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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16. 2019

내가 상대방에게 실례를 하는 건 아닌지...

내 기준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지  말 것

예전 직장에서 동료로 만나 친하게 된 언니가 있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친밀감이 쌓였고,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그녀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을 방문하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사적인 영역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늘 즐겁고 유쾌했고, 또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낸 지 10년쯤 된 어느 날, 그녀가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 :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나 : 뭐길래 이렇게 심각해? 돈 빌려달라는 말 빼고는 다 해도 돼.

그녀 : 하하하~~~ 나 돈 많은 거 알면서(웃음), 나 사실 돌싱이야.

나 : 엉? 뭐라고?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한동안 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 : 언제 결혼을 했다가 언제 이혼을 했다는 거야?

그녀 : 너 만나기 전이야. 15년 전이고, 1년도 안 돼서 정리했거든.

나 : 그렇구나.   


난 그동안 그녀를 비혼 주의자로 알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 다른 동료를 통해 그녀가 결혼을 안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그녀를 흔히 말하는 ‘골드미스’로 알고 있었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봐온 그녀는 즐겁게 취미생활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자유롭게 여행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난 그 얘기를 듣고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나 : 혹시 내가 그동안 언니한테 말실수한 거는 없었어?

그녀 : 아니, 전혀... 왜?

 혹시라도 내가 그녀의 상황을 모르고 한 말로 인해 그녀가 순간적으로라도 상처가 되지 않았을지, 혹시라도 내가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 그녀는 전혀 그런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만약 내가 그런 적이 있었다면 우리 관계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을 거라고, 전혀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그동안 나와 점점 친해지면서 뭔가 비밀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적이 가끔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얘기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 어느덧 10년이 지났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녀는 나에게 사생활을 모두 알릴 필요는 없지만, 간혹 내가 그녀에게 ‘골드미스’라는 표현을 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말을 조심해야겠구나.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실례가 되는지, 어쩌면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가끔 무례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 불쾌한 마음이 든 적이 있다. 주위에서도 무례한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우리는 모두 무례한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고, 불쾌한 기분을 느낀다.

직장에서 상사는 일 못하는 직원 때문에 힘들고, 직원은 괴롭히는 상사 때문에 힘들고...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 때문에 힘들고,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자영업자는 진상 손님 때문에 힘들고, 손님은 친절하지 않은 주인 때문에 불쾌해하고...

같은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또래의 다른 엄마나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모두들 다른 사람들 때문에... 더 정확히 얘기하면 무례한 다른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이 무례한 사람이라 남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무례해서 상처를 주는 그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있는 걸까?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본인이 별 뜻 없이 내뱉은 말로 인해, 또는 정말 모르고 한 말로 인해서 누군가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못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을 거다. 혹시 그런 적은 없었나 하는 생각에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보냈고, 그 후로 매사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얼마 후 그녀와 다시 만나 맛있는 식사와 커피를 함께 하는데 그녀가 물었다.

그녀 : 업무로 인해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솔직하게 1년 만에 이혼했고, 이혼한 지 15년쯤 됐다고 얘기하면 물어본 사람이 당황할 꺼고, 또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도 않고, 결혼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하는 거고.

나 : 아~ 그렇네, 그냥 싱글이라고 하면 어떨까? 싱글이라고 영어로 대답하는 거 어때?

그녀 : 하하하, 그거 좋네.

나 : 근데 사람들은 초면에 결혼 여부를 왜 물어볼까?

그녀 : 그러게 말이야.


누군가는 그 사람과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 위해서 사적인 질문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렇게 빨리 친해질 필요도 없고, 공통의 관심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다. 초면에 누군가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례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본다. 나이는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자녀는 어떻게 되는지, 사는 동네는 어딘지 등등...

그리고 그 사람을 본인의 기준으로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의해버린다. 분명 상대방에 대한 실례이다.

덧붙여 그 사람을 본인이 편한 대로 부르는 것 역시 실례라는 걸 자주 느낀다.

얼마 전 직장에서 한 동료가 보험회사 직원과 통화를 하고 끊으면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자꾸 어머님이라고 할까? 고객님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리고 나 어머님 아닌데.”라고 했다.

그 동료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다.

아마도 대략 나이로 짐작하여 어머님이라고 부른 게 아닐까 싶다. 그 동료는 39살이었다.   

30대 후반 여자는 그냥 어머님이라고 불려도 되는 걸까?


얼마 전 남편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함께 갔는데 의사가 남편을 향해 “아버님은.....”이라고 얘기했다. 의사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 남편의 나이가 있을 테니 그 의사는 40대 초반이면 당연히 아버님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병원을 나오면서 남편에게 “왜 자기한테 아버님이라고 하지? 환자분이라고 하면 되지.”라고 했더니,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환자라고 하면 너무 아픈 사람 같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럼 이름 아니까 OOO씨, OOO님이라고 하면 되잖아.”


정작 아버님 소리를 들은 남편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하는데, 내가 예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대부분은 고객님, 회원님, 어르신,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들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부르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느낀다.

예전에 tvN에서 방송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명 작가가 “우리나라는 상대방이 누군지 알기 전까지 부르는 게 참 애매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정말 많이 공감이 됐다.    


가령 거리에서 길을 물을  중년의 여성 혹은 남성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저기요?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줌마? 아저씨? 결혼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줌마, 아저씨라는 표현이 그리 유쾌하지 않을  같다.

얼마 전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는데 상대방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면서 친구를 보자마자 아줌마~ 어쩌고라고 얘기했다며, 친구가 너무 불쾌해한 적이 있었다. 

자타가 인정하는 동안이라 충격이 더  보였다. 뽑은 지 얼마 안 된 새 차의 흠집보다 아줌마라는 말이 더 속상하다고 말했다.

기혼이지만 아줌마 소리가 듣기 좋지는 않다.

남자들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아저씨라는 말이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부르기  어렵다. 이런 거 누가   정해주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우리 부부처럼 무자녀 부부도 있는데 무턱대고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건 실례가 아닐까?

상대방이 미혼(혹은  비혼) 일 수도 있고, 난임(혹은 불임)으로 힘든 상황일 수도 있다. 또 개인적인 가족사인해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불편하거나 상처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초면에 결혼 여부를 묻고 자녀의 유무나 가족(형제) 관계를 묻는 사적인 질문을 하는 것, 또 누군가를 본인 편한 대로 부르는 것이 누군가에게 무례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해야겠다.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는 일은 없도록,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에게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만큼 나도 배려받는다는 걸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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