하는 걸까? 아들은 왜 더 많이 받고, 더 많이 자유로울까?
사람들은 요즘 딸이 대세라고, 딸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난 이 말이 예전에 어른들이 했던 '집에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이상하게 들린다. 예전에는 대를 잇고,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아들이 필요했던 것처럼 요즘은 병원이나 요양원에 자주 찾아오는 사람이 필요하므로 딸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결혼할 때 돈은 아들만큼 많이 안 들지만 같이 놀러 다니고, 아프면 간병도 해주는 가성비 좋은 딸이 필요한 게 아닐까?
누군가는 며느리 사표를 낸다고 하던데, 난 딸 사표를 내고 싶다. 만만한 딸 이제 그만하고 싶다. 물론 지금까지 나를 키워주고, 교육비와 결혼자금을 지원해주신 부모님께 자식 된 도리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식 된 도리가 결코 오빠(남동생)보다 금전적으로 정서적으로 더 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아니 덜 하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런데 그 다짐이 과연 지켜질까?
(사진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퍼왔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어 밝히지 못했으며,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